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우크라 오데사항 폭격에 아프리카에서 왜 비명이?[원자재 이슈탐구]
요즘 세상에도 밥 굶는 사람이 있다

기상재해와 내전으로 식량상황 최악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밀과 옥수수 등 곡물 수출을 보장해주기로 한 '흑해 곡물협정'을 지난 17일 파기했다. 러시아는 드론과 탄도 미사일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최대 곡물수출 항구인 오데사 항의 곡물 선적용 크레인과 사일로 등 인프라를 파괴하고, 창고에 있던 곡물 6만 톤을 불태웠다. 우크라이나의 숨통을 조이면서 서방의 재제를 완화해 비료를 수출해보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푸틴도 뒤늦게 자국산 곡물을 카타르와 튀르키예 등을 통해 아프리카에 공급하겠며 수습에 나섰다.

수 십년 전 아프리카에선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지만, 최근엔 비영리 단체의 '빈곤 포르노'에 대한 비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아직도 전세계에 실제로 밥을 굶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가까운 북한에도 있다. 곡물 가격 급등은 구호 단체의 식량 수급을 어렵게 만들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최한 긴급회의에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세계에 인도주의적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랑 공급망의 동맥을 끊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우크라이나 곡물 거래 중단은 세계 식량 공급망의 주요 동맥이 끊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흑해 오데사항을 통한 수출이 막혀 대체 경로를 이용하면 운송비가 가 두 배 가량으로 치솟고 운송량에도 한계가 있다. 철도로 운송할 경우에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높다. 우크라이나는 곡물 협정을 통해 1년 간 3290만 톤 가량의 곡물을 수출했다. 지난해 WFP가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수단, 예멘에 공급한 밀의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산이었다. 마이클 던포드 WFP 동부아프리카 담당자는 도이체발레(DW) 방송에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 구호 단체들이 식량을 공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동부아프리카에서만 8000만명이 식량 공급 불안에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밀 선물 가격은 러시아의 곡물협정 파기 직후 11%이상 오른 부셸(약 27.2㎏) 당 7.26센트까지 갔고, 지금은 6.97달러 내외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2달러선까지 올랐던 만큼의 충격은 아니다. 그러나 WFP같은 기관 입장에선 곡물 가격이 평균 10%오르면 그 만큼 양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연구에 따르면 식량 가격이 1% 상승할 때마다 100만 명이 추가로 절대 빈곤층으로 밀려난다.

식량 수급 상황이 나쁜 국가의 현지 곡물 가격은 더욱 불안정한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작년 2월 두 배로 올랐던 밀 가격이 유엔의 중재로 흑해 곡물 협상이 체결된 후 4분의 1로 떨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치솟고 있다.

올해 곳곳의 기상이변으로 작황이 좋지 않은 탓에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세계 밀 재고량은 8년만에 최저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다행인 점은 지난해 브라질의 풍년으로 옥수수 재고량은 5년 만에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최근 쌀값도 다소 내렸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올해 식량 수급이 좋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프리카, 자연재해와 내전 이중고

아프리카 55개국의 연합인 아프리카연합(AU)이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중단하자 곧바로 유감을 나타냈다. 유엔 따르면 곡물이 충분히 생산되고 있는 요즘도 경제적인 이유로 69개국에서 3억6200만명이 기근에 시달리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아프리카엔 전세계에서 밥을 굶는 사람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거주하고 있다.

세계 각국을 강타하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에 아프리카도 예외 없이 피해를 보고 있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은 2020년부터 3년 이상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WFP에 따르면 소말리아에서 170만명, 에티오피아 51만6000명, 케냐 46만6000명 등 268만2000명이 장기 가뭄으로 농사를 못 짓거나 식수를 구할 수 없어 살던 곳을 떠나 난민 캠프 신세를 지고 있다.

수단에선 지난 4월 군벌들 사이 무력 충돌이 시작되면서 3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2019년 정부군과 반군 지도자들은 쿠데타를 벌여 30년 가까이 독재를 지속한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권을 누가 잡을지를 놓고 계속 다투다 결국 무력 충돌이 시작돼 전투기로 자국 수도 하르툼을 폭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엔 산하 WFP직원 3명이 사망하는 등 무차별 테러로 국가가 혼란에 빠졌다.

소말리아는 내전이 채 끝나지 않은 가운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째 우기에 비가 오지 않았다. 올해는 일부 지역에선 국지적 집중 호우로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5월 소말리아 중부 히란주에는 많은 비가 내려 샤벨레강 제방이 붕괴하면서 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에티오피아 북단의 티그라이 지역에선 2020년 11월 정부군과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반군 사이 내전이 벌어져 2년 간 싸우는 동안 50만 명이 숨지고 200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