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게임·VR·챗봇 같은 SW를 약처럼 사용…디지털 치료제, 혁신인가 거품인가
최근 ‘디지털 치료제’라는 분야가 국내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 게임, 가상현실(VR), 챗봇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약처럼 사용하는 분야다.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는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중독치료용 소프트웨어로 허가받은 페어테라퓨틱스의 리셋이 꼽힌다. 그 이후로 당뇨병, 우울증, 불면증,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비만 등과 같은 다양한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한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이 앞다퉈 시도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제의 범주가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기존에는 약을 저분자 화합물, 항체와 같은 생물학적 제제, 세포치료제 등으로 분류했다. 이런 약의 분류에 이제 디지털 치료제라는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가 추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 분야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제는 지난 몇 년 동안 거론되지 않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주목받고 있다. 최근 언론에도 많이 등장하고, 관련 분야에 진출을 선언한 스타트업도 늘어났다.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 부처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가 기존 약과 대비해 가지는 장점이 있다. 소프트웨어이므로 개발 기간과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갈 수 있다. 침습적이거나 체내에서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작용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디지털 치료제는 확장성이 무한대에 가깝다. 알약을 수백만 명에게 배포하기는 어렵지만 수백만 명이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아 사용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치료제에 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직 의학적으로, 산업적으로 증명된 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치료용 게임’의 사용에 대해 보험료를 줄 것인가, 의사가 기존에 사용하던 약 대신 ‘치료용 VR’을 처방할 것인가, 환자는 약 대신 스마트폰 앱을 처방받으면 잘 사용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는 아직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 리셋 역시 보험사 설득, 의사의 처방 단계에서 고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앱, 게임, VR 등을 치료에 사용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드러날 수도 있다. 확장성이 크다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치료 효과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또 반대로 전례 없는 규모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의료 분야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가 치료 영역으로 확장되는 디지털 치료제의 대두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분야가 초기일 때 많은 자원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치료제 붐을 보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개념이 신선하고, 외국에서 유망 사례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망한 분야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동반돼야 한다. 특히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디지털 치료제라는 신규 분야에 한국에서 관심을 빠르게 가지게 된 자체는 긍정적이다. 이런 관심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돼 향후 의학적, 산업적인 성과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최윤섭 <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