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건의 신약이야기] 나스닥 히어로 된 ‘키메라’…비결은 ‘죽음의 키스’
최근 2년간 나스닥에 3개 회사의 상장을 이끈 원천 기술(플랫폼 테크놀로지)이 있다. 바로 프로탁(PROTAC)이다. 프로탁은 프로티알리시스 타깃팅 키메라(PROteolysis-TArgeting Chimera)의 약자로, 특정 단백질의 분해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017년 3월 17일자에 ‘암 치료 분야의 선구자들’이라는 제목의 특집에서 프로탁을 다뤘다. 질병 관련 표적 단백질에 단백질 분해 유도 효소를 가까이 붙여 특정 질병 단백질을 분해하는 새로운 약물작용 원리다.

같은 해 <네이처 화학생물학>에서도 프로탁과 E 3 효 소(VHL·VonHippel-Lindau tumor suppressor), 표적 단백질이 결합한 3차원 구조를 다뤘다. 프로탁의 ‘연결’로 E3 효소와 표적 단백질인 Brd4(급성 골수형 백혈병 치료에 이용되는 표적 단백질)가 마치 입맞춤하는 듯한 구조로 마주하고 있어 ‘죽음의 키스’로 불린다.
[배진건의 신약이야기] 나스닥 히어로 된 ‘키메라’…비결은 ‘죽음의 키스’
표적단백질-유비퀴틴 잇는 프로탁 플랫폼

프로탁의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 중 하나인 ‘유비퀴틴-프로테아솜 단백질 분해 경로’에 대한 선행지식이 필요하다. 유비퀴틴은 76개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진 작은 단백질이다. E1, E2, E3 세 종류의 효소에 의해 다른 단백질에 달라붙어 분해를 촉진한다.

프로테아솜은 세포 안에서 단백질 분해 공장 역할을 하는 세포 소기관이다. 체내 단백질에 구조적인 문제나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 안에서 분해 대상이 된다. 유비퀴틴은 세포 안의 불필요한 단백질에 붙는 표지 스티커다.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은 선택적으로 분해되는 경로에 들어선다.

불량 단백질에 E3 효소가 결합하고, E2 효소에 의해 유비퀴틴 식별 표시가 붙으면 이 단백질은 단백질 분해 공장인 프로테아솜으로 들어가 분해된다. 불필요한 단백질을 청소해주는 이 경로에 문제가 생기면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생명과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한 기전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해오던 저분자화합물 치료제는 질병과 관련이 있는 특정 단백질의 활성 부위나 결합 부위에 결합했다. 그래서 문제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거나 그 단백질이 다른 단백질과 결합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프로탁은 저분자 약물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다. 프로탁은 ①분해하고자 하는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물질 ②유비퀴틴 E3 효소와 결합하는 물질 ③두 물질을 잇는 연결부까지 모두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프로탁은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곳에 있던 2개 단백질을 가까이 위치하도록 만든다. 프로탁이 표적 단백질에 잘 결합하도록 설계한다면, 분해작업의 스위치를 켤 수 있는 E3 효소가 가까워진 표적 단백질을 손쉽게 분해할 수 있다. 기존 약물들은 표적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는 특정 활성 부위나 결합 부위에 반드시 결합해야만 약효를 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프로탁은 결합 부위와 상관 없이 표적 단백질을 그저 분해할 수 있는 위치에 가깝게 붙들어둘 수만 있게 하면 되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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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프로탁 적용 어려울 수도

<네이처 화학생물학>에 실린 프로탁, E3 효소, 표적 단백질이 결합한 3차원 구조의 경우 프로탁이 E3 효소와 결합하는 데 VH032라는 저분자화합물이 사용됐다. 분해 대상이 되는 표적 단백질인 Brd4와 결합하는 데에는 JQ1이라는 저분자화합물을 이용했다. 두 저분자화합물은 연결 링커인 폴리에틸렌글리콜(PEG)로 이어져 ①JQ1 ②VH032 ③PEG 링커로 구성된 프로탁을 구성했다.

프로탁이 E3 효소와 같이 죽음의 키스를 유도하면 만능 조커가 될 수 있지만 표적 단백질이 모두 Brd4와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암 발현과 깊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라스(Ras) 단백질이나 베타카테닌(β-Catenin) 같은 경우 분해되기 전에 먼저 인산화 과정이 필요하다. 라스는 144번과 148번 위치의 트레오닌이 인산화돼야 하고, 베타카테닌은 45번 세린이 순차적으로 인산화돼야 한다.

특별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인산화 부위 사이의 간격이다. E 3 효소 중 하나인 베타-TrCP(β-TrCP)는 인산화된 세린과 트레오닌이 정확히 4개 아미노산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어야 확실하게 결합해 ‘죽음의 키스’ 구조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프로탁으로 표적 단백질인 라스와 E3 효소를 가깝게 만들 수는 있어도 죽음의 키스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라스의 경우 144번과 148번 위치 트레오닌의 인산화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가 또 다른 큰 숙제다. 라스나 베타카테닌 같은 중요한 단백질들은 인산화라는 과정을 더해 자신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놓았다. 필자도 프로탁이란 도구가 죽음의 키스를 유도하는 만능 조커가 되기를 바라지만, 자연은 우리가 쉽게 여길 대상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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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후 프로탁에 대한 관심 급증, 아직은 연구 초기단계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왜 국내 스타트업들은 프로탁에 관심이 있을까. 프로탁 기술은 연구 역사가 짧으며 대부분의 기업이 연구개발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도 앞서나가는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 2001년 프로탁의 개념을 입증하는 첫 논문이 나온 이후 조금씩 관심이 높아지다가, 2013년 동물실험으로 체내에서 적용 가능성이 입증된 뒤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돼 2019년에는 107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신약으로서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세포막 투과성 시험, 저분자화합물로만 구성된 프로탁 개발 등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는 어떤 프로탁 기업이 한국인 과학자들이 주도해 프로탁을 연구하는 기업으로는 핀테라퓨틱스가 있다. 2017년 세계에서 5번째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됐다. 국내에서는 2018년 유빅스테라퓨틱스가 프로탁 분야에서는 가장 먼저 설립돼 시리즈A로 40억 원을 투자받았다.

유빅스는 신호전달경로, 후성유전학*의 연구개발 노하우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면역항암제 분
야에 중점을 두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어 같은 해 창업한 업테라는 특정 인산화 효소(키나아제)를 표적으로 한 프로탁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심혈관질환의 경우 혈중 ‘저밀도지방단백질-C(LDL-C)’ 농도를 낮추는 프로탁 신약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약물에 내성이 있는 환자 및 고위험군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이노큐어테라퓨틱스가 있다. 2018년 이노큐어를 창업한 유혜동 대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NCE사이언스에서 퇴행성 뇌질환 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셀진에서 나노항암제 ‘애브락세인’ 대체약물 개발 등 신약물질 개발에 참여했다. 이노큐어는 시리즈A 펀딩 자금을 기반으로 2022년 2분기까지 만성골수성백혈병 T3151 돌연변이 프로탁 치료제의 전임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한 라스 특정 변이 단백질을 표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프로탁 분야에서는 현재 미국의 프로탁 연구기업 아르비나스만 임상에 진입한 상태이고, 키메라테라퓨틱스가 두 번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프로탁의 촉매기능 덕분에 적은 용량으로도 높은 치료효과를 내고 기존 치료제의 내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향후 프로탁 기반 신약 개발 진전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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