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경제대국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가 독일 산업 전체의 활력을 가라앉힌 데다,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자동차 강국’의 위상도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어서다. 독일 경제는 2분기에 ‘기술적 침체’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더딘 성장이 예상되는 등 전망이 밝지 않다.

경제 강국 독일, 이젠 '유럽의 병자' 우려
블룸버그통신의 30일 보도에 따르면 독일 자산운용사 플로스바흐 폰 스트로흐 산하 연구소의 토마스 메이어 소장은 “독일 경제가 바닥을 기고 있는지, 약간 후퇴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건 부차적인 문제”라며 “분명한 건 독일이 ‘유럽의 병자’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병자라는 표현은 원래 19~20세기 서구 열강에 밀려 가파른 쇠락의 길을 걸었던 오스만튀르크제국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21세기 들어서는 경제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를 일컫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독일에 ‘병자’ 딱지가 처음 붙은 건 통일 이후 1990년대 초반 막대한 통일 비용과 함께 실업률이 치솟았을 때다. 2000년대 들어 과감한 고부가가치 제조업 투자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면서 단숨에 유럽의 성장 엔진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충격이 있었던 2020년을 제외하면 독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단 한 번도 역성장한 적이 없다.

팬데믹 종료와 함께 되살아나는 듯하던 독일 경제는 올해 다시 고꾸라지며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을 제치고 가장 강력한 ‘병자’ 후보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독일의 올해 실질 GDP가 전년 대비 0.3%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G7 중 유일한 마이너스 성장이다. 핵심 요인은 에너지 위기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EU 차원의 제재에 따른 후폭풍이 컸다. 여기에 중국발(發) 수요 둔화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 기조가 겹치면서 제조업이 크게 위축됐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독일 차업계가 내연기관차 생산에 치우쳐 있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데이비드 폴커츠-란다으 도이체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라며 전기차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봤다.

올해 2분기 독일의 실질 GDP 증가율은 0%(전 분기 대비)로 보합세를 나타냈지만, 3분기부터 다시 꺾일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한 국가의 제조업과 서비스업 업황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S&P글로벌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이달 48.3으로, 올해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1년 넘게 기준점인 50을 밑돌고 있는데, 서비스업보다 부진한 제조업이 지수를 끌어내린 탓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요르크 크레이머 코메르츠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 새로운 경기 침체가 닥칠 것”으로 내다봤다. 카르스텐 브제스키 ING 글로벌매크로책임자는 “독일 경제는 스태그네이션(장기 경기 침체)과 리세션(불황) 사이의 중간지대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