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원 등에 업은 日, 반도체 부활 ‘10년 계획’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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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前 총리 2020년 퇴임 후
경제외교·의원연맹 창립 주력
대만 TSMC 공장도 유치
재계 합작 '라피더스' 설립
최첨단 제품 생산기지로 육성
美·EU 전폭적 지원 끌어내
경제외교·의원연맹 창립 주력
대만 TSMC 공장도 유치
재계 합작 '라피더스' 설립
최첨단 제품 생산기지로 육성
美·EU 전폭적 지원 끌어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작년 7월 죽기 전 가장 공을 들인 활동이 일본·대만 경제협력이었습니다. 그의 최측근 의원들이 여러 차례 대만을 오갔어요.”
지난 8일 아베 전 총리 사망 1주기를 맞아 사석에서 만난 아베파 소속 의회의원의 말이다. 아베 전 총리가 대만을 주목한 이유가 반도체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해 5월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이 발족됐다. 아베 전 총리는 집권여당인 자민당 의원 100여 명으로 구성된 이 연맹의 특별고문을 맡았다. 한 달 뒤인 6월 대만 TSMC의 구마모토 공장 유치를 기점으로 일본 정부는 반도체 전략을 발표한다. 반도체 생산공장 신설 등에 총 2조엔을 지원해 2030년 일본 반도체 매출을 15조엔까지 늘린다는 내용이다.
반도체 시장은 회로 선폭에 따라 크게 미래 최첨단 반도체(2㎚ 이하)와 범용 반도체(12~28㎚), 구형 반도체(40㎚ 이상) 등 세 가지로 나뉜다. 2021년 6월 반도체 전략을 발표할 당시 일본은 구형 반도체밖에 만들 수 없었다. 비어 있는 범용 반도체 분야는 TSMC 등 해외 반도체 기업을 끌어들여 해결했다. 현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보조금이 6154억엔인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일본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2조7000억엔에 달한다.
마지막 남은 미래 최첨단 반도체는 일본 정부와 도요타자동차, 소니 등 대표 기업들이 작년 8월 공동으로 설립한 라피더스가 맡는다. 라피더스가 2027년 2㎚급 반도체를 생산하면 일본은 범용부터 최첨단 반도체까지 모두 생산하는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부활한다.
일본 반도체 전략을 뜯어보면 부활의 성패는 라피더스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피더스의 공언대로 삼성전자, TSMC와 벌어진 20년의 격차를 5년 만에 메워 2027년부터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다면 세계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일 반도체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타이어와 자동차 부품을 잘 만든다고 해서 오토바이 메이커가 갑자기 포뮬러1(F1)에 출전하는 슈퍼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주도했거나 다수 일본 기업이 공동으로 한 사업 재편이 성공한 역사도 없다.
1999년 히타치제작소와 NEC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통합한 엘피다메모리는 2012년 파산했다. 미쓰비시전기, 히타치, NEC의 반도체 부문을 통합한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도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하려면 10년간 5조엔이 필요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확정한 지원금은 3300억엔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려는 일본과 한국·대만 이외의 생산 거점이 절실한 미국·EU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지난해 일본은 전자·통신기기에서 2조엔 이상의 무역적자를 냈다.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등 전자산업에서 반도체 비중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030년 일본 전자·통신기기 무역적자는 10조엔을 넘을 전망이다.
인텔, IBM 같은 미국과 EU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개발과 설계만 담당하고 생산은 위탁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회사다. 중국의 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 이외에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제조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일본 반도체 전략을 담당하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5월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로봇과 같은 전자제품이 주력산업인 일본이 반도체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지난 8일 아베 전 총리 사망 1주기를 맞아 사석에서 만난 아베파 소속 의회의원의 말이다. 아베 전 총리가 대만을 주목한 이유가 반도체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라피더스가 성공의 관건
2020년 9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그가 대만으로 눈을 돌린 2021년 봄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2030년이면 사실상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던 반도체 산업을 소생시키려는 마지막 시도가 시작된 때다.그해 5월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이 발족됐다. 아베 전 총리는 집권여당인 자민당 의원 100여 명으로 구성된 이 연맹의 특별고문을 맡았다. 한 달 뒤인 6월 대만 TSMC의 구마모토 공장 유치를 기점으로 일본 정부는 반도체 전략을 발표한다. 반도체 생산공장 신설 등에 총 2조엔을 지원해 2030년 일본 반도체 매출을 15조엔까지 늘린다는 내용이다.
반도체 시장은 회로 선폭에 따라 크게 미래 최첨단 반도체(2㎚ 이하)와 범용 반도체(12~28㎚), 구형 반도체(40㎚ 이상) 등 세 가지로 나뉜다. 2021년 6월 반도체 전략을 발표할 당시 일본은 구형 반도체밖에 만들 수 없었다. 비어 있는 범용 반도체 분야는 TSMC 등 해외 반도체 기업을 끌어들여 해결했다. 현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보조금이 6154억엔인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일본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2조7000억엔에 달한다.
마지막 남은 미래 최첨단 반도체는 일본 정부와 도요타자동차, 소니 등 대표 기업들이 작년 8월 공동으로 설립한 라피더스가 맡는다. 라피더스가 2027년 2㎚급 반도체를 생산하면 일본은 범용부터 최첨단 반도체까지 모두 생산하는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부활한다.
일본 반도체 전략을 뜯어보면 부활의 성패는 라피더스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피더스의 공언대로 삼성전자, TSMC와 벌어진 20년의 격차를 5년 만에 메워 2027년부터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다면 세계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일 반도체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타이어와 자동차 부품을 잘 만든다고 해서 오토바이 메이커가 갑자기 포뮬러1(F1)에 출전하는 슈퍼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주도했거나 다수 일본 기업이 공동으로 한 사업 재편이 성공한 역사도 없다.
1999년 히타치제작소와 NEC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통합한 엘피다메모리는 2012년 파산했다. 미쓰비시전기, 히타치, NEC의 반도체 부문을 통합한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도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하려면 10년간 5조엔이 필요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확정한 지원금은 3300억엔에 불과하다.
◆미·EU 전폭적 지원이 강점
성공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요인이 없지는 않다. 라피더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아직 기술도, 생산공장도 없는 라피더스지만 벨기에 제휴회사인 IMEC 도움으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두 대나 확보했다. 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최첨단 반도체 제작의 필수 장비다. 1년 생산량이 50대 안팎에 불과해 삼성전자와 TSMC가 먼저 손에 넣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려는 일본과 한국·대만 이외의 생산 거점이 절실한 미국·EU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지난해 일본은 전자·통신기기에서 2조엔 이상의 무역적자를 냈다.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등 전자산업에서 반도체 비중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030년 일본 전자·통신기기 무역적자는 10조엔을 넘을 전망이다.
인텔, IBM 같은 미국과 EU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개발과 설계만 담당하고 생산은 위탁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회사다. 중국의 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 이외에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제조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일본 반도체 전략을 담당하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5월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로봇과 같은 전자제품이 주력산업인 일본이 반도체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