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올여름 세계 곳곳이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는 가운데 세계 탄소 배출의 75%를 차지하는 주요 20개국(G20)이 화석연료 감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와 개발도상국인 중국·인도네시아 등이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의 대체재인 신재생에너지 관련 시설 투자도 인플레이션에 따른 비용 증가로 발목이 잡혔다.
사우디·中·러 반대…G20, 脫화석연료 '불발'

사우디·러 반대로 합의 불발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 고아에서 4일 동안 열린 G20 에너지장관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은 화석연료 감축 등의 부문에서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라지 쿠마르 싱 인도 전력부 장관은 “일부 국가가 화석연료 감축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며 “이들은 화석연료 감축 대신 온실가스 배출 포집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탄소 포집은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지구온난화를 막는 기술이다. 이번 회의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세 배로 늘리자는 목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외신들은 산유국인 사우디가 화석연료 감축에 강하게 반대했고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이 동참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예전부터 화석연료 감축에 반대해왔다.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석유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만큼 화석연료 감축이 달갑지 않다. 경제 성장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앞서 산업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성장한 선진국들의 친환경 요구에 반감을 갖고 있다.

천연가스를 무기화한 러시아, 최근 경기 둔화 우려가 심화한 중국도 화석연료 발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양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은 최근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가 중국을 방문하며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논의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팬데믹 기간 감소했던 글로벌 석탄 사용량은 다시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석탄 사용량은 80억t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재생에너지 가격에 영미 ‘난감’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꼽히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도 순탄치 않다. 아직 화석연료보다 경제성이 낮은 상황에서 최근 건설자잿값 상승으로 시설투자 비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적극적인 유럽과 미국도 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난관에 부딪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풍력 발전 계약이 잇따라 취소됐다. 스페인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이베르드롤라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풍력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판매하기로 한 계약을 취소했다. 덴마크 국영 에너지 기업인 오스테드는 미 로드아일랜드주의 해상 풍력발전 공급 입찰에서 가격이 비싸 떨어졌고, 스웨덴 국영 전력회사 바텐폴은 영국에 풍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한 계획을 백지화했다.

매즈 니퍼 오스테드 최고경영자(CEO)는 “풍력 터빈 등 주요 장비 가격이 확 올랐다”며 “재생에너지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프로젝트가 지연될수록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져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컨설팅 기업 E3G의 앨든 마이어 선임연구원은 “전 세계 기온이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기후 변화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는 상황에서 세계는 (G20 회의에서) 행동을 촉구하는 분명한 목소리를 듣기 원했다”며 “그러나 회원국들은 뜨뜻미지근한 차만 내놨다”고 비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