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이슬람 결탁, 반미 석유 얼라이언스 태동 [원자재 이슈탐구]
페트로 달러가 주도하는 질서 '흔들'
꽃놀이패 쥔 중동, 위안화 원유시장 열어주나
미국의 중동정책과 중국의 부채문제가 관건


시진핑의 공산 독재국가 중국을 중심으로 '전쟁광' 푸틴의 러시아, 여성을 이등시민 취급하는 이슬람 정권 등 서구 시각으로는 악당들이 두바이를 거점으로 뭉치고 있다. 지난 24일 러시아 중국 인도가 참여한 브릭스(BRICS)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뿐만 아니라 이란까지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중·러와 이슬람의 연대가 뚜렷해졌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석유다. 석유 생산 글로벌 1위를 다투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 수입량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중국과 인도가 BRICS에 있다. 겉으로 '우리는 반서방 동맹이 아니다'라고 버텼던 인도와 브라질은 뒤에서 에너지 수입 관련 이득을 약속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와 이슬람의 반 서방 동맹 현실화는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게 대형 악재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네 번째로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며, 지난해 공급받은 10억3000만 배럴의 원유 가운데 6억9500만배럴이 중동에서 건너왔다. 중동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대안 없는 악몽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아프리카와 남미 산유국은 별 도움이 안된다. 정권의 면면과 상태를 보면 이들은 반미 동맹에 가담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 알메티예프스크 지역 유전의 석유펌프 / 사진=TASS
러시아 알메티예프스크 지역 유전의 석유펌프 / 사진=TASS

글로벌 석유 수도가 된 두바이

반미 동맹의 거점이 베이징이나 모스크바가 아닌 이유는 두바이에 석유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제재 이후 두바이가 석유 트레이드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스위스가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자 제네바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취급하는 트레이더들이 두바이로 짐을 싸 옮겨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바이에 갑자기 구매자와 판매자가 넘쳐나면서 시장에서 인재와 계약을 놓고 경쟁하면서 흥분과 경쟁, 의심이 뒤섞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두바이는 비즈니스 인프라와 은행 서비스 및 간소한 규제 덕분에 금, 다이아몬드, 차, 커피와 같은 농산물의 주요 거래지로 각광받았으나 석유 트레이딩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두바이가 제네바와 런던·뉴욕을 제치고 최대 원유 트레이딩 거점이 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FT가 러시아 세관 문서를 분석한 결과 올들어 지난 4월까지 UAE의 무역 회사들이 러시아산 석유를 최소 3900만t 사들였다. 170억달러(약 21조5000억원)가 넘는 규모로, 이 기간 러시아 수출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러시아산 원유를 싼 가격에 공급해 중국과 인도를 살찌우는 데는 중동 석유기업과 트레이더들이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트라피구라와 비톨 등 유럽의 중개 기업들이 러시아 원유 거래에서 표면적으로 손을 뗀 후 무주공산이 된 시장을 장악했다. FT에 따르면 올해 1~4월 러시아산 원유를 취급한 상위 20개 무역업체 가운데 8곳이 서류상 UAE기업이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지 중개업체가 아닌 러시아 로즈네프트 관계사거나, 불나방처럼 뛰어든 서방의 석유 트레이더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5월 글로벌 원자재 업체 하트리 파트너스가 런던 상품거래소에 있던 트레이딩 센터를 두바이로 이전한 사실을 지적하며 "두바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산유국과 가깝다"며 "기업 유치를 위한 두바이와 차익을 얻으려는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이슬람 결탁, 반미 석유 얼라이언스 태동 [원자재 이슈탐구]

이라크 두 차례 공격한 미국, 사우디 페트로 '元'은 놔두나

브릭스의 주요 의제인 자원 거래 탈(脫) 달러화 역시 두바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러시아가 국제 은행결제망(SWIFT)에서 쫓겨나 러시아 석유는 달러화 결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인도석유공사(IOC)와 릴라이언스 등 인도 정유사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중국 위안화 결제를 시작했다. 지난 5월까지는 러시아 측의 위안화 결제 요구를 거부해왔으나, 달러화 결제가 번번이 좌절되자 위안화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인도가 수입한 원유 가운데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로 1년 전의 16.5%에서 크게 늘었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사우디도 원유를 중국에 팔 때 위안화로 결제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과의 관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1970년대 미국의 금본위제 폐지 후 석유를 달러화로 거래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굳히는 데 일조했다. 미국도 중동을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미국은 1990년과 2003년 두 차례나 각각 수 십만명의 육해공군 병력을 총동원해 이라크를 공격하는 등 전면 군사 개입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의 글로벌 기술·금융 지배력이 공고해지고, 셰일혁명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해져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마저 낮아졌다. 그러자 미국 내에선 "더이상 사우디의 악행을 눈감아줄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8년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자말 카슈끄지가 튀르키예 영사관에서 살해당한 이후,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두둔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최근엔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15개월 동안 에티오피아 난민을 공격해 수백명을 살해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페트로 위안 동맹의 형성에는 중국 위안화 경제가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중국이 현재 부채 위기 상황에서 의외의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체제 동요를 감수하면서까지 부양정책을 최소화하고, 부실 기업과 관련해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안화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지적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