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서 한국의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저금리 시대 국내 투자사들이 적극 투자했던 영미의 구축 ‘B급 빌딩’들이 최근 상업용 부동산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다. 글로벌 긴축 기조와 원격근무의 영향으로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늘어나고, 그나마 있는 수요도 신축에 입지가 좋은 A급 건물로 몰리면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H자산운용사가 영국 런던 금융지구의 원 폴트리 건물을 매각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 폴트리 건물은 영국과 왕립증권거래소 등 글로벌 금융기관이 모여있는 뱅크역에 연결된 건물이다. 공유오피스 기업인 위워크가 입주해 있다.

블룸버그는 원 폴트리 건물의 매각 예상가치는 약 1억2500만파운드(2049억원)이라고 보도했다. H자산운용이 2018년 인수할 당시 가격(2780억원)보다 26% 떨어졌다.

다만 H자산운용은 이메일을 통해 “자산을 매물로 내놓은 적 없고 리파이낸싱 절차를 밟고 있다”며 “예상가치도 정확하지 않다”고 부인했다.

블룸버그는 이런 사례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최근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런던에서만 한국 투자사가 소유한 대형 빌딩이 6곳 이상 매물로 나왔다. 이들 모두 인수 당시보다 평가가치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투자사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국내보다 수익률이 높았고, 저금리와 환율 등 대외환경도 현재보다 우호적이었다. MSCI Real Asset에 따르면 한국 투자사들은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외부 투자자로 한 해 동안 130억유로어치(약 18조4000억원) 거래를 진행했다.

그러나 임차인만 보고 구축인 B급 대형 빌딩을 선호한 투자 방식이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는 “한국인 투자사들은 입지와 친환경 기법 여부 등에 큰 초점을 두지 않았으며 수리 비용이 많이 드는 큰 건물들을 선호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고금리에 원격근무로 사무실 감축에 나선 기업들의 선호는 달랐다. 공실률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은 깔끔한 외관 및 내부, 입지 등을 모두 확보한 A급 건물에 입주하고 있다. 한국 투자사들이 소유한 구축 빌딩들은 수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가치가 급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투자사들이 매입한 유럽 부동산은 90여개로 상당수는 런던과 파리의 라데팡스 지구에 위치한 대형 건물들이었다. 한 채당 매입금액은 2억유로(약 2800억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들 건물의 가격은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20% 하락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건물을 환경 친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건축 비용이 오르면서 오래된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라며 “유령 및 좀비 오피스 부동산이 남겨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펀드는 30조원에 육박한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의 윤재원 이사는 “국내 펀드의 평균 투자 기간은 5년으로 국제 평균보다 짧아 경기 침체기를 버티기 어렵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저금리 시대 한국 투자사들이 메자닌(중수익) 대출을 선호한 점도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금리가 낮을 때는 메자닌 대출이 중위험 중수익 투자로 꼽혔다. 그러나 전 세계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가운데 부실 대출로 부동산을 처분하는 사례가 늘었고, 선순위 투자자들 외 원금 회수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B자산운용은 2019년 영국 런던 캐너리워프 소재 프라임오피스 빌딩에 7300만달러 규모의 메자닌 대출 약정을 체결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이곳에 파산관리인(receiver)이 지정됐다고 전했다.

금융감독원은 20일 증권사 임원들과 정기 간담회를 열고 해외 부동산 투자 상황을 점검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