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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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 가운데 하나인 흑연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배터리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법안을 시행하자 기업들이 흑연 공급처 다변화에 나섰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에 이어 흑연 확보전까지 치열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배터리용 흑연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등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중국 외 지역에서 이를 확보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에서 흑연을 생산하는 호주 탈가그룹은 테슬라, 도요타, 포드 등과 흑연 공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테슬라는 모잠비크에서 광산을 운영하는 시라리소스와 매그니스에너지테크놀로지스에서 흑연 공급 계약을 맺었다. 시라리소스는 미국에, 탈가는 스웨덴에 흑연 가공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그간 흑연은 리튬, 코발트 등 다른 전기차 배터리 소재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흑연은 고온을 견디는 성질이 있어 철강을 만드는 용광로의 내화재(耐火材) 등으로 주로 쓰였다.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흑연의 또 다른 용도가 부각됐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리튬이온을 저장·방출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음극재가 필요한데, 안정성이 높고 가격이 저렴한 흑연이 최적의 소재로 꼽혀서다. 컨설팅업체인 프로젝트블루는 올해 처음으로 흑연 사용처 중 전기차 배터리가 절반을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이 공급망에서 중국산 비중을 줄이는 디리스킹(위험 완화) 정책을 펼치자 전기차 제조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흑연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광물자원 조사업체인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MI)에 따르면 세계 흑연의 61%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흑연을 포함한 배터리 음극재용 최종 가공재는 98%가 중국산이다.

미국과 EU는 높은 중국 의존도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해 중국 등 우려 국가의 기업에서 추출·가공된 핵심 광물을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하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EU는 핵심 원자재의 65% 이상을 단일 국가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발표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