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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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공포가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부상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구매국인 중국에서 기업 투자가 감소하면서 금속과 건설 자재 수요가 타격을 받고, 가계소비 위축으로 원유와 돼지고기 등 식량 및 에너지 수요가 줄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원자재 시장 트레이더들이 중국의 장기화되는 디플레이션과 수출 부진, 부동산 시장 위기, 위안화 가치 하락과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원자재 시장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침체 우려에도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외에도 중국이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를 해제하면서 원유와 석탄 등 연료 소비가 반등했다. 중국 정부가 경기 재개를 위해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도 거들었다.

그러나 리오프닝(경기 재개) 효과는 크지 않았고 최근 부동산 위기로 중국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고조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기업투자보다는 소비 회복에 주력하는 점, 신재생에너지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원자재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건설과 화석연료 등 ‘구(舊)경제’ 관련 원자재 수요의 장기적인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우선 니켈, 알루미늄,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은 연초 고점 대비 하락한 상태다. 중국 경제 둔화로 수요가 줄어든 여파다. 알루미늄 가격은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연초 고점 대비 18% 하락했다. 공급 부족에 시달렸던 니켈 가격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최근 한 달 동안에만 6.29% 하락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금속 가공업체들도 최근 수익성 하락으로 실적이 악화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들의 상반기 이익 하락률은 약 10년여 만에 최대 수준이다. 중국의 상반기 공업이익은 2조3884억6000만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8% 감소했다. 이중 금속 가공업체들의 이익은 44.0% 줄었다.

다만 신재생에너지 부문 투자가 수요를 일부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은 이달 보고서에서 “청정 에너지 부문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금속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썼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구리와 알루미늄 재고도 감소하는 추세다.

철강은 중국 부동산 부진의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 철강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건설업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철은 건설 활동의 황금기로 철강 수요도 회복되는 시기지만, 올해는 중국 철강업체들의 철광석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철광석 정보컨설팅업체인 내비게이트 코모디티의 아틸라 위드넬 상무는 “중국 산업 경제의 열악한 체력을 고려할 때 철강 수요가 갑자기 회복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상반기 늘린 원유 수입도 하반기에는 주춤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원유를 가공해 만드는 석유 제품이 중국에서 소비되지 않아서다. 디젤유 소비는 산업활동 부진으로, 휘발유 수요는 전기차 보급으로 부진한 상황이다. 중국 부동산 경기에 의존하는 석유화학 부문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신 7월 중국 디젤 수출은 전월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기업활동의 주 연료인 석탄과 가스 가격도 부진을 벗지 못하고 있다. 중국 석탄 표준 가격으로 꼽히는 최대 석탄 항구 친황다오 석탄 가격은 지난해 10월 t당 1600위안선에서 이달 830위안선으로 반토막이 났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 중국은 올 들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재개하고 자국 내 생산도 늘리며 경기 재개에 대비했지만,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中 디플레 공포'에 글로벌 원자재 시장 직격탄
중국이 세계 전체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돼지고기 가격도 하락세다. 경기 둔화 공포로 가계소비가 위축된 탓이다. 중국 내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10월 이후 36% 이상 떨어졌다.

돼지고기 소비 둔화는 중국 디플레이션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로 추정될 만큼 비중이 높다.

중국 양돈 및 사료 생산 기업 요영화봉목업유한회사(웰호프푸드)는 블룸버그에 “돼지고기 소비가 줄면서 돼지 사료로 쓰이는 대두(콩)의 중국 수요 증가세도 향후 몇 년간 감소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