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최장수 총재 구로다의 '2·2·2 공약' 결과는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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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금융완화 10년, 日경제 어떻게 변했나(上)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 발표한 구로다 총재
"통화공급량 2배 늘려 2년내 물가 2%로" 약속
'구로다 바주카' 찬사 받았지만 지켜진건 통화량 뿐
511조엔 쏟아부었지만 장기금리 그대로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 발표한 구로다 총재
"통화공급량 2배 늘려 2년내 물가 2%로" 약속
'구로다 바주카' 찬사 받았지만 지켜진건 통화량 뿐
511조엔 쏟아부었지만 장기금리 그대로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규모를 2배 늘려 2년 내 물가를 2%로 끌어올리겠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경제 공약처럼 간명한 메시지. 하지만 이 공약은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메시지다.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 도입을 발표하면서 내건 목표다. 중앙은행 총재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서 돌려 말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시장에 혼란이나 방향성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구로다 총재의 '2·2·2 공약'은 여느 중앙은행 총재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 때문에 당시에도 화제가 됐다. 2023년 4월8일, 구로다 총재는 10년 임기(한차례 연임)를 마쳤다. 3673일의 재임 기간은 역대 최장수 기록이다. 그가 역대 최장수 일본은행 총재의 기록을 세우는 동안 약속한 시간의 5배가 지났다.
하지만 임금 인상을 동반한 물가 상승을 통해 일본을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끄집어 내겠다는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 구호처럼 시원시원했던 목표들은 10년 내내 구로다와 일본은행을 속박했다. '2년 내'라는 표현 때문에 구로다 총재는 여러 차례 "임기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목표를 '2%'라고 못박는 바람에 단기 충격요법에 그쳤어야 할 대규모 금융완화를 10년이나 끌었다. 스스로 퇴로를 끊은 결과다.
대규모 금융완화는 시장에 돈을 마구 풀겠다는 정책이다.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리면 소비가 늘어 물가도 상승한다는 논리다. 2년 만에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량을 2배 늘리겠다고 했으니 구로다 총재가 자신의 정책을 '차원이 다른 금융완화'라고 이름 붙일 만 했다. 2년 안에 시중에 돈을 134조엔(약 1340조원) 쏟아붓겠다는 것이었다. 구로다 총재가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다. 당시 일본은행은 시중에 돈을 풀어서 일본은행의 당좌예금이 10% 증가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0.44% 오른다고 분석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앞으로 1년 간의 물가상승률 예상치를 나타낸다. 그러니 시중에 돈을 두 배 이상 풀면 물가가 어렵지 않게 2%를 넘길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금융시장도 돈을 '살포'하겠다는 구로다 총재의 정책을 '구로다 바주카포'라고 부르면서 환영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를 막아야 한다"는 발언으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은 것처럼. 구로다 바주카포가 본격적으로 가동하자 엔화 가치는 떨어지고 주가는 급상승했다. 하지만 구로다 총재의 '2·2·2 공약' 가운데 지켜진건 첫번째 '2', 즉 2년 내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량을 두배 늘리겠다는 것 뿐이다. 대규모 금융완화 직전 134조엔이었던 통화공급량은 2022년 646조엔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일본은행의 국채보유액도 125조엔에서 556조엔으로 역시 5배 가량 증가했다. 그런데도 현재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0.6% 수준이다. 1998년 이후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거의 제로 수준을 이어왔다. 1998년에서 2021년까지 20여년간 물가가 1.2% 밖에 오르지 않았다. 디플레이션이 워낙 뿌리가 깊다보니 돈을 두 배 푸는 정도로는 뿌리를 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로다 총재도 임기 중 마지막 금융정책결정회의였던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노루마(사회통념)이 예상보다 강했다"며 디플레이션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했다.
10년간 돈을 5배인 5120조원 풀었지만 금융완화의 효과가 실제로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를 시작했을 때 일본의 장기금리는 0.6% 수준이었다. 현재의 0.5%(일본은행 장기금리 변동폭 상한)와 큰 차이가 없다. 금융완화는 돈을 풀어 금리를 낮춤으로써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소비를 늘리게 하는 정책인데 가장 중요한 지표인 금리에 큰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20여년 가까이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춰둔 탓에 금융완화의 효과가 발휘될 여지가 적었다는 분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경제 공약처럼 간명한 메시지. 하지만 이 공약은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메시지다.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 도입을 발표하면서 내건 목표다. 중앙은행 총재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서 돌려 말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시장에 혼란이나 방향성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구로다 총재의 '2·2·2 공약'은 여느 중앙은행 총재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 때문에 당시에도 화제가 됐다. 2023년 4월8일, 구로다 총재는 10년 임기(한차례 연임)를 마쳤다. 3673일의 재임 기간은 역대 최장수 기록이다. 그가 역대 최장수 일본은행 총재의 기록을 세우는 동안 약속한 시간의 5배가 지났다.
하지만 임금 인상을 동반한 물가 상승을 통해 일본을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끄집어 내겠다는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 구호처럼 시원시원했던 목표들은 10년 내내 구로다와 일본은행을 속박했다. '2년 내'라는 표현 때문에 구로다 총재는 여러 차례 "임기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목표를 '2%'라고 못박는 바람에 단기 충격요법에 그쳤어야 할 대규모 금융완화를 10년이나 끌었다. 스스로 퇴로를 끊은 결과다.
대규모 금융완화는 시장에 돈을 마구 풀겠다는 정책이다.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리면 소비가 늘어 물가도 상승한다는 논리다. 2년 만에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량을 2배 늘리겠다고 했으니 구로다 총재가 자신의 정책을 '차원이 다른 금융완화'라고 이름 붙일 만 했다. 2년 안에 시중에 돈을 134조엔(약 1340조원) 쏟아붓겠다는 것이었다. 구로다 총재가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다. 당시 일본은행은 시중에 돈을 풀어서 일본은행의 당좌예금이 10% 증가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0.44% 오른다고 분석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앞으로 1년 간의 물가상승률 예상치를 나타낸다. 그러니 시중에 돈을 두 배 이상 풀면 물가가 어렵지 않게 2%를 넘길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금융시장도 돈을 '살포'하겠다는 구로다 총재의 정책을 '구로다 바주카포'라고 부르면서 환영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를 막아야 한다"는 발언으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은 것처럼. 구로다 바주카포가 본격적으로 가동하자 엔화 가치는 떨어지고 주가는 급상승했다. 하지만 구로다 총재의 '2·2·2 공약' 가운데 지켜진건 첫번째 '2', 즉 2년 내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량을 두배 늘리겠다는 것 뿐이다. 대규모 금융완화 직전 134조엔이었던 통화공급량은 2022년 646조엔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일본은행의 국채보유액도 125조엔에서 556조엔으로 역시 5배 가량 증가했다. 그런데도 현재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0.6% 수준이다. 1998년 이후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거의 제로 수준을 이어왔다. 1998년에서 2021년까지 20여년간 물가가 1.2% 밖에 오르지 않았다. 디플레이션이 워낙 뿌리가 깊다보니 돈을 두 배 푸는 정도로는 뿌리를 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로다 총재도 임기 중 마지막 금융정책결정회의였던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노루마(사회통념)이 예상보다 강했다"며 디플레이션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했다.
10년간 돈을 5배인 5120조원 풀었지만 금융완화의 효과가 실제로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를 시작했을 때 일본의 장기금리는 0.6% 수준이었다. 현재의 0.5%(일본은행 장기금리 변동폭 상한)와 큰 차이가 없다. 금융완화는 돈을 풀어 금리를 낮춤으로써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소비를 늘리게 하는 정책인데 가장 중요한 지표인 금리에 큰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20여년 가까이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춰둔 탓에 금융완화의 효과가 발휘될 여지가 적었다는 분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