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자본 조달 등 금융 여건이 대폭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은행(Fed)의 고강도 긴축(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열풍 등으로 주가 상승장이 계속되고, 채권 수익률은 하락(채권값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미국 시카고연방준비은행의 주간 국가금융상황지수(NFCI)는 16개월만에 최저치(-0.39243)를 기록했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상황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시간) "미국의 '깜짝 경제성장률' 역시 기업 환경에 고무적인 환경이 민간투자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이날 미국 상무부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2.4%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1.8~2.0%에 불과할 것이란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Fed는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기 위해 제로에 가까웠던 기준금리를 작년 3월부터 급격히 인상하고 있다. 지난 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연 5.00~5.25%이던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이날 긴축 소식에도 골드만삭스의 일일 금융상황지수(FCI)는 하락세를 보여 이달 중순 기록했던 1년 만의 최저치에 또 다시 근접했다.

프랭클린 템플턴 픽스드 인컴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소날 데사이는 "금융 여건이 완화된 것이 현실"이라며 "금리 인상 효과가 사실상 약 450bp 풀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Fed의 긴축이 시작된) 작년 3월 수준의 금융 여건으로 돌아간 것"이라며 "시장이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갖게 되면서 수요는 앞으로도 강할 것이며, 이는 금리 인하가 필요없을 정도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미국 시카고연방준비은행의 주간 국가금융상황지수.
미국 시카고연방준비은행의 주간 국가금융상황지수.
앤디 브레너 냇얼라이언스증권 국제채권책임자는 "현재 Fed가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조건이 완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열풍은 올해 미국 증시를 강세장으로 이끌었다. S&P 500 지수는 현재까지 20% 가량 상승했다. 기업들이 주식 판매를 통해 현금을 조달하기가 더 쉬워졌다는 의미다. 딜로직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조달은 전년 대비 104% 증가했다.

회사채 시장의 역동성도 투자 심리를 강화했다. 정크본드 시장에서 신규 물량이 부족해 투자자들이 얼마 안되는 신규 거래에 몰리면서다. 정크본드 수익률과 국채 수익률의 격차(스프레드)는 작년 말 3.9%포인트에서 최근 0.9%포인트로 좁혀졌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차입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프리미엄이 작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뱅가드의 하이일드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마이크 창은 "전반적으로는 금융 여건이 완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은 여전히 우량 발행사와 취약한 발행사를 차별하고 있고, 취약한 발행사는 여전히 자본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리가 높아지면 일반적으로 거시경제와 기업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