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황 누렸는데"…Z세대 변호사, 대형 로펌 꺼리는 이유
미국의 Z세대 변호사들이 글로벌 대형 로펌들에 등을 돌리고 있다.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요구하는 대형 로펌은 Z세대가 추구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변호사협회(ABA) 저널 등에 따르면 법무 인력 채용 전문업체 메이저린제이앤아프리카가 올해 1~3월 변호사 및 로스쿨 재학생 2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상위 200대 로펌 취직을 희망한 비율은 39%에 그쳤다. 직전 조사(2020년) 때 이 비율은 59%였다.

장기적으로 대형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3%로 더 낮았다. 반면 중견 로펌에 대한 관심도는 3년 전 21%에서 올해 23%로 소폭 올랐다.

이들은 더 많은 휴가(62%)나 탄력적인 근무 일정(60%), 학자금 대출 지원(44%) 등을 확보하기 위해 월급 일부를 반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를 덜 받더라도 고객에게 비용 청구가 가능한 업무 시간을 줄이길 희망하는 비율도 41%에 달했다.

법조계 내 성차별적 문화와 관련해 응답자 79%가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반응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견은 69%였다. 응답자 65%는 구직 과정에서 근무 기관 구성원들의 인종, 민족, 성별 구성을 따져본다고 답했다.

로펌들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이 “가치가 있고 진정성을 확보했는가”라는 물음에는 60%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응답자 63%는 근무지 선택 과정에서 ‘사회 정의 달성 여부’를 매우 또는 상당히 중요한 고려 요소로 꼽았다.

대형 로펌이 아닌 사내 법무팀이나 정부 기관, 비영리 단체 취직을 희망하는 비율은 53%로 과반이었다. 특히 정부 기관에 대한 선호는 3년 동안 6%에서 16%로 큰 폭 상승했다.
"역대급 호황 누렸는데"…Z세대 변호사, 대형 로펌 꺼리는 이유
설문 대상자 중 70%가 1995~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였다. 학생 대부분은 미 시사매체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 선정 상위 100대 로스쿨 소속이었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재클린 보스커 르페브르 메이저린제이앤아프리카 이사는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열망이 Z세대의 인식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Z세대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빈번해진 유연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로펌에선 흔한 야근 또는 휴일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고, 이로부터 삶의 동기를 얻는 Z세대의 경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르페브르 이사는 “대형 로펌에 대한 Z세대들의 관심은 단기적이다. 단지 재정 자립과 직무 관련 속성 교육을 받기 위한 것”이라며 “이들은 자기 삶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일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로펌 취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공동으로 참여한 네이선 퍼트도 “Z세대는 과거 그 어떤 세대보다 사회 정의와 이타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로펌 DLA파이퍼의 프랭크 라이언 공동 의장은 “정치·사회적 불안과 저성장, 소득 불평등을 겪어 온 젊은 변호사들에겐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언급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팬데믹이 절정이던 때 역대급 호황을 누렸던 로펌 채용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라이언 의장은 로펌들이 젊은 변호사들의 “영혼을 충만하게 할” 사회 공헌에 집중하고, 이를 자주 홍보하는 것이 신규 채용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메이저린제이앤아프리카 연구진도 로펌들에 Z세대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와 부합하는 무료 변론 활동을 늘릴 것을 추천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