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역대급 엔저’를 기록하던 엔화가 이달 들어 소폭 반등하면서 엔화 강세를 점치는 낙관론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등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안전자산인 엔화가 주목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당국의 개입에도 엔화가 반등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화 가치는 이달 들어 2.8% 올랐다. 10개 주요국 통화 중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지난달 장중 달러당 145엔을 돌파하는 등 엔저가 지속된 올 상반기에는 꼴찌였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엔화의 매력을 부각시켰다는 분석이다. 최근 미 중앙은행(Fed)이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재개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고, 호주와 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고금리로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면 안전자산으로 통용되는 엔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라즈 파텔 반다 리서치 전략가는 “우리는 글로벌 경기침체 위험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연말과 내년으로 갈수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세계 경제가 침체될 경우 엔화 가치가 20%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투자은행 UBS의 글로벌 자산관리부는 엔화 강세의 핵심 요건은 미국의 경기침체라고 분석했다.

엔화가 당장 오를 것으로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경제도 침체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최근 발표된 지난달 실업률은 3.6%로 전월(3.7%)보다 낮아졌다.

JP모간은 연말까지 달러·엔 환율 전망치를 달러당 142엔에서 152엔으로 수정했다. 엔화가 현재보다 7.5%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엔화가 중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도 힘을 얻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Fed가 내년 중반쯤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경우 엔화는 절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올해 하반기 선진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엔화가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말 달러·엔 환율 전망치는 현재보다 낮은 달러당 130엔으로 제시했다.


최근 역대급 엔저가 이어지자 일본은행은 “외환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지나친 움직임이 있으면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구두개입을 시도했다. 이후에도 재차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엔저의 기반에는 일본 기업들의 ‘잃어버린 수출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칼럼을 통해 “외환시장 개입은 통화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맞지 않을 때만 효과가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당국의 개입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FT는 “엔화 가치가 2년 전 대비 25%나 떨어진 이유는 일본 수출기업들이 과거의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실질 수출규모 기준으로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썼다.

과거 일본의 가전제품과 산업용 기계, 자동차 등 수출품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고가에도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과 중국 등 경쟁국에 뒤처졌고, 제품을 판매하려면 엔저 등으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평가다.

FT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본 기업들이 전기차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어 곧 최대 수출국 지위를 중국에 내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