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석 UST 교수 "거북선 19개砲 갖춰 막강화력… 전면부 대형 화포는 획기적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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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채연석 UST 교수 발표
본체 길이 20m에 3층 추정
노는 좌우 8개씩 16개 설치
승조원은 125명 탑승한 듯
입에선 유황 연기 아닌 대포
좌우현엔 반동 작은 소형포 배치
채연석 UST 교수 발표
본체 길이 20m에 3층 추정
노는 좌우 8개씩 16개 설치
승조원은 125명 탑승한 듯
입에선 유황 연기 아닌 대포
좌우현엔 반동 작은 소형포 배치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귀선(龜船)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이번 싸움에 돌격장으로 하여금 적선 속으로 먼저 달려들어가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 등 각종 총통을 쏘게 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3주가 지난 1592년 6월14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선조에게 이런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이 장계는 조카 이분이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행록》, 훗날 완성된 《이충무공전서》 등과 함께 오늘날 거북선 복원의 단서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기록이다.
1980년 해군사관학교는 이 같은 기록을 모아 거북선을 복원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민간 차원에서 여러 차례 복원이 추진됐지만 겉모습만 거북선과 비슷할 뿐 실제로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를 만들지는 못했다.
거북선 복원의 실마리인 내부 화포 배치구조도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당시 거북선에 설치된 총통 복원에 참여했던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는 거북선 실물 복원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거북선 함포 배치구조를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 결과를 최근 한국과학사학회지에 공개했다. ◆화포 운용 감안한 내부구조 복원
이순신 장군의 유고 전집인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전라좌수영 귀선도(龜船圖)’와 이씨 종가에 남은 ‘귀선도’를 종합해 보면 거북선은 본체 길이가 65자(20.3m), 폭 25자(7.8m), 돛을 제외한 높이 16자(4.8m)로 추정된다.
채 교수는 2015년 연구에서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이 모두 19기 장착됐고, 노는 좌우 8개씩 16개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많은 화포를 운용하려면 거북선은 3층 구조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번 연구에서는 선조에게 보고한 내용 등 사료를 바탕으로 총통의 구체적 배치 위치를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채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거북선은 하층을 제외한 1층과 2층 전면에 모두 4문의 대형포가 설치됐다. 용머리와 뒷면, 옆면에는 그보다 작은 소구경포가 배치됐다.
오늘날로 따지면 함대함미사일에 해당하는 길이 2.97m의 대장군전을 날리는 가장 큰 함포인 천자총통은 1층 전면에 자리했다. 전면 2층에는 대장군전보다는 작지만 파괴력이 큰 장군전을 쏘는 지자총통이 좌우에 1문씩 설치됐다. 화약을 많이 사용해 반동이 큰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은 배 좌우에서 발사하면 배가 좌우로 출렁이며 뒤집어지기 때문에 1층과 2층 전면에 배치했다는 것이 채 교수의 주장이다.
16세기 서양의 바다를 주름잡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스페인 군함들도 앞부분에 강력한 화포를 설치했다. 채 교수는 “전투선 앞부분에 대형 화포를 설치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다”고 말했다.
적선 사이를 뛰어든 거북선의 2층 용머리에선 흔히 알려진 것처럼 유황 연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자총통이 사람을 살상하는 지름 3㎝의 쇠구슬을 쏘아댔다. 거북선 2층 좌우현에는 지름 2㎝의 쇠구슬 탄환 수십 개를 한꺼번에 거리 1㎞ 넘게 발사하던 황자총통 12기가 설치됐다.
◆이순신의 말이 가장 강력한 단서
채 교수는 거북선의 화포 배치가 과학적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화포를 발사할 때의 충격과 화포를 운용하는 공간, 배의 균형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이번 연구를 통해 화포마다 거북선 내부에서 얼마만큼 운용 면적을 차지했는지 처음으로 규명했다. 가장 큰 발사체인 대장군전을 쏘는 천자총통 운용에는 재장전과 예비 대장군전 보관구역 등을 포함해 1층에 최소 길이 4.6m, 폭 2m의 준비구역이 필요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채 교수는 “전남 여수와 경남 통영 등에 복원된 거북선은 한결같이 배의 같은 층에 좌우로 포와 노를 설치했지만 좁은 공간과 배의 안전을 고려할 때 비과학적인 복원”이라며 “거북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인 만큼 철저히 그가 한 말을 근거로 복원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충무공 사후에도 거북선이 개량된 흔적은 기록 곳곳에 남아 있다. 용머리 입에서 쏘던 현자총통 대신 연기를 내뿜게 바꾼 개량형 거북선을 내놓기도 했다. 1795년 기록에는 배 좌우로 노가 2개씩, 포가 6기에서 12기로 늘었다.
채 교수는 거북선에 125명의 승조원이 탑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역시 거북선 건조에 참여한 군관 나대용이 한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거북선 노 1개에는 5명이 배치됐는데 16개 노가 있었으니 거북선의 운항을 담당하는 군사만 80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 교수는 “각각의 총통은 최소 한 명 이상의 운용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나머지 승조원 45명이 19문의 화포를 어떻게 활용했을지 규명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3주가 지난 1592년 6월14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선조에게 이런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이 장계는 조카 이분이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행록》, 훗날 완성된 《이충무공전서》 등과 함께 오늘날 거북선 복원의 단서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기록이다.
1980년 해군사관학교는 이 같은 기록을 모아 거북선을 복원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민간 차원에서 여러 차례 복원이 추진됐지만 겉모습만 거북선과 비슷할 뿐 실제로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를 만들지는 못했다.
거북선 복원의 실마리인 내부 화포 배치구조도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당시 거북선에 설치된 총통 복원에 참여했던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는 거북선 실물 복원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거북선 함포 배치구조를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 결과를 최근 한국과학사학회지에 공개했다. ◆화포 운용 감안한 내부구조 복원
이순신 장군의 유고 전집인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전라좌수영 귀선도(龜船圖)’와 이씨 종가에 남은 ‘귀선도’를 종합해 보면 거북선은 본체 길이가 65자(20.3m), 폭 25자(7.8m), 돛을 제외한 높이 16자(4.8m)로 추정된다.
채 교수는 2015년 연구에서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이 모두 19기 장착됐고, 노는 좌우 8개씩 16개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많은 화포를 운용하려면 거북선은 3층 구조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번 연구에서는 선조에게 보고한 내용 등 사료를 바탕으로 총통의 구체적 배치 위치를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채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거북선은 하층을 제외한 1층과 2층 전면에 모두 4문의 대형포가 설치됐다. 용머리와 뒷면, 옆면에는 그보다 작은 소구경포가 배치됐다.
오늘날로 따지면 함대함미사일에 해당하는 길이 2.97m의 대장군전을 날리는 가장 큰 함포인 천자총통은 1층 전면에 자리했다. 전면 2층에는 대장군전보다는 작지만 파괴력이 큰 장군전을 쏘는 지자총통이 좌우에 1문씩 설치됐다. 화약을 많이 사용해 반동이 큰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은 배 좌우에서 발사하면 배가 좌우로 출렁이며 뒤집어지기 때문에 1층과 2층 전면에 배치했다는 것이 채 교수의 주장이다.
16세기 서양의 바다를 주름잡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스페인 군함들도 앞부분에 강력한 화포를 설치했다. 채 교수는 “전투선 앞부분에 대형 화포를 설치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다”고 말했다.
적선 사이를 뛰어든 거북선의 2층 용머리에선 흔히 알려진 것처럼 유황 연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자총통이 사람을 살상하는 지름 3㎝의 쇠구슬을 쏘아댔다. 거북선 2층 좌우현에는 지름 2㎝의 쇠구슬 탄환 수십 개를 한꺼번에 거리 1㎞ 넘게 발사하던 황자총통 12기가 설치됐다.
◆이순신의 말이 가장 강력한 단서
채 교수는 거북선의 화포 배치가 과학적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화포를 발사할 때의 충격과 화포를 운용하는 공간, 배의 균형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이번 연구를 통해 화포마다 거북선 내부에서 얼마만큼 운용 면적을 차지했는지 처음으로 규명했다. 가장 큰 발사체인 대장군전을 쏘는 천자총통 운용에는 재장전과 예비 대장군전 보관구역 등을 포함해 1층에 최소 길이 4.6m, 폭 2m의 준비구역이 필요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채 교수는 “전남 여수와 경남 통영 등에 복원된 거북선은 한결같이 배의 같은 층에 좌우로 포와 노를 설치했지만 좁은 공간과 배의 안전을 고려할 때 비과학적인 복원”이라며 “거북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인 만큼 철저히 그가 한 말을 근거로 복원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충무공 사후에도 거북선이 개량된 흔적은 기록 곳곳에 남아 있다. 용머리 입에서 쏘던 현자총통 대신 연기를 내뿜게 바꾼 개량형 거북선을 내놓기도 했다. 1795년 기록에는 배 좌우로 노가 2개씩, 포가 6기에서 12기로 늘었다.
채 교수는 거북선에 125명의 승조원이 탑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역시 거북선 건조에 참여한 군관 나대용이 한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거북선 노 1개에는 5명이 배치됐는데 16개 노가 있었으니 거북선의 운항을 담당하는 군사만 80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 교수는 “각각의 총통은 최소 한 명 이상의 운용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나머지 승조원 45명이 19문의 화포를 어떻게 활용했을지 규명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