미국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앞으로 달러화 가치는 떨어질 일만 남았다"며 공매도에 베팅했다고 밝혔다.

드러켄밀러는 25일(현지시간)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주최한 한 행사에서 "45년 투자 경력 사상 지금처럼 세계 경제 전망과 시장에 불확실성만 가득한 시기는 처음"이라며 "이럴 때 내가 자신있게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투자는 달러 공매도"라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불안한 환경에서 미국 당국의 정책마저 흐리멍텅하다는 점은 달러화의 추가 하락세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드러켄밀러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1992년 파운드화 강세를 고집하던 영란은행을 상대로 파운드화 공매도 베팅에 나섰고, 끝내 영국의 중앙은행을 기술적 파산 상태로 굴복시켰던 인물이다.

달러화 가치는 올 들어 10% 가량 빠졌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는 작년 하반기 한때 사상 최고치인 114.78까지 치솟았다. 미 중앙은행(Fed)의 고강도 긴축 여파 탓이다. 이후 현재는 101선까지 내려앉았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Fed의 금리 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다. 이날 달러 인덱스는 전일 대비 0.51% 상승한 101.86에 거래를 마쳤다.

드러켄밀러는 "환율 흐름은 약 2~3년 정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데, 달러는 이미 그동안 충분히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고도 했다. 이어 "지난해 강달러에 베팅하지 않은 게 내 경력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정책 방향을 도저히 지지할 수 없었다"며 "이번만큼은 약달러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이 달러를 무기처럼 이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달러 외환보유고를 동결시켰는데, 이런 조치는 달러 대신 독립적인 통화를 사용하자는 세력들의 목소리를 키울 뿐"이라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최근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들에게 달러를 대신할 새로운 통화를 만들자고 요구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은 달러화에 대한 반란 수단'이라는 칼럼을 통해 "지난달 금융 위기 공포 속에 금값은 계속 상승했지만, 달러화는 오히려 하락했다"며 "달러와 금을 모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과거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외환보유고 다양화 차원에서 금을 대량 비축해두는 주요국 증앙은행들이 급증하고 있고, 해당 상위 10개 국가 중 9곳이 러시아, 인도, 중국 등 개도국이다. 이들이 미국과 동맹국들이 금융 제재를 무기로 삼는 것을 보고 달러화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미국 등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제재를 받는 국가 비율은 1990년대초까지만 해도 10%였지만 최근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