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상 이성질체 관계인 두 물질은 생긴 건 매우 비슷하지만 화학적 성질은 전혀 다르다. 1950년대 유럽에서 판매되던 탈리도마이드는 입덧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거울상 이성질체는 혈관 생성을 억제해 많은 기형아가 태어났다. 이런 위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카이랄 의약품의 개발과 취급은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카이랄 의약품은 둘 중 효능이 있는 구조의 화학물질만을 정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하나만을 골라내는 것이 어려워 많은 의약품은 두 분자가 혼합된 라세미체 형태로 판매된다.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팀은 영국 배스대 연구진과 함께 아주 적은 양의 액체에서도 거울상 이성질체를 탐지할 수 있는 나노 입자의 물리적 성질을 관찰했다. 남 교수팀은 2018년 금 나노 입자에서 거울상 이성질체 구조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당시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표지 논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 공동연구에서는 2018년에 합성한 금 입자에 가시광선을 쪼인 뒤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금 입자 주변에 어떤 거울상 이성질체가 있느냐에 따라 빛에 반응하는 패턴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적은 농도의 거울상 이성질체도 탐지할 수 있어 향후 산업적 가치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남 교수는 “거울상 이성질체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기술은 카이랄 의약품의 효능을 높이는 첫 번째 단계”라며 “두 이성질체를 분리해내는 기술까지 완성한다면 활용 가치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 7월 20일자에 실렸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