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지친 바이오 "한국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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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헬스 골든타임이 지나간다 (上) 정부의 말뿐인 바이오 육성
"변한 게 없는 규제 답답
정부, 바이오 키울 의지
정말 있는지 의심스럽다"
"변한 게 없는 규제 답답
정부, 바이오 키울 의지
정말 있는지 의심스럽다"
“규제 개혁이 앞으로도 지지부진하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의 창업자인 서정선 회장(사진)은 11일 서울 가산동 마크로젠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수차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바이오기업 모임인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여태 변한 게 없다”며 “관료들을 만날 때마다 대통령에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성장을 약속했지만 업계가 요구하는 규제 개혁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기존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 혁신 사업을 허용하겠다고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마저 의사 약사 등의 기득권에 막혀 있다.
마크로젠은 올 2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아직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집에서 고혈압 뇌졸중 위암 등 13개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유전자 검사로 알아보는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지만 아직 사업승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윤리 문제 등을 지적하는 의사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부 등 6개 정부 부처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마련 중인 바이오산업 10대 핵심과제도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황우석 사태 이후 막혀 있는 배아·난자 연구 규제를 풀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 회장은 “정부가 바이오헬스산업을 키울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빅데이터 센터' 구축한다면서 건강정보 제외…배아연구도 꽉 막혔다
“줄기세포 연구를 할 때 냉동난자만 쓰도록 한 규제가 없었다면 연구 속도가 한결 빨랐을 겁니다.”
차광렬 차병원 글로벌연구소장의 말이다. 차병원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5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논문조작으로 판명난 것과 같은 연구다. 배아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차병원의 줄기세포 연구 상당수는 미국에서 이뤄진다.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에서 생명윤리 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이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올 들어 배아·난자 연구 규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국가 바이오산업 혁신 과제를 논의하는 태스크포스(TF)팀에서 복지부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을 바꾸면서 규제 개선이 백지화될 처지다. 게다가 논의 중인 다른 혁신과제들도 업계의 요구와는 온도차가 커 정부가 또 변죽만 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바이오산업, 제2의 반도체로 육성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6개 정부부처가 구성한 바이오산업 혁신 TF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순께 장관급 회의에서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을 확정한다.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5대 추진 전략분야, 10대 핵심과제를 발굴하는 작업은 마무리 단계다.
정부가 마련한 초안은 흩어진 바이오 연구 자원을 한곳에서 관리하고 바이오분야 인력을 양성하는 게 골자다. 분산된 정부 데이터도 통합한다. 국가 바이오 데이터센터를 세워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데이터를 수집·관리하고 이를 연구자, 산업체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료데이터, 건강데이터는 데이터 통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이유에서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개정돼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지만 이조차도 장담하기 어렵다. 통합한 데이터를 기업 등에서 사용하는 방안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여전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유전체, 단백질 데이터를 연계해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며 “핵심은 실제 환자 데이터와 연동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이를 빼놓고 만든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활용도가 높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변죽만 울린 규제 개선 로드맵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규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금지된 것만 빼고 모든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업 모델을 구성할 수 있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의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체계는 모든 것을 금지하는 포지티브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허용된 사업 범위도 지나치게 좁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을 국가 제도 안에서 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생명윤리 문제 등을 지적하는 시민사회단체,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약사 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막혀 소극적인 규제 개선만 반복해왔다.
이번 TF도 마찬가지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진이 요구해온 난자·배아 연구 규제 개선 안건은 포함하지 않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인공수정을 한 뒤 남아 얼려뒀던 난자만 녹여 제한된 연구 목적으로 쓸 수 있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얼리지 않은 건강한 난자도 연구에 활용한다. 얼린 난자를 녹여 활용하면 그만큼 연구 정확도가 떨어진다. 배아 연구도 마찬가지다. 수정관 아기 시술을 하고 남은 냉동배아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다발경화증, 백혈병 등 22개 난치질환 대상 연구를 한다는 계획서를 내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와 복지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나마 1만 개 넘는 유전성 질환 중 허용된 것은 22개뿐이다.
정부는 그동안 활용할 수 없었던 폐지방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보험회사가 보험 가입자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헬스케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는 시행 가능한 방식을 최대한 고려해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계 요구가 높았던 원격 모니터링을 허용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임유/이지현 기자 freeu@hankyung.com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의 창업자인 서정선 회장(사진)은 11일 서울 가산동 마크로젠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수차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바이오기업 모임인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여태 변한 게 없다”며 “관료들을 만날 때마다 대통령에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성장을 약속했지만 업계가 요구하는 규제 개혁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기존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 혁신 사업을 허용하겠다고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마저 의사 약사 등의 기득권에 막혀 있다.
마크로젠은 올 2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아직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집에서 고혈압 뇌졸중 위암 등 13개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유전자 검사로 알아보는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지만 아직 사업승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윤리 문제 등을 지적하는 의사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부 등 6개 정부 부처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마련 중인 바이오산업 10대 핵심과제도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황우석 사태 이후 막혀 있는 배아·난자 연구 규제를 풀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 회장은 “정부가 바이오헬스산업을 키울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빅데이터 센터' 구축한다면서 건강정보 제외…배아연구도 꽉 막혔다
“줄기세포 연구를 할 때 냉동난자만 쓰도록 한 규제가 없었다면 연구 속도가 한결 빨랐을 겁니다.”
차광렬 차병원 글로벌연구소장의 말이다. 차병원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5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논문조작으로 판명난 것과 같은 연구다. 배아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차병원의 줄기세포 연구 상당수는 미국에서 이뤄진다.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에서 생명윤리 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이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올 들어 배아·난자 연구 규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국가 바이오산업 혁신 과제를 논의하는 태스크포스(TF)팀에서 복지부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을 바꾸면서 규제 개선이 백지화될 처지다. 게다가 논의 중인 다른 혁신과제들도 업계의 요구와는 온도차가 커 정부가 또 변죽만 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바이오산업, 제2의 반도체로 육성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6개 정부부처가 구성한 바이오산업 혁신 TF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순께 장관급 회의에서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을 확정한다.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5대 추진 전략분야, 10대 핵심과제를 발굴하는 작업은 마무리 단계다.
정부가 마련한 초안은 흩어진 바이오 연구 자원을 한곳에서 관리하고 바이오분야 인력을 양성하는 게 골자다. 분산된 정부 데이터도 통합한다. 국가 바이오 데이터센터를 세워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데이터를 수집·관리하고 이를 연구자, 산업체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료데이터, 건강데이터는 데이터 통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이유에서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개정돼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지만 이조차도 장담하기 어렵다. 통합한 데이터를 기업 등에서 사용하는 방안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여전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유전체, 단백질 데이터를 연계해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며 “핵심은 실제 환자 데이터와 연동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이를 빼놓고 만든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활용도가 높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변죽만 울린 규제 개선 로드맵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규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금지된 것만 빼고 모든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업 모델을 구성할 수 있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의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체계는 모든 것을 금지하는 포지티브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허용된 사업 범위도 지나치게 좁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을 국가 제도 안에서 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생명윤리 문제 등을 지적하는 시민사회단체,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약사 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막혀 소극적인 규제 개선만 반복해왔다.
이번 TF도 마찬가지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진이 요구해온 난자·배아 연구 규제 개선 안건은 포함하지 않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인공수정을 한 뒤 남아 얼려뒀던 난자만 녹여 제한된 연구 목적으로 쓸 수 있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얼리지 않은 건강한 난자도 연구에 활용한다. 얼린 난자를 녹여 활용하면 그만큼 연구 정확도가 떨어진다. 배아 연구도 마찬가지다. 수정관 아기 시술을 하고 남은 냉동배아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다발경화증, 백혈병 등 22개 난치질환 대상 연구를 한다는 계획서를 내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와 복지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나마 1만 개 넘는 유전성 질환 중 허용된 것은 22개뿐이다.
정부는 그동안 활용할 수 없었던 폐지방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보험회사가 보험 가입자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헬스케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는 시행 가능한 방식을 최대한 고려해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계 요구가 높았던 원격 모니터링을 허용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임유/이지현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