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 얻은 가상화폐 '몰수 불가능'…"법적 지위 빨리 규정해야"
법적 사각지대로 인해 범죄 수익 성격의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압류·몰수하는 등의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암호화폐 거래소를 열겠다며 38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모금한 후 잠적한 퓨어빗 사건, 이달 2일 암호화폐 공동구매 투자금 횡령 등 암호화폐 관련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강제집행 가능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

수원지방법원은 음란물 유포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은 사건에 대해 "물리적 실체가 없는 비트코인은 몰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반면, 같은 사건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은 "범죄행위에 의해 취득한 것으로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무형재산도 몰수할 수 있다"며 비트코인을 몰수 대상으로 봤다. 단 암호화폐를 게임 머니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법률 제정 취지를 감안하는 등 명확한 법령이 없다는 한계가 확인됐다.

이와 관련, 지난 10일 블록체인법학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공동개최한 '블록체인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의 세션 발표자로 나선 박영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사진)는 "현행법에서 암호화폐는 제한적인 경우에만 몰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 부장판사는 암호화폐가 현행법령상 유체동산(동산에서 채권과 기타 재산권을 제외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아 동산 집행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암호화폐는 현물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화폐이므로 부동산 등 민사집행법상 유체동산 대상이 되지 않는다. 유체물이 아닌 데다 보관 장소도 없어 현실적으로 집행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대신 암호화폐를 채권으로 분류하고 제3채무자에 대한 압류 방법을 제시했다. 강제력을 간접 행사하는 방식이다. 그는 "암호화폐 보유자 대부분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고, 보유자와 거래소는 이용 계약(약관)을 체결한다"면서 "거래소를 제3채무자로 설정하면 금전반환 청구권 등의 채권을 가압류 내지 압류하는 방법으로 채권 압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 이 경우에도 개인 전자지갑에 보유한 암호화폐는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 부장판사는 "개인 지갑에 보관된 암호화폐는 제3채무자가 없어 현행법상 사각지대"라며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기에 암호화폐의 법적 성질을 정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한편 집행 방법도 새로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개인 지갑의 암호화폐는 소지자가 비밀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 조세포탈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며 "암호화폐를 인도하지 않으면 그에 해당하는 금전을 배상하도록 손해배상 명령 등 간접강제를 취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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