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는 지난달 15일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수출관리 규정을 바꿨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안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로 수출하지 못하게 규제했는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 조치를 내놓은 셈이다. [사진=AP연합뉴스]
미 상무부는 지난달 15일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수출관리 규정을 바꿨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안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로 수출하지 못하게 규제했는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 조치를 내놓은 셈이다. [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들에 자신 있게 "거래를 끊으라"고 압박할 수 있는 건 사실상 대부분의 반도체 장비와 특허에 미국 기업들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대만 디지타임스 등 외신은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제재 이후에도 현재 수준의 반도체 공급을 유지해달라는 화웨이의 요청을 거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화웨이의 '구세구'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미국 제재 방침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요청을 수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15일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수출관리 규정을 바꿨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안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로 수출하지 못하게 규제했는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 조치를 내놓은 셈이다.

미 상무부의 이 같은 조치는 화웨이 본사는 물론 하이실리콘 등 화웨이 자회사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업체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해외기업과 화훼이가 미국의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를 거래하거나 반도체 설계를 활용할 경우에도 모두 미국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만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전 세계 기업들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제조사들 중 미국 기술을 쓰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TSMC는 최첨단 반도체 공정에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AMAT) 장비를 쓰고 있다.

TSMC와 달리 유럽과 일본 장비를 주로 쓰는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삼성전자 역시 식각 장비는 미국의 램리서치에서 생산한 것을 사용한다. 식각은 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미세하게 깎는 공정이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영국 ARM 대신에 화웨이에 반도체 설계도를 공급해왔던 하이실리콘도 미국 캐이던스와 시냅시스의 설계 소프트웨어를 쓴다. 화웨이가 TSMC를 대체할 희망으로 꼽고 있는 중국 국영기업 SMIC도 램리서치, KLA 등 미국 기업들의 장비를 쓴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와 램리서치, KLA 3개사가 40%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화웨이라는 'VIP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 기업들의 기술 대신 유럽이나 일본 기술을 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제조장비 상당 부분을 교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미 정부의 보복(?)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지난달 국영 반도체 기업인 SMIC에 22억5000만달러(약 2조7700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안보' 지키기에 나섰다. 아직 글로벌 기업에 비해 뒤처진 자국 반도체 생산기업의 기술을 빠른 시간 안에 올리기 위해서다.

실제 화웨이는 미국의 압박 이후 TSMC와 거래가 끊길 것을 우려해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 생산을 국영기업 SMIC에 맡겼으나 기술이 부족해 반도체 칩 두께를 14나노미터(1㎚=10억분의 1m)보다 얇게 생산하는 데 실패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