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병자’로 불려 온 그리스의 경제 상황이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집권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 국채 금리(수익률)가 급락하면서 이탈리아와의 금리 스프레드(격차)를 24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벌렸다.

강력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국가 신용등급 회복을 앞둔 가운데 투자자들이 이번 총선 결과를 긍정적으로 인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총선 직후 그리스 국채금리 급락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데이터를 활용해 그리스 국채 수익률과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 간 스프레드가 1999년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10년 만기 그리스 국채 수익률은 0.15%포인트(p) 내려 3.85%까지 내렸다. 전날 치러진 총선 결과에 시장이 우호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통상 한 국가의 신용도가 높아질수록 국채 금리는 낮아진다.

같은 날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는 4.3% 수준이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는 2011~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급등했고, 통상 그리스가 이탈리아보다 더 높았다. 그리스의 부채 상환 능력이 이탈리아보다 더 낮은 것으로 인식됐다는 의미다.

그 이후 10여년간 두 나라 간 국채 금리 스프레드는 엎치락뒤치락하다 올해 4월부터 마이너스를 유지해 왔다. 그리스가 신용등급을 회복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스프레드 폭은 점차 커졌다. 현재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투기등급(speculative grade)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S&P글로벌은 최근 그리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했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에는 시장이 옳았다”며 “이탈리아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 체제에서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끌고 있는 그리스는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서 ‘스타’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2019년 집권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감세 등 시장 친화적 정책을 통해 그리스 경제의 극적인 회복을 이끌었다.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던 경제 성장률을 2021년 8.4%, 2022년 5.9%까지 끌어올렸고, 2015년 27.5%에 달했던 실업률을 2021년 14.8%까지 낮췄다.

채권 시장도 이에 반응했다. 그리스 국채 금리는 하락세를 거듭해 유럽 채권시장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를 136bp(1bp=0.01%)까지 좁혔다. 2021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산출하는 ICE 그리스 국채 지수는 올해 들어 4.2% 올랐다. 유로존 전체 상승률(1.2)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며, 이탈리아(2.7%)와의 격차도 크다.

‘신용등급 상향’ 기대한 투자자들 러시

경제학자들은 그리스의 신용등급 상향을 대비해 선행 투자에 나선 ‘패스트 머니(fast money)’ 투자자들이 그리스 국채 가격을 밀어 올렸다고 분석했다. 소시에테제네랄(SG)의 션 코우 금리 부문 책임자는 “그리스의 신용등급 상향이 (국채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정부 부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6%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 171%까지 하락했다. 이는 재정 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높은 경제 성장률과 재정 흑자, 인플레이션 등에 힘입어 부채 감소세는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슈미딩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의 부채 상당 부분은 10여 년 전 구제금융을 제공한 EU 집행부가 소유하고 있어 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성이 다른 국가들보다 덜 하다”며 “2026년에는 그리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이탈리아보다도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기준 이탈리아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44.4%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이 그리스의 경제 전망에 대한 낙관론에 불씨를 댕겼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 신민주주의당(ND)은 선거에서 40.79%를 득표해 전체 의석 300석 중 146석을 확보했다.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과반 의석(151석)보다는 5석 부족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슈테판 다이크 무디스 부사장은 이번 선거로 “재정‧경제 정책이 연속성 있게 추진되면서 국가 부채 부담이 감소세가 지속될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며 “신용 측면에서 그리스에 긍정적”이라고 짚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