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① 첨단재생바이오법, 안전과 산업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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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융합연구센터장, 조미영 가톨릭대 의대 연구원
2020년 8월 28일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생법)이 시행됐다. 법률의 제정 과정과 주요 사항을 짚어보며 줄기세포와 재생의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과 법안에 대한 기대감을 정리했다.
1990년대 말 미국에서 본격적인 세포 치료제의 상용화가 시작됐고, 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개발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살아 있는 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조직 자체를 물리적·기능적으로 복구하고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 기술로 촉망받았다. 특히 애타게 치료법 개발을 기다리던 난치질환 환자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같은 시기에 국내외 과학계에서는 줄기세포 연구가 한창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성인의 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유도만능줄기세포 제작에 성공한 일본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건 일대 사건이었다. 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용한 난치 질환 정복은 마치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인식됐다.
일본의 세포 치료제 정책은 정말 훌륭했을까
새로운 기술은 항상 잠재적 가치와 함께 알려지지 않은 위험성의 우려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해 잠재적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고, 전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의료관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박한 환자들을 이용하려는 시도도 늘어갔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가능한 치료가 우리나라에서는 규제로 가로막혔다’와 같은 기사가 한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임상에서 상용화하기에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하기보단, 규제가 치료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과 비슷한 시기인 2000년대 초반에 세포 치료제 등 첨단제제에 대한 규제 체계를 차근차근 마련해나가며 체계적인 개발을 유도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자유 진료’ 형태로 별도의 규제 없이 새로운 세포를 이용한 치료적 시도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제도적 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를 출시할 때 일본에서는 오히려 자유롭게 행해졌던 세포 치료제 시술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됐다. 세포 치료제 투여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연이어 법적 다툼에서 승소했고, 사망하는 환자까지 발생하면서 일본에서 검증 없이 세포를 이용한 시술이 남용되고 있음이 국제사회에도 알려졌다.
일본 정부도 심각성을 깨닫고 ‘재생의료 등의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재생의료 안전법)을 제정해 규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이 일본에서 재생의료 육성을 위해 만든 획기적 제도로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자유진료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든 규제책이었던 셈이다.
일본에서는 규제라고는 하지만 지난 7월 31일 현재 3300여 건의 ‘치료계획’이 승인됐다. 자유진료에 준하는 신고제에 가깝다는 얘기다. 게다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환자들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불합리함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판 가능한 제품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일본 약사법에 따른 조건부 승인 절차를 대폭 완화했다. 완화 정도가 매우 파격적이어서 2015년 최초로 조건부 허가를 받은 제품 ‘하트시트’는 단 7명의 임상자료로, ‘스테미락’은 13명의 임상자료로 작년에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개발사는 소수의 환자에게서 얻은 부분적인 효과(비교 대상이 없어 이조차도 논란이 크다)만으로 환자당 억대의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국제 학계는 여전히 일본의 이와 같은 심사 시스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일본이 거둔 성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누적 3000여 건의 임상시험·연구가 지난 5년 동안 진행되었음에도, 각각 7명과 13명의 임상자료로 조건부 승인을 받은 제품의 과학적 결과는 아직 어느 국제 학술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다.
첨생법 제정 배경
첨생법 제정 이전 최초의 재생의료 관련 법안은 줄기세포 치료제 등 첨단제제의 개발을 별도로 지원하는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 제안됐다. 국내에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사례가 잇따르고 일본에서 전폭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최초의 법안에서는 재생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일본의 재생의료안전법과 유사한 형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대신 별도의 위원회 승인을 통해 세포 치료제 등 첨단제제를 환자에게 ‘치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였다. 당시 제도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검증체계는 느슨해지면서도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부분은 명료하게 정의돼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비싼 가격의 재생의료가 비교적 환자에게 쉽게 투여되고, 그에 따른 안전과 재정적 부담은 환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후 관련 법규 논의를 통해 세포 치료제, 줄기세포 치료제, 재생의료,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신기술을 이용한 치료제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이라는 용어로 정리됐고, 더 높은 수준으로 안전성을 담보하면서도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 등은 신속히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현재의 첨생법이 탄생하게 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의약품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의 화합물로 구성되고, 비교적 잘 규명된 약리 작용을 통해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기계로 분석하면 원하는 약품이 순도 몇 퍼센트인지도 정밀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포는 다르다. 살아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 이런 변화는 대부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세포 안의 모든 물질을 기존 의약품처럼 분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체내에서 작용하는 기전 역시 분자 수준에서와 같이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또 기존 의약품과는 다른 새로운 안전성 문제도 존재한다.
첨생법에는 첨단제제가 가지고 있는 이런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첨단제제를 생산, 제조하는 시설에 대한 별도 기준과 관리, 임상연구를 심사할 전문위원회, 장기추적조사 전문기관 설립 등 제조에서부터 환자에게 투여 전 검증 및 투여 후 장기적 추적조사에 이르는 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안전망을 기존보다 촘촘히 하고 있다.
첨단바이오의약품 지원을 위한 정부의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계획을 마련해 향후 첨단제제 분야 발전을 위한 정부 지원의 법적 근거도 확보했다. 또 중증 질환, 치료법이 없는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의 경우 맞춤형 심사, 우선심사, 조건부 허가와 같은 허가 지원 시스템을 통해 개발을 규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돼 있다. 초기 법안에서 논란이 됐던 환자의 경제적 부담 가능성은 일체의 연구단계에서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함으로써 논란이 종식됐다. 기대 효과 1. 임상현장 데이터 확보 길 열려
의약품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기 위해 환자군의 선별과 시험환경의 통제가 엄격히 이뤄진다. 하지만 실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고 나면 임상시험과는 달리 훨씬 다양한 조건의 환자(여러 동반 질환 등)와 다양한 상황(병용 치료, 시술 등)에서 의약품을 투여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 단계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임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시판 후 장기적인 추적관찰은 인체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제제의 특성을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변수다. 장기적인 추적을 통해 의약품이 예측된 효과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에게서 보여주는지, 추가적인 안전성 문제는 없는지가 확인되면 의약품 사용자인 의사 및 환자와 의료비 지급자인 국가보험공단과 보험사가 새로운 제품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개발사의 매출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단 얘기다.
이처럼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얻어지는 자료를 ‘임상현장 데이터(RWD)’라고 하며, 국제적으로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RWD는 제품의 현실세계 평가를 축적하는 것과 더불어 임상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새로운 환자군에서 새로운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그 근거를 토대로 해당 제품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여 시장을 넓힐 수도 있다. 첨생법은 첨단제제의 장기적 추적관찰을 통해 시판 허가 전 단계에서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데이터를 확보
해 우리나라 첨단제제 개발과정의 규제가 합리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기대 효과 2. 높아진 정밀의학 실현 가능성
향후 첨단제제 산업에서 고려할 중요한 사항은 정밀의학이다. 환자의 특성과 배경에 따라서 같은 치료제라도 어느 환자에게는 더 높은 효과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환자에게는 안전성이 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즉 정밀의학은 개발된 의약품이 최적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낼 수 있는 대상 환자를 정밀하게 확인하여 적용한다는 개념이다.
환자는 본인의 상태에서 가장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으므로 시간과 비용의 낭비 없이 치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료비를 지출하는 보험공단 및 보험사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의료비를 줄여 의료재정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개발사 입장에서도 개발한 치료제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환자와 안전성이 우려되는 환자를 선별할 수 있으므로 안전성과 유효성 측면에서 개발된 제품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밀의학적 접근은 임상적으로나 경제적인 측면 모두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정밀의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의미 있는 데이터 수집과 일관된 분석이 중요하다. 첨단제제는 대상질환의 특성상 대규모 임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개별 연구자가 경험한 소수의 임상적 경험은 불충분한 사례로 해석이 곤란한 경우가 빈번하다.
첨생법은 임상연구 및 임상시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 및 장기추적 결과 모두 전담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보고, 수집하도록 하고, 이상이 감지될 경우 추적관찰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다수의 소규모 임상연구들로부터 얻어진 결과를 빅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지원함으로써 첨단제제에서의 정밀의학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대 효과 3. 세계시장 흐름에 맞는 첨단제제 개발
지난 5년간 제약산업의 글로벌 성장세는 뚜렷한 둔화세를 보여왔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 시장도 향후 5년 동안 경쟁이 3배 증가해 과거에 비해 수익을 내기 더 어려운 구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제약산업 성장은 주로 혁신 신약이 주도해왔고 이는 앞으로도 더 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첨단제제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첨단제제가 의약품으로 시장에 진출한 지 20년가량 됐고, 20여 개 제품이 국내외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중 유럽연합(EU) 내 시판 승인을 받고도 자진 취하를 한 사례는 5건에 달한다. 모든 회원국의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의를 통과하고도 스스로 허가를 취소한 사유는 무엇인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첨단제제는 제조공정이 까다롭고 고가의 원료가 많이 사용돼 치료를 받는 데 1억 원 이상 소요되는 것도 드물지 않을 만큼 비용 부담이 크다. 우리나라처럼 국가의료보험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의약품이 출시되면 보험급여를 결정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많은 경우 이 단계에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시장 출시를 포기하게 된다.
한 사례가 캐나다 덴드리온사의 전립선암 의약품인 프로벤지다. 총 3회 투여에 책정된 약가는 무려 9만3000달러(약 1억800만 원)였지만,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유효성은 환자의 생존 기간을 4.1개월 연장해 기존 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 효과에 국민의 보험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이후 덴드리온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파산해 다른 회사에 여러 차례 매각되기를 거듭했다. 잘목시스라는 제품은 시판 후 추적관찰을 하는 동안 유의한 결과를 얻지 못해 스스로 제품 허가를 철회한 사례도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의약품의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마다 제품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를 가지고 식품,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 전 분야에 걸쳐 이를 사용하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 이런 제품의 개발사들은 마케팅을 위해 필수적인 검증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사설 인증까지도 추가로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다양한 인증으로 품질을 검증받는 것이 판매 촉진과 가격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미국에서 본격적인 세포 치료제의 상용화가 시작됐고, 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개발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살아 있는 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조직 자체를 물리적·기능적으로 복구하고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 기술로 촉망받았다. 특히 애타게 치료법 개발을 기다리던 난치질환 환자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같은 시기에 국내외 과학계에서는 줄기세포 연구가 한창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성인의 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유도만능줄기세포 제작에 성공한 일본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건 일대 사건이었다. 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용한 난치 질환 정복은 마치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인식됐다.
일본의 세포 치료제 정책은 정말 훌륭했을까
새로운 기술은 항상 잠재적 가치와 함께 알려지지 않은 위험성의 우려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해 잠재적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고, 전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의료관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박한 환자들을 이용하려는 시도도 늘어갔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가능한 치료가 우리나라에서는 규제로 가로막혔다’와 같은 기사가 한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임상에서 상용화하기에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하기보단, 규제가 치료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과 비슷한 시기인 2000년대 초반에 세포 치료제 등 첨단제제에 대한 규제 체계를 차근차근 마련해나가며 체계적인 개발을 유도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자유 진료’ 형태로 별도의 규제 없이 새로운 세포를 이용한 치료적 시도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제도적 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를 출시할 때 일본에서는 오히려 자유롭게 행해졌던 세포 치료제 시술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됐다. 세포 치료제 투여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연이어 법적 다툼에서 승소했고, 사망하는 환자까지 발생하면서 일본에서 검증 없이 세포를 이용한 시술이 남용되고 있음이 국제사회에도 알려졌다.
일본 정부도 심각성을 깨닫고 ‘재생의료 등의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재생의료 안전법)을 제정해 규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이 일본에서 재생의료 육성을 위해 만든 획기적 제도로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자유진료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든 규제책이었던 셈이다.
일본에서는 규제라고는 하지만 지난 7월 31일 현재 3300여 건의 ‘치료계획’이 승인됐다. 자유진료에 준하는 신고제에 가깝다는 얘기다. 게다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환자들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불합리함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판 가능한 제품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일본 약사법에 따른 조건부 승인 절차를 대폭 완화했다. 완화 정도가 매우 파격적이어서 2015년 최초로 조건부 허가를 받은 제품 ‘하트시트’는 단 7명의 임상자료로, ‘스테미락’은 13명의 임상자료로 작년에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개발사는 소수의 환자에게서 얻은 부분적인 효과(비교 대상이 없어 이조차도 논란이 크다)만으로 환자당 억대의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국제 학계는 여전히 일본의 이와 같은 심사 시스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일본이 거둔 성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누적 3000여 건의 임상시험·연구가 지난 5년 동안 진행되었음에도, 각각 7명과 13명의 임상자료로 조건부 승인을 받은 제품의 과학적 결과는 아직 어느 국제 학술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다.
첨생법 제정 배경
첨생법 제정 이전 최초의 재생의료 관련 법안은 줄기세포 치료제 등 첨단제제의 개발을 별도로 지원하는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 제안됐다. 국내에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사례가 잇따르고 일본에서 전폭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최초의 법안에서는 재생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일본의 재생의료안전법과 유사한 형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대신 별도의 위원회 승인을 통해 세포 치료제 등 첨단제제를 환자에게 ‘치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였다. 당시 제도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검증체계는 느슨해지면서도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부분은 명료하게 정의돼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비싼 가격의 재생의료가 비교적 환자에게 쉽게 투여되고, 그에 따른 안전과 재정적 부담은 환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후 관련 법규 논의를 통해 세포 치료제, 줄기세포 치료제, 재생의료,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신기술을 이용한 치료제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이라는 용어로 정리됐고, 더 높은 수준으로 안전성을 담보하면서도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 등은 신속히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현재의 첨생법이 탄생하게 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의약품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의 화합물로 구성되고, 비교적 잘 규명된 약리 작용을 통해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기계로 분석하면 원하는 약품이 순도 몇 퍼센트인지도 정밀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포는 다르다. 살아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 이런 변화는 대부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세포 안의 모든 물질을 기존 의약품처럼 분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체내에서 작용하는 기전 역시 분자 수준에서와 같이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또 기존 의약품과는 다른 새로운 안전성 문제도 존재한다.
첨생법에는 첨단제제가 가지고 있는 이런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첨단제제를 생산, 제조하는 시설에 대한 별도 기준과 관리, 임상연구를 심사할 전문위원회, 장기추적조사 전문기관 설립 등 제조에서부터 환자에게 투여 전 검증 및 투여 후 장기적 추적조사에 이르는 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안전망을 기존보다 촘촘히 하고 있다.
첨단바이오의약품 지원을 위한 정부의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계획을 마련해 향후 첨단제제 분야 발전을 위한 정부 지원의 법적 근거도 확보했다. 또 중증 질환, 치료법이 없는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의 경우 맞춤형 심사, 우선심사, 조건부 허가와 같은 허가 지원 시스템을 통해 개발을 규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돼 있다. 초기 법안에서 논란이 됐던 환자의 경제적 부담 가능성은 일체의 연구단계에서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함으로써 논란이 종식됐다. 기대 효과 1. 임상현장 데이터 확보 길 열려
의약품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기 위해 환자군의 선별과 시험환경의 통제가 엄격히 이뤄진다. 하지만 실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고 나면 임상시험과는 달리 훨씬 다양한 조건의 환자(여러 동반 질환 등)와 다양한 상황(병용 치료, 시술 등)에서 의약품을 투여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 단계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임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시판 후 장기적인 추적관찰은 인체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제제의 특성을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변수다. 장기적인 추적을 통해 의약품이 예측된 효과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에게서 보여주는지, 추가적인 안전성 문제는 없는지가 확인되면 의약품 사용자인 의사 및 환자와 의료비 지급자인 국가보험공단과 보험사가 새로운 제품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개발사의 매출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단 얘기다.
이처럼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얻어지는 자료를 ‘임상현장 데이터(RWD)’라고 하며, 국제적으로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RWD는 제품의 현실세계 평가를 축적하는 것과 더불어 임상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새로운 환자군에서 새로운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그 근거를 토대로 해당 제품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여 시장을 넓힐 수도 있다. 첨생법은 첨단제제의 장기적 추적관찰을 통해 시판 허가 전 단계에서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데이터를 확보
해 우리나라 첨단제제 개발과정의 규제가 합리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기대 효과 2. 높아진 정밀의학 실현 가능성
향후 첨단제제 산업에서 고려할 중요한 사항은 정밀의학이다. 환자의 특성과 배경에 따라서 같은 치료제라도 어느 환자에게는 더 높은 효과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환자에게는 안전성이 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즉 정밀의학은 개발된 의약품이 최적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낼 수 있는 대상 환자를 정밀하게 확인하여 적용한다는 개념이다.
환자는 본인의 상태에서 가장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으므로 시간과 비용의 낭비 없이 치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료비를 지출하는 보험공단 및 보험사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의료비를 줄여 의료재정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개발사 입장에서도 개발한 치료제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환자와 안전성이 우려되는 환자를 선별할 수 있으므로 안전성과 유효성 측면에서 개발된 제품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밀의학적 접근은 임상적으로나 경제적인 측면 모두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정밀의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의미 있는 데이터 수집과 일관된 분석이 중요하다. 첨단제제는 대상질환의 특성상 대규모 임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개별 연구자가 경험한 소수의 임상적 경험은 불충분한 사례로 해석이 곤란한 경우가 빈번하다.
첨생법은 임상연구 및 임상시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 및 장기추적 결과 모두 전담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보고, 수집하도록 하고, 이상이 감지될 경우 추적관찰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다수의 소규모 임상연구들로부터 얻어진 결과를 빅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지원함으로써 첨단제제에서의 정밀의학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대 효과 3. 세계시장 흐름에 맞는 첨단제제 개발
지난 5년간 제약산업의 글로벌 성장세는 뚜렷한 둔화세를 보여왔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 시장도 향후 5년 동안 경쟁이 3배 증가해 과거에 비해 수익을 내기 더 어려운 구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제약산업 성장은 주로 혁신 신약이 주도해왔고 이는 앞으로도 더 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첨단제제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첨단제제가 의약품으로 시장에 진출한 지 20년가량 됐고, 20여 개 제품이 국내외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중 유럽연합(EU) 내 시판 승인을 받고도 자진 취하를 한 사례는 5건에 달한다. 모든 회원국의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의를 통과하고도 스스로 허가를 취소한 사유는 무엇인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첨단제제는 제조공정이 까다롭고 고가의 원료가 많이 사용돼 치료를 받는 데 1억 원 이상 소요되는 것도 드물지 않을 만큼 비용 부담이 크다. 우리나라처럼 국가의료보험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의약품이 출시되면 보험급여를 결정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많은 경우 이 단계에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시장 출시를 포기하게 된다.
한 사례가 캐나다 덴드리온사의 전립선암 의약품인 프로벤지다. 총 3회 투여에 책정된 약가는 무려 9만3000달러(약 1억800만 원)였지만,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유효성은 환자의 생존 기간을 4.1개월 연장해 기존 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 효과에 국민의 보험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이후 덴드리온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파산해 다른 회사에 여러 차례 매각되기를 거듭했다. 잘목시스라는 제품은 시판 후 추적관찰을 하는 동안 유의한 결과를 얻지 못해 스스로 제품 허가를 철회한 사례도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의약품의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마다 제품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를 가지고 식품,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 전 분야에 걸쳐 이를 사용하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 이런 제품의 개발사들은 마케팅을 위해 필수적인 검증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사설 인증까지도 추가로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다양한 인증으로 품질을 검증받는 것이 판매 촉진과 가격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