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황만순 상무는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벤처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다. 바이오업계 샛별로 떠오른 하이센스바이오는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아기 유니콘’으로 선정한 기업이다. 기업가치 1조 원(10억 달러) 이상의 비
상장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떡잎 푸른 기업’이란 얘기. 박주철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가 창업했다. 투자 전문가와 벤처 기업가가 나눈 대담을 정리했다.
황만순 상무(이하 황) 하이센스바이오가 설립 5년차를 맞았습니다.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주철 대표(이하 박) 충치를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회사입니다.(웃음)
황 (반색하며) 잠깐만요. 하이센스바이오의 치료제가 상용화된다면 괴롭기 짝이 없는 치과 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요?
박 (단호하게) 그건 아닙니다. 충치로 깊게 파인 이를 때우는 등 기존 치료 없이 원상태로 복구할 방법은 아직 없거든요. 그리고 만약 약을 쓰는 것만으로 치아가 원상복구된다면 전 세계 치과 의사들이 우리 치료제를 보이콧할지도 모르고요.(웃음) 대신 저희가 개발 중인 치료제는 훼손된 상아질을 재생해주기 때문에 이가 시린 증상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기존 치과 치료와 병행하기 좋지요. 파이프라인 소개는 조금 후에 하고 다시 회사 소개로 돌아가도 될까요?
황 네, 부탁드립니다.
박 하이센스바이오는 제가 2016년 설립했고, 현재 직원 수는 저를 포함해 16명입니다. 이 중 10명이 연구개발(R&D)을 맡고 있고, 나머지는 경영 및 인허가 관련 인력입니다.
3주 정도면 시린이 아픔 ‘끝’
황 그럼 파이프라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박 진도가 가장 빠른 건 시린이 치료제 ‘KH001’입니다. 임상 1상을 진행 중이고요, 충치 치료제와 치주질환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KH001은 우선 전문의약품 판정을 받았는데, 추후 치약에도 쓸 수 있고 양치액이나 의료기기에도 접목할 수 있어 상당한 파급력이 예상됩니다.
황 아무도 연구하지 않던 분야를 계속 파고든 덕분에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도 얻으셨죠. 시린이가 치료되는 원리가 궁금합니다.
박 먼저 이가 시리게 되는 이유를 알아야 이해가 쉽습니다. 이가 시린 이유는 치아표면의 상아질이 훼손돼 이전까지 상아질로 덮여 있던 신경이 바깥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충치 외에도 노화, 미용을 위한 래미네이트 등 다양하죠. 저희는 상아모세포를 활성화해 상아질을 새로 만드는 특정 펩타이드를 찾아냈습니다. 이 펩타이드가 상아모세포를 자극하면 상아모세포가 상아질을 재생해 신경이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그 결과 이가 시린 증상이 사라지게 됩니다.
황 상아모세포가 평소에는 일을 안 하나요? 만약 정상 작동한다면 알아서 상아질을 만들 텐데 말입니다.
박 맞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거나 염증 등으로 훼손되면 상아모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린이 환자가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죠. 저희가 발견한 펩타이드는 ‘잠든’ 상아모세포를 깨워 다시 정상 작동하도록 만들어줍니다.
황 상용화된다면 어떤 식으로 환자에게 쓰이게 될까요? 시린이 환자가 사용하면 낫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박 치료제의 핵심을 담당하는 펩타이드는 물에 녹기 때문에 환부에 바르는 식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열흘에 세 번 치과를 찾아 환부에 도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생각보다 간단하죠? 시린이가 낫는 데는 3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황 3주면 시린이가 낫는다니 솔깃해지네요.(웃음) 예전에는 이가 시리면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참고 살았잖아요. 이번엔 하이센스바이오가 개발 중인 다른 파이프라인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박 KH001에 쓰인 펩타이드의 적응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치아우식증 치료제 ‘KH002’와 치주질환 치료제 ‘KH003’의 전임상을 각각 마쳤습니다.
황 치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추신경계 질환과 말초신경계질환 등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신약후보물질도 개발 중인 걸로 압니다.
박 저희가 개발 중인 기술을 ‘플랫폼 기술’로 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KH001이 상아모세포를 자극하는 것처럼 현재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다른 치료제도 다른 특정 세포를 활성화합니다.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안 되는 중추신경, 말초신경 등의 특정 세포를 자극해 다시 재생이 되도록 돕는 원리입니다. 현재 연구인력 10명 중 2명만 치아 관련 연구자이고, 나머지는 치아가 아닌 다른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래 먹거리를 벌써부터 만들고 있는 셈이죠.
황 기업공개(IPO) 시기는 언제쯤으로 잡고 있나요?
박 그건 오히려 전문가인 황 상무께서 조언해줘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황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을 계획하는 신약의 경우 임상 단계를 어디까지 완료했느냐에 따라 계약금이 천차만별입니다. 영업이익을 못 내는 대다수 바이오 벤처에겐 국내 임상비용 부담도 만만찮습니다. 하지만 미국 임상에 드는 비용에 비하면 사실 큰 비용이 든다고 할 순 없어요. 지금은 시장의 투자자금이 여유로운 상황인 만큼 임상 1상을 마친 뒤 글로벌 제약사와 라이선스 아웃 협상이 어느 정도 진척된 단계가 상장의 적기로 봅니다.
박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때문에 해외 제약사와의 협업이 더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임상 1상이 끝나는 내년 하반기엔 IPO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T 창업은 20대부터, 그럼 바이오창업은?”
황 이번엔 조금 부드러운 얘기를 해볼까요? 창업하게 된 동기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20년 넘게 교수로서 연구에 집중하다 갑자기 창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박 특별한 계기랄 건 없어요. ‘물 흐르듯’ 창업하게 됐습니다. 사실 연구할 때만 해도 창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손상된 치아의 상아질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았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진료를 보는 동료 교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하던 연구내용을 들려줬더니 한 동료가 그러더군요. “그거, 시린이 치료에 쓰면 될 거 같은데? 사업화하면 대박나지않을까?” 하고요.
황 연구만 할 때는 몰랐는데 현장에 있는 의사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다 사업을 결심하셨다는 거죠?
박 맞습니다. 그래서 후배 연구자들에게도 연구만 하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의견을 나눠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게 됐습니다. 황 앞서 ‘물 흐르듯’이라고 하셨는데요, 물에도 ‘속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물이 빠르게 흐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좀 비유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연구를 시작해 창업하는 데까지 걸린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박 상아질 관련 연구만 20년을 했습니다. 환자를 진료하는 대신 연구에 집중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환자를 한 번에 한 명씩 낫게 하는 대신 내 연구로 수만 명의 환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그런…. 여담이지만 치과대 81학번 입학동기 87명 중 저를 제외한 86명이 개원했어요.(웃음)
황 말씀을 듣고 보니 바이오 기업 창업과 IT 기업 창업의 차이점이 바로 이건 거 같아요. IT 기업은 스물네 살에 막 창업하고 빠르게 성장하는데, 바이오 기업 설립자는 대개 나이가 40이 넘고 연구경력도 최소 15년 이상은 되는 것 같거든요.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박 ‘핀란드’ 하면 대부분 자일리톨을 떠올리는 것처럼 ‘한국’ 하면 K-바이오, 더 나아가 ‘하이센스바이오’를 떠올리게끔 하고 싶습니다. 삼성전자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기업이요. 덤으로 지금부터 양치를 열심히 하십시오. 그래서 충치가생기는 걸 3년만 늦춰주세요. 그때쯤이면 ‘우리 약’으로 충치를 치료할 수 있는 시대 가 열려 있지 않을까요?
글=이우상/사진 김영우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0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