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는 넉 달째 "확보 중"
한국과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자국민 접종을 위해 확보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물량이다. 일본 정부는 임상 3상에 들어간 코로나19 백신을 최근 넉 달 동안 3억 병 이상 입도선매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확보 중”이라는 말만 넉 달째 되풀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백신 주권 전쟁’에서 한국 정부가 완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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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3000만 병은 올해 기준 일본 인구 1억2647만 명이 두 번씩 맞고도 남는 물량이다. 보통 백신은 일정 간격을 두고 한 사람이 두 번 맞는다. 약 2억5000만 병의 백신이 필요한데 일본 정부는 7700만 병 이상을 더 확보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보한 물량은 전무하다. 정부는 “다섯 곳을 우선구매 대상에 올려놨다”고만 했다. 아직은 협상에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는 의미다. 백신 수급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협상 중인 백신 물량은 3000만 명분이 넘는다”고 해명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국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기는 한참 늦어질 전망이다. 일본은 내년 상반기에 국민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내년 하반기에 취약계층 접종이 목표다.
내년 하반기 백신 확보도 장담 못해…K방역 '흔들'
“내년 상반기까지 전 국민에게 백신을 맞히겠다.”(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일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패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올인’했다. 개발 실패로 계약금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입도선매에 나섰다. 백신 확보가 코로나 방역의 핵심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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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줄곧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음달께 첫 백신이 나올 예정이지만 여전히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 중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 백신은 안전성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백신 선구매 계약이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9월 우리 국민의 60%인 3000만 명 분량의 백신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진전이 없다. 미국 유럽 멕시코 호주 등도 백신을 선구매하고 있다. 화이자·바이오앤텍의 백신은 미국(6억 병)과 유럽연합(EU·3억 병), 멕시코(3440만 병), 영국(3000만 병), 호주(1000만 병), 캐나다(미공개) 등이 선구매했다. 모더나 백신은 미국(1억 병), EU(8000만 병), 영국(500만 병) 등이 계약했다.
일각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의 코로나 백신을 수탁생산(CMO)하기로 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한 물량 일부를 내수용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구매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부터 우선 공급하고 난 뒤에 국내용으로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와 모더나가) 빨리 계약을 맺자고 한다”며 “백신 확보에서 불리한 상황에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들이 공격적으로 백신 입도선매 계약을 맺은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본은 CMO 물량에 대해 국내용에 한정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노바백스 백신 2억5000만 병을 수탁생산할 예정인 다케다제약은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 생산 물량은 국내용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다케다제약의 생산설비 증설에 301억엔(약 3183억원)을 지원했다. 한국의 백신 CMO 회사인 녹십자나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 같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우리 정부의 백신 구매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도쿄=정영효 특파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