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수소 일레븐나인 직접 연구해보니…"수십 년 도전해야 얻는 匠人 노하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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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화학공학과의 '소재 실험'
반도체 패턴 새기는 식각공정 필수원료
불량률 1%만 올라도 年 수천억 손실
순도 99.999%는 돼야 사용할 수 있어
반도체 패턴 새기는 식각공정 필수원료
불량률 1%만 올라도 年 수천억 손실
순도 99.999%는 돼야 사용할 수 있어
“전남 여수 남해화학과 울산 팜한농에서 나오는 인산 폐기물로 불화수소(HF)를 만들면 어떨까요?”
12일 서울 한양대 화학공학과의 ‘화공열역학’ 수업 프레젠테이션(PT)에서 나온 학생들의 제안이다. 불화수소는 올 일본의 경제제재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핵심소재다. 반도체의 패턴을 새기는 식각 공정의 필수 원료다.
한양대 학생들은 프로젝트 기반 강의(PBL)로 이뤄진 이번 수업에서 불화수소의 제조 방법은 물론 불순물이 0.001% 이하인 파이브나인(99.999%) 고순도 불화수소, 일레븐나인(99.999999999%)으로 불리는 초고순도 불화수소 제조 방법까지 분석해 발표했다. 현재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불화수소 분석 과제를 준비하면서 소재 기술이 전무한 한국 현실에 대해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처럼 진행되는 공정
99% 이하 순도 불화수소는 우라늄 등 광물을 추출하는 데 사용된다. 99.9% 이하 순도는 석유화학제품을 만들 때 촉매로 쓰인다. 파이브나인(99.999%) 이상이 돼야 반도체 식각공정 등에 쓰일 수 있다. 식각공정은 실리콘 기판 위에 깔린 산화막을 판화처럼 깎아내는 공정이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원료 격인 무수불산(수분이 없는 불산)을 제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형석(fluorite) 또는 불화규소산(fluosilicic acid:FSA)을 이용해 제조하는 것이다.
불화칼슘으로 이뤄진 형석에 황산을 혼합하고 100도가량으로 가열하면 미량의 불화수소와 황산수소칼슘이 생성된다. 이때 불화수소 전환율은 약 40%에 불과하다. 이 중간생성물을 회전가마(로터리 킬른)에 넣고 500도 고온에서 섞으면 석고와 황산으로 분해된다. 이때 나온 황산은 앞선 과정에서 미반응된 형석과 다시 반응해 황산칼슘과 불화수소를 내놓는다.
비교적 간단한 화학반응 같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반응물이 유독물인 황산을 포함한 걸쭉한 ‘페이스트’ 상태로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장치 부식 우려가 크다. 장비 에너지 효율도 급격히 저하되기 쉽다.
즉 페이스트 제어가 ‘제법 쓸 만한’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관건이다. 페이스트 제어는 특정 촉매로 할 수도 있고, 원료 혼입량 또는 반응기 온도 등 공정 조건을 달리해서도 가능하다. 좋은 장비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만 빗나가도 불화수소 제조는 불가능하다.
“기술을 넘어, 예술이다”
이런 통상적 공정을 넘으면 포나인(99.99%) 순도의 불화수소가 생성된다.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원익, 후성 등 국내 기업도 이 수준의 기술은 갖고 있다. 여기서부터 극미량의 불순물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미량의 불순물만으로도 불량률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량률이 1%만 올라가도 연간 수백~수천억원의 손실이 난다는 게 반도체업계의 통설이다. 0.001%가량 들어 있는 헥사 불화규소산, 0.003% 들어 있는 이산화황, 0.0005%의 수분 등을 제거해야만 현재 범용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파이브나인(99.999%)’ 순도의 불화수소를 얻을 수 있다.
파이브나인에서 더 나아가 측정조차 어려운 0.00001% 이하 극미량의 비소, 철 등을 없애면 세계에서 일본(스텔라케미파 등)만이 갖고 있는 ‘일레븐 또는 트웰브 나인(99.999999999%)’ 순도의 불화수소가 나온다.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다. 일레븐나인 불화수소는 씨엔비산업이 2011년 특허를 냈지만 아직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상용화되지 못했다.
배영찬 교수는 “불화수소는 사실 웬만한 소재기업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관건은 오직 순도”라며 “일본은 소재 분야에서 기술을 넘어 예술에 오른 경지라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듯) 소재 관련 경쟁력이 몇 년 안에 확보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레븐나인 불화수소 등은 수십 년 이상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장인의 노하우’라는 설명이다.
이번 강의에서 주목받은 것은 형석이 아니라 FSA(불화규소산)를 이용해 불화수소를 제조하는 대안기술이다. 불화수소 원료인 무수불산의 20%가량이 이 기술로 제조되고 있다. 인산 제조과정에서 부산물인 FSA를 줄이면서 저비용으로 무수불산을 생산하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듀폰 등이 이 기술을 갖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 시도한 업체는 없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12일 서울 한양대 화학공학과의 ‘화공열역학’ 수업 프레젠테이션(PT)에서 나온 학생들의 제안이다. 불화수소는 올 일본의 경제제재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핵심소재다. 반도체의 패턴을 새기는 식각 공정의 필수 원료다.
한양대 학생들은 프로젝트 기반 강의(PBL)로 이뤄진 이번 수업에서 불화수소의 제조 방법은 물론 불순물이 0.001% 이하인 파이브나인(99.999%) 고순도 불화수소, 일레븐나인(99.999999999%)으로 불리는 초고순도 불화수소 제조 방법까지 분석해 발표했다. 현재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불화수소 분석 과제를 준비하면서 소재 기술이 전무한 한국 현실에 대해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처럼 진행되는 공정
99% 이하 순도 불화수소는 우라늄 등 광물을 추출하는 데 사용된다. 99.9% 이하 순도는 석유화학제품을 만들 때 촉매로 쓰인다. 파이브나인(99.999%) 이상이 돼야 반도체 식각공정 등에 쓰일 수 있다. 식각공정은 실리콘 기판 위에 깔린 산화막을 판화처럼 깎아내는 공정이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원료 격인 무수불산(수분이 없는 불산)을 제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형석(fluorite) 또는 불화규소산(fluosilicic acid:FSA)을 이용해 제조하는 것이다.
불화칼슘으로 이뤄진 형석에 황산을 혼합하고 100도가량으로 가열하면 미량의 불화수소와 황산수소칼슘이 생성된다. 이때 불화수소 전환율은 약 40%에 불과하다. 이 중간생성물을 회전가마(로터리 킬른)에 넣고 500도 고온에서 섞으면 석고와 황산으로 분해된다. 이때 나온 황산은 앞선 과정에서 미반응된 형석과 다시 반응해 황산칼슘과 불화수소를 내놓는다.
비교적 간단한 화학반응 같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반응물이 유독물인 황산을 포함한 걸쭉한 ‘페이스트’ 상태로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장치 부식 우려가 크다. 장비 에너지 효율도 급격히 저하되기 쉽다.
즉 페이스트 제어가 ‘제법 쓸 만한’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관건이다. 페이스트 제어는 특정 촉매로 할 수도 있고, 원료 혼입량 또는 반응기 온도 등 공정 조건을 달리해서도 가능하다. 좋은 장비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만 빗나가도 불화수소 제조는 불가능하다.
“기술을 넘어, 예술이다”
이런 통상적 공정을 넘으면 포나인(99.99%) 순도의 불화수소가 생성된다.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원익, 후성 등 국내 기업도 이 수준의 기술은 갖고 있다. 여기서부터 극미량의 불순물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미량의 불순물만으로도 불량률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량률이 1%만 올라가도 연간 수백~수천억원의 손실이 난다는 게 반도체업계의 통설이다. 0.001%가량 들어 있는 헥사 불화규소산, 0.003% 들어 있는 이산화황, 0.0005%의 수분 등을 제거해야만 현재 범용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파이브나인(99.999%)’ 순도의 불화수소를 얻을 수 있다.
파이브나인에서 더 나아가 측정조차 어려운 0.00001% 이하 극미량의 비소, 철 등을 없애면 세계에서 일본(스텔라케미파 등)만이 갖고 있는 ‘일레븐 또는 트웰브 나인(99.999999999%)’ 순도의 불화수소가 나온다.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다. 일레븐나인 불화수소는 씨엔비산업이 2011년 특허를 냈지만 아직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상용화되지 못했다.
배영찬 교수는 “불화수소는 사실 웬만한 소재기업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관건은 오직 순도”라며 “일본은 소재 분야에서 기술을 넘어 예술에 오른 경지라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듯) 소재 관련 경쟁력이 몇 년 안에 확보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레븐나인 불화수소 등은 수십 년 이상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장인의 노하우’라는 설명이다.
이번 강의에서 주목받은 것은 형석이 아니라 FSA(불화규소산)를 이용해 불화수소를 제조하는 대안기술이다. 불화수소 원료인 무수불산의 20%가량이 이 기술로 제조되고 있다. 인산 제조과정에서 부산물인 FSA를 줄이면서 저비용으로 무수불산을 생산하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듀폰 등이 이 기술을 갖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 시도한 업체는 없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