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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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상장사들의 지난해 순이익이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엔저(低) 영향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SMBC닛코증권은 일본 주요 상장기업의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순이익이 과거 역대 최대였던 2021년의 34조엔(약 337조원)을 약간 웃돌 것으로 14일 추산했다. 상장사 1308곳의 실적 추정치를 집계한 결과다.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39조1000억엔, 매출은 580조3000억엔으로 각각 4.2%, 14.2%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단 ‘주식회사 일본’을 이끌던 수출 제조업체들의 실적은 주춤한 반면 비제조업체들의 순이익은 많이 늘어나는 등 업종별로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엔저·엔데믹 겹호재…日기업 이익 신기록

소니 넘어선 종합상사 순익

지난해 일본 상장사들의 사상 최대 순이익 기록에 가장 크게 기여한 업종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비제조업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선언하는 등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비제조 업종의 순익이 1년 전보다 34.7%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양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와 일본항공(JAL)의 순익은 코로나19 확산 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운수업의 순익은 1355% 급증했다.

종합상사들은 처음으로 ‘순익 1조엔 시대’를 열었다. 미쓰비시상사와 미쓰이물산의 지난해 순익은 각각 1조1806억엔과 1조1306억엔으로 1년 전보다 20%가량 늘었다. 일본 종합상사의 순익이 1조엔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인 소니그룹의 지난해 순익(9371억엔)보다 많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원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종합상사의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는 설명이다. 4대 종합상사의 순익은 3조5600억엔으로 2년 전보다 세 배 넘게 급증했다.

도요타 등 제조업은 ‘엔저 효과’ 주춤

반면 제조업은 매출이 16.9% 늘어나고도 순익은 5.5% 줄었다. 엔저에 따른 수출 증가보다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분이 더 컸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원재료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 업종의 순익은 17.5% 감소했다.

특히 일본 경제의 중심축인 자동차 업종과 전자 업종의 순익이 각각 4.7%, 3.1% 줄어들었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매출은 37조1542억엔으로 18.4% 증가했지만, 순익은 2조4513억엔으로 14% 감소했다. 도요타의 순익이 1년 전보다 줄어든 것은 4년 만이다.

소니그룹도 매출은 11조5398억엔으로 16.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조2082억엔으로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금까지는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수출 대기업들의 순익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엔화 가치가 20%가량 떨어졌는데도 순익이 오히려 줄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엔화가 강세를 나타내자 일본의 수출 대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해외로 대거 이전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2002년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2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0.7% 늘어났다. 2022년에는 엔화 가치가 1엔 하락할 때 영업이익 증가율이 0.43%로 둔화했다. 1995~1998년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연간 무역흑자가 970억엔씩 늘었다. 현재는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무역적자가 7000억엔씩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최대 기업 도요타자동차의 지난해 실적에서도 이런 산업구조 변화의 영향이 잘 나타난다. 도요타는 1조2800억엔의 환차익을 올렸지만,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1조2900억엔의 손실을 봤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