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이 항체약물접합체(ADC·Antibody Drug Conjugate) 치료제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ADC 치료제들의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길리어드사이언스는 미국 뉴저지의 이뮤노메딕스를 210억 달러(약 25조 원)에 인수키로 했다고 밝혔다. 길리어드는 주당 88달러에 이뮤노메딕스 주식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는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이뮤노메딕스 주식의 전 거래일 종가보다 108% 높은 수준이다. 연말까지 인수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뮤노메딕스는 ADC 신약개발 기업으로 지난 4월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를 보유하고 있다. 긍정적인 임상 2상 결과를 바탕으로 FDA로부터 조건부 시판허가를 받았다. 또 최종 승인을 받기 2주 전인 지난 7월에는 우수한 효능 결과로 글로벌 임상 3상을 조기 종료했다.

머크도 ADC에 5조 원 베팅

길리어드의 이뮤노메딕스 인수 발표 몇 시간 후 머크는 5조 원대 ADC 공동개발 계약을 공개했다. 시애틀제네틱스와 총 4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시애틀제네틱스의 ADC 치료제 후보물질인 라디라투주맙 베도틴 단독 및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의 병용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개발에 대한 것이다. 머크는 계약금으로 6억 달러, 단계별 성과 기술료(마일스톤)로 26억 달러를 지급키로 했다. 또 시애틀제네틱스 주식을 주당 200달러에 10억 달러어치를 사기로 했다. 이는 시애틀제네틱스의 전 거래일 종가보다 33% 높은 것이다.

양사는 이번 계약에 앞서 라디라투주맙 베도틴과 키트루다의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병용투여 연구를 진행했다. 임상 2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한 머크가 5조 원을 투자키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는 아스트라제네카가 다이이찌산쿄의 임상 1상 단계 ADC 후보물질 ‘DS-162’에 대해 총 60억 달러(약 7조 원)의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작년 3월 임상 3상의 엔허투(DS-8201)를 69억 달러(약 8조 원)에 도입한 이후 다이이찌산쿄와 두 번째 맺은 계약이다.

ADC 치료제 시장, 2026년 31조 원 전망

ADC와 관련해 수조 원의 돈이 오가는 것은 기존 항암제보다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트로델비는 삼중음성유방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에서 33%의 객관적반응률로도 FDA의 시판허가를 받았다. 10명 중 3명에서만 약효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삼중음성유방암은 대표적인 난치성 암으로 특별한 치료제가 없어, 이 정도의 효과에도 판매 승인을 받았다.

[글로벌 시장 분석] ADC의 또 다른 이름, 4세대 항암제
엔허투의 효과도 드라마틱하다. 작년 12월 FDA의 승인을 받은 인간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 양성 유방암 3차 치료제인 엔허투는 임상에서 60% 이상의 반응률을 나타냈다. 평균 다섯 번 이상의 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올 5월 위암 치료제 후보물질로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연내 허가 신청을 할 예정이고,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임상도 진행 중이다. 다양한 암종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HER2 양성 유방암 2차 치료제로의 허가 신청도 기대된다.

ADC 치료제의 기술이전 건수 및 금액도 증가세다. 길리어드와 머크 등을 포함해 올 들어 지난달 14일까지 총 153억1800만 달러(약 18조 원), 14건이 이뤄졌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81억6300만 달러(약 9조6000억 원), 10건을 넘어선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파마는 세계 ADC 치료제 시장이 2019년 27억 달러(약 3조 원)에서 2026년 265억 달러(약 31조 원)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7년 만에 10배 이상 시장이 커진다.

ADC, 4세대 항암제 될 것

현재까지 FDA에서 승인받은 ADC 치료제는 9개뿐이다. 항체에 약물을 붙이는 링커 기술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바이오와 화학합성 의약품의 결합이기 때문에 생산공정(CMC) 구축에도 어려움이 있다.

링커는 ADC가 암세포와 만날 때까지 약물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암세포 도달 전 혈액 안에서 약물을 놓친다면 원하지 않는 곳에서 독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ADC 기술은 진화하고 있어 기대감이 더 크다.

1세대와 2세대 ADC 기술의 차이는 링커가 암세포 안에서 잘리느냐다. 링커가 잘리는 2세대 기술은 주변 암세포도 죽일 수 있다. ADC를 만나 암세포가 터져 죽으면, 죽은 암세포 밖으로 나온 약물이 주변 암세포로 다시 들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크기가 커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항체가 계속 붙어 있다면 주변 암세포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 또 항체에 붙이는 약물이 기존 화학합성 항암제와 다른 기전으로 작용한다. 기존 항암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다면 약효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형문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담당의학부 이사는 “ADC의 가장 큰 장점은 막 단백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라며 “기술발전에 따라 ADC는 모든 암에 적용할 수 있는 항암제, 4세대 항암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막 단백질은 세포의 막에 있으면서 성장, 분열 등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정상세포는 특정 막 단백질이 과다하게 생겨나 암세포가 된다. HER2나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등이 이에 해당한다.

ADC는 면역항암제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3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는 약효가 나타나는 환자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며 “ADC를 같이 쓰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면역항암제 병용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