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 본격화하고 있다. 수년간 돈을 빌려 각종 자산에 투자해오던 중국인들이 과도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하면 중국의 경제 성장세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채 줄이는 중국…경제 성장에 '먹구름'

민간·기업·정부 모두 지출 줄이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많은 중국인이 올해 들어 부채 상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며 “차입자들이 지출과 투자를 줄이고 부채를 갚으면서 ‘디레버리징’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직면할 것”이라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제는 레버리지(부채)와 함께 성장하고 이것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디레버리징으로 전환되며 수축한다.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 기간 인프라 투자와 아파트 건설 등에 대규모로 투자해왔고, 이 과정에서 부채 규모도 급증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작년 9월 기준 295%로 미국(257%), 유로존(258%)을 넘어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대출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국 데이터 제공업체 윈드(Wind)에 따르면 중국의 대표 유동성 지표인 사회융자총량은 2017년 15%, 2012년 19% 증가한 데 비해 2022년에는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회융자총량은 은행의 위안화와 외화 대출, 보험권 대출, 회사채와 신주 발행 등을 더한 지표다.

디레버리징 움직임은 민간, 기업, 정부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중국인들이 최근 지출을 줄이고 주택담보 대출 등을 갚기 시작하면서 ‘제로코로나’를 해제했음에도 소비는 예상보다 늘어나지 않고 있다. 민간 기업들은 지출을 장려하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 불확실성 속에 추가로 투자하지 않고 있다.

지방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세수가 줄자 모든 지출을 줄이고 있다. 시장 분석 기관인 중국지수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300개 도시의 토지 판매 규모는 1년 전보다 26% 감소했다.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지방정부도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집계 기준 지난해 4분기 지방정부융자기구(LGFV) 조달 자금은 54억위안(약 9740억원) 순감했다. LGFV의 조달 자금이 순감했다는 것은 채권 발행, 은행 대출 등으로 확보한 신규 자금보다 상환한 자금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니콜라스 보스트 시페러캐피털파트너스 중국 연구책임자는 “차입자들이 부채 상환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높여줄 새로운 프로젝트에 자금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레버리징 사태가 금융위기 만들어”

과거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는 디레버리징에 실패하며 위기를 겪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차입자들은 낮은 금리에도 돈을 빌리지 않고, 기존의 부채 상환에 집중해야 했다. 이후 일본 부동산 시장의 수요가 급감했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200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2009년 금융 위기를 촉발했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대공황 이후 45번의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32번은 금융위기가 뒤따랐다.

경제학자들은 다만 중국 중앙 정부가 재정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극심한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에 빠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다소 더딘 경제 성장을 용인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