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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신약 개발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짚어본다. 혁신 신약이 될 파이프라인을 발굴해내는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분야에서건 세계 무대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회에 대한 공헌도와 영향, 대중의 인지도나 인기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명예와 부가 따른다. 프로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나 스포츠 강국들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서 국위를 떨칠 수 있는 국가대표와 상비군을 발굴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물질적인 지원을 한다. 난치병에 도전하는 신약 개발 올림피아드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선수촌이 설립돼 체급에 맞는 맞춤형 식단이 제공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재활치료를 통해 최강의 운동선수들이 육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기존의 제약사들은 물론 지식과 기술력을 갖추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다수의 바이오벤처들이 신약 개발에 뛰어들어 기술과 물질을 개발하고 표적 적응증에 맞게 최적화된 용법을 찾아내 임상시험에 진입하고 있다.

신약 개발 국가대표… 누가 키워야 할까

이에 발맞춰 정부는 새로운 미래의 먹거리로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공적 자원을 이용한 인프라와 과제 연구비를 지원을 하고 있다. 투자 업계는 신약 개발의 성공이 창출하는 막대한 부를 기대하고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국가대표와 상비군을 육성하는 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오르기 전에 우리를 감동시켰던 메달리스트들은 대부분 비슷한 사연이 있다. 타고난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한 유망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서 키워낸, 선수로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불운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했던 지도자와 배고픔과 극한적인 훈련을 이겨낸 선수의 영화 같은 인간 승리 스토리였다.

이는 마치 어느 날 별안간 들려온 신약 기술수출 쾌거와 공통점이 많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신약 개발의 경험이 없는 연구인력들의 불굴의 투지, 재원과 시설의 부족을 극복하며 세상의 무관심속에서도 한 우물을 판 제약사의 의지가 어우러져 일궈낸 성과다. 그럼 국제무대에서 들려온 승전보와 기술수출 소식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작은 불꽃을 큰 불꽃으로 만들어 영원히 훨훨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공정한 선수 선발과 평가를 할 수 있는 전문가이자 지도자이다. 국가대표는 많은 특혜,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최고의 영예가 부여되는 자리이다. 일부 구기 종목을 제외하고는 국제경기에서의 성적이나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일정한 성적이나 점수를 기록한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뽑는다. 경기의 승패에는 본인 뿐 아니라 상대방의 실력과 운도 작용한다. 그래서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이 아닌 여러번의 결과를 종합한다면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평할 것이다. 신약 개발 바이오 분야에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다.

국가에서 재원과 인프라를 지원하는 여러 과제나 프로그램에 선정되는 것도 바이오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저 제약사나 신생 바이오 기업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몇 푼의 연구비를 제공하거나 필요한 설비나 기계를 놓을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중추가 될 미래의 신약 개발에 핵심인 이론과 개념의 정립, 기술과 물질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 바이오 국가대표를 신중하고 심각하게 선발해 지원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성공적인 스포츠 감독들은 무명의 혹은 유명한 선수로서의 실전 경험에 이론을 접목시킨 지도력을 갖추었다. 즉, ‘해본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정한 경쟁되려면 지도자도 페어플레이 정신 필요

그럼 혁신 신약, 최고 신약을 추구하는 바이오 분야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말하면 ‘해본 사람’ 보다 ‘아는 사람’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바이오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신약 개발의 최종 성공은 기술수출이 아니라 상용화의 달성이다. 그 첫걸음이 실용화인데 실험실에 머물렀던 기술이나 물질이 밖으로 나와 임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다. 기술이나 물질의 실용화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땅속에 묻혀 있는 광석을 알아보고 캐내서 찬란한 다이아몬드로 깎고 다듬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와 지도자, 즉 순수과학을 응용과학으로 이행시켜본 사람, 진료 임상이 아닌 개발 임상을 해본 사람이 필요하다.

스포츠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지속적인 평가전을 통해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하듯이 바이오 분야도 선정된 과제의 결과물을 공정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선후배의, 그리고 동료들의 결과물을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엄격하고 혹독하게 평가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부진한 진도, 시행착오를 문책하고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기 위해서다.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고 상을 받게 해주려는 노력에 비난의 화살이 날라올 이유가 없다.

언제든 평가를 받는 입장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전문가이며 지도자다. 그런데 이렇게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할 스포츠선수 선발과 평가 과정에서 규정이나 조건, 심판의 공정성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는 종목, 즉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는 종목에서 파벌, 차별, 불공정, 학대 등 스포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이는 종종 국제대회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이어진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 물질은, 저 기술은 왜 선정이 되었지?’ ‘이런 결과물이 무슨 기준과 이유로 그런 평점을 받았을까?’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임상의도 어려워하는 개발 임상 내용을 일반과학자가 심사하고, 피펫(액체나 기체를 측정 또는 옮기는 기구)을 잡아본 적이 별로 없는 임상의가 개발단계의 기술과 물질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웃지못할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바이오산업의 한 단계 도약 위해 공정한 판 짤 때

지금까지도 이렇게 잘해왔는데 왜 판을 다시 짜서 분란을 일으키려고 하느냐는 생각은 지독한 패배주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바이오는 이제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히고 글로벌 제약사의 주목을 받는 당당한 위상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판을 고치고 다시 짜서 지금까지보다 더 잘해보려는 노력과 자신감을 담고도 남을 저력과 맷집을 가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 스스로가 확인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신약 개발을 위한 기술과 물질을 개발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의사,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에게 주는 희망가이다”.
[김선진의 바이오뷰] 공정하게 경쟁하는 지도자만이 국가대표 신약 키워낸다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