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의 배신…예고편이 맞지 않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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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시대 시험대에 오른 나라들 / 美증시 주간전망
일반적으로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에 선행합니다. 기대인플레는 실제 인플레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민간 통계는 정부 통계보다 빠르게 시장을 반영합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원칙들입니다. 그러나 팬데믹발 인플레이션 시대엔 전혀 들어맞지 않고 있습니다. 생산자물가는 전월대비 마이너스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역전돼 있는 게 적지 않습니다. 근원 물가가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보다 높습니다. 헤드라인 기준으로 개인소비지출(PCE)이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높습니다. 기준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노습니다.
기존과 달라진 인플레 형태여서 예측도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금리 상승기엔 한 번 동결하면 6개월 내 인하로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재인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건너뛰기(skip)가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나마 본인들의 생각이 틀릴 수 있는 것에 대비하는 보험용으로 들어가던 "들어오는 데이터에 달렸다"는 말만 살아남았습니다. 대부분 발언의 후반부에 위치합니다. 이 말을 전반부에 하는 인사도 있습니다. 비둘기파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입니다. 지난해 취임해 올해 처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굴스비 총재는 자칭 '데이터 도그'(data dog)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나는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데이터 도그"라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올 데이터의) 냄새를 더 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7월 FOMC 때까지 냄새를 맡아볼 수 있는 데이터는 5월 PCE와 6월CPI, 6월 고용보고서가 남아있습니다. 굴스비 총재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사들이 7월 인상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용도로 쓸 심산입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지난주 의회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금리 상승 후반부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시속 75마일을 달리는 고속도로를 지나 지방도에 오면 시속 50마일로 줄이고 목적지 근처에선 속도를 더 줄여야 한다는 것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파월 의장이 의도하는 것은 연말까지 금리인상 정국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꺾어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이 2회 인상입니다. 7월에 올리고 그 다음에 쉬더라도 '스킵'이란 말을 써가면서 연말까지 긴축 분위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 기대 인플레가 상승하거나 증시의 과도한 랠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월 의장의 7월 금리인상 소신은 이번 주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장소만 유럽으로 바뀝니다. 그는 오는 28일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 패널로 나옵니다. 다음날에 스페인으로 옮겨 스페인중앙은행 주최 컨퍼런스에서 패널로 나섭니다.
민간 부동산 업체들의 통계는 이미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렌트비 상승율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확연히 꺾였습니다. 통상 민간 통계가 미국 정부 공식통계보다 6개월 선행하기 때문에 올 상반기부터 주거비 상승률이 둔화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주거비 둔화세는 미국 정부 통계에서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간 부동산 업체들의 렌트비 통계는 신규 계약 중심입니다. 기존 계약이 들어가더라도 실제 살고 있는 세입자 위주입니다. 이에 비해 CPI에선 OER(owners' equivalent rent)로 불리는 집주인의 가상 렌트비 비중이 높습니다. "내 집의 렌트비를 얼마나 받겠냐"는 설문조사이기 때문에 실거래와는 다릅니다. OER은 원래 실거래 통계보다 후행하는데 금리상승기엔 더 늦게 반영됩니다. 기대인플레율도 실제 인플레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립니다. 장기 기대인플레는 안정적 수준에 접어들었지만 1년 기대 인플레율은 전체적으로 보면 우하향 하고 있습니다. 뉴욕 연은의 1년 기대인플레율은 올 1월 5%에서 5월에 4.1%로 둔화했습니다.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1년 기대인플레율은 지난달 3.3%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근원물가는 모든 선행지표와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가 안정과 부동산 시장 하락으로 인플레는 언젠가는 떨어질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지만 끈적끈적한 근원물가 때문에 인플레 둔화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초과저축과 블루칼라의 남아도는 일자리가 인플레 둔화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Fed 인사들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계속 매파적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30일 발표되는 5월 PCE에서도 드러날 전망입니다. 전달보다 PCE 상승율이 올라가 증시가 휘청거렸던 '4월 PCE 쇼크' 정도는 아니겠지만 상승율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습니다.
PCE 상승율은 3월 4.2%에서 4월에 4.4%로 올라갔습니다. 5월엔 4.2%로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주목도가 더 높은 근원 PCE 상승율은 3월 4.6%에서 4월에 4.7%로 올랐습니다. 이번엔 4.6%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박스권 탈출은 어려울 전망입니다. 오히려 또다시 5월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높으면 인플레 우려가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Fed로부터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각자도생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금리를 많이 올리지 않고 인플레를 방어하며 버틸 수 있을 지가 해당 국가의 맷집을 판단할 수 있는 최대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기존과 달라진 인플레 형태여서 예측도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금리 상승기엔 한 번 동결하면 6개월 내 인하로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재인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건너뛰기(skip)가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결이 다른 '데이터 도그'
이달 들어 Fed 인사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비둘기파(통화완화선호)든 매파든 "물가안정이 우선"이라거나 "인플레를 잡기 위해 갈 길이 멀다" 같은 말을 되뇌이고 있습니다. 은행 위기나 경기를 고려한다는 말은 사라졌습니다.그나마 본인들의 생각이 틀릴 수 있는 것에 대비하는 보험용으로 들어가던 "들어오는 데이터에 달렸다"는 말만 살아남았습니다. 대부분 발언의 후반부에 위치합니다. 이 말을 전반부에 하는 인사도 있습니다. 비둘기파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입니다. 지난해 취임해 올해 처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굴스비 총재는 자칭 '데이터 도그'(data dog)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나는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데이터 도그"라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올 데이터의) 냄새를 더 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7월 FOMC 때까지 냄새를 맡아볼 수 있는 데이터는 5월 PCE와 6월CPI, 6월 고용보고서가 남아있습니다. 굴스비 총재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사들이 7월 인상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용도로 쓸 심산입니다.
징검다리 인상하나
대부분의 Fed 인사들은 7월 FOMC의 방향은 정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대부분 겉으론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속으론 대부분 인상으로 기운 듯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인플레는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높다"거나 "목적지에 거의 다 왔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7월 인상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습니다.제롬 파월 Fed 의장의 지난주 의회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금리 상승 후반부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시속 75마일을 달리는 고속도로를 지나 지방도에 오면 시속 50마일로 줄이고 목적지 근처에선 속도를 더 줄여야 한다는 것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파월 의장이 의도하는 것은 연말까지 금리인상 정국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꺾어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이 2회 인상입니다. 7월에 올리고 그 다음에 쉬더라도 '스킵'이란 말을 써가면서 연말까지 긴축 분위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 기대 인플레가 상승하거나 증시의 과도한 랠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월 의장의 7월 금리인상 소신은 이번 주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장소만 유럽으로 바뀝니다. 그는 오는 28일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 패널로 나옵니다. 다음날에 스페인으로 옮겨 스페인중앙은행 주최 컨퍼런스에서 패널로 나섭니다.
인플레 이론은 다 틀렸다?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은 "렌트비는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해왔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금리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민간 부동산 업체들의 통계는 이미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렌트비 상승율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확연히 꺾였습니다. 통상 민간 통계가 미국 정부 공식통계보다 6개월 선행하기 때문에 올 상반기부터 주거비 상승률이 둔화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주거비 둔화세는 미국 정부 통계에서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간 부동산 업체들의 렌트비 통계는 신규 계약 중심입니다. 기존 계약이 들어가더라도 실제 살고 있는 세입자 위주입니다. 이에 비해 CPI에선 OER(owners' equivalent rent)로 불리는 집주인의 가상 렌트비 비중이 높습니다. "내 집의 렌트비를 얼마나 받겠냐"는 설문조사이기 때문에 실거래와는 다릅니다. OER은 원래 실거래 통계보다 후행하는데 금리상승기엔 더 늦게 반영됩니다. 기대인플레율도 실제 인플레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립니다. 장기 기대인플레는 안정적 수준에 접어들었지만 1년 기대 인플레율은 전체적으로 보면 우하향 하고 있습니다. 뉴욕 연은의 1년 기대인플레율은 올 1월 5%에서 5월에 4.1%로 둔화했습니다.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1년 기대인플레율은 지난달 3.3%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근원물가는 모든 선행지표와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가 안정과 부동산 시장 하락으로 인플레는 언젠가는 떨어질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지만 끈적끈적한 근원물가 때문에 인플레 둔화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초과저축과 블루칼라의 남아도는 일자리가 인플레 둔화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Fed 인사들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계속 매파적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30일 발표되는 5월 PCE에서도 드러날 전망입니다. 전달보다 PCE 상승율이 올라가 증시가 휘청거렸던 '4월 PCE 쇼크' 정도는 아니겠지만 상승율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습니다.
PCE 상승율은 3월 4.2%에서 4월에 4.4%로 올라갔습니다. 5월엔 4.2%로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주목도가 더 높은 근원 PCE 상승율은 3월 4.6%에서 4월에 4.7%로 올랐습니다. 이번엔 4.6%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박스권 탈출은 어려울 전망입니다. 오히려 또다시 5월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높으면 인플레 우려가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각자도생 시대 생존게임
미국은 골디락스를 기대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지 않습니다. 인플레가 짐이 될 뿐 긴축으로 인한 침체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1분기를 지나 2분기 들면서 확실히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었습니다. 유럽은 이미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기술적 침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금리인상은 계속 하겠다고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플레율이 높고 경기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히려 유로존에 속해 있지 않은 국가들입니다. 영국이나 스위스, 노르웨이가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유로존의 인플레가 추세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될 지가 관심사입니다. 30일에 발표되는 6월 유럽 인플레는 '기대반 우려반' 형태로 나올 전망입니다. 헤드라인 물가는 계속 우하향하는 형태를 보이겠지만 근원물가는 여전히 박스권에 갇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올라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인플레는 덜한 편입니다. 코로나19 방역 강도가 높았고 팬데믹 기간에 돈을 상대적으로 덜 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긴축 영향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습니다.Fed로부터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각자도생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금리를 많이 올리지 않고 인플레를 방어하며 버틸 수 있을 지가 해당 국가의 맷집을 판단할 수 있는 최대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