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질량보다 65억 배가량 무거운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홀 주변에서 밀려나는 빛이 고리 형태로 블랙홀을 감싸고 있다.  /미국과학재단(NSF) 및 EHT 제공
태양의 질량보다 65억 배가량 무거운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홀 주변에서 밀려나는 빛이 고리 형태로 블랙홀을 감싸고 있다. /미국과학재단(NSF) 및 EHT 제공
‘중력이 너무 커서 빛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찌그러지는 작은 점.’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블랙홀의 정의다. 블랙홀을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의 반사 때문인데 블랙홀엔 아예 빛이 닿을 수 없다. 공상과학(SF) 영화나 사진 등에서 봤던 블랙홀들 역시 추측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그런 ‘상상 속 블랙홀’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홀 탐사 글로벌 프로젝트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연구진은 “블랙홀을 인류 역사상 처음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10일 발표했다. EHT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그룹장은 “우주의 기원에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지구·태양·베텔게우스(별)와 M87 초대질량 블랙홀의 지름. 블랙홀은 중력을 감안해 환산한 크기.  / EHT 프로젝트 총괄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제공
지구·태양·베텔게우스(별)와 M87 초대질량 블랙홀의 지름. 블랙홀은 중력을 감안해 환산한 크기. / EHT 프로젝트 총괄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제공
5500만 광년 떨어진 ‘초대질량’ 블랙홀

연구팀이 관측한 건 무게가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다.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부의 거대은하 ‘M87’ 한복판에 있다.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초속 약 29만9792㎞)를 감안하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거리다.

블랙홀의 이론적 근거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물체든 주변 빛과 시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또 해당 물체 질량이 크면 클수록 빛과 시공간은 더 많이 휘어진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앞서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고 에너지와 질량은 호환된다(E=mc²)’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이론을 종합하면, 빛이 닿는 순간 왜곡되는 블랙홀은 볼 수 없다. 블랙홀에선 시간이 정지하거나 마이너스 상태가 된다. 질량이 무한대로 증가하면서 속도가 무한소가 되는 것이다. 즉 시공간이 완전히 휘고 뒤틀려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 경계가 이른바 ‘사건의 지평선’이다. 이론상 지구 질량에 가까운 블랙홀 지름은 탁구공의 절반보다도 작다.

우주 비밀에 한걸음 더 다가가

EHT 연구진은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 블랙홀 주위를 겉도는 빛을 조각조각 담아 블랙홀의 윤곽을 재구성했다. 남극 망원경, 유럽남방천문대(ESO) 망원경, 미국 애리조나 전파천문대 등 6개 대륙 8개 망원경의 합작품이다.

이들이 각각 하루에 보낸 자료 양만 약 350테라바이트(TB)에 달했다. 이들 자료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슈퍼컴퓨터가 합성해 블랙홀을 영상으로 그려냈다. 1000억㎞에 걸친 ‘블랙홀의 그림자’를 통해 블랙홀 모습(지름 약 380억㎞)이 인류 역사상 처음 밝혀진 것이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는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의 궁극적 증명”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알려진 1919년 이후 100주년 되는 해 나온 성과여서 과학계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개 은하엔 블랙홀이 하나 존재한다는 게 과학계 추정이었지만, 실제로 입증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HT팀은 유럽 북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모인 200여 명의 연구자로 구성됐다. 국내에서도 한국천문연구원 서울대 연세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등 네 곳 연구진 8명이 참여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