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은 1981년 민간기업 최초로 유전공학연구소를 신설해 신약 연구를 시작한 기업이다. 국내 제약 기업 중 최초로 연구개발(R&D) 기반 사업모델을 구축하며 국내 바이오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사가 2012년 출시한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는 국산 신약 최초로 연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됐다.

LG화학의 신약 개발 역사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이 회사는 1989년 국내 최초 유전공학 의약품인 ‘인터맥스감마’를 출시했다. 1991년엔 국내 최초로 신약 개발 기술을 수출했다. 당시 GSK에 4세대 항생제 기술을 이전했다. 1996년엔 B형 간염 백신인 ‘유박스’를 통해 국내 최초로 세계보건기구(WHO) 입찰 참가자격을 얻었다. 200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국내 신약 최초로 제품 승인을 받은 항생제 팩티브도 LG화학이 만들어낸 성과물이다.

국산 신약 최초로 연매출 1000억 원 돌파

제미글로는 제미글립틴이 주성분인 국내 최초 당뇨 신약이다. 유비스트의 원외처방자료에 따르면 제미글로 제품군의 2020년 1월에서 11월까지 매출액은 106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30개 국산 신약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한 해에 1000억 원 이상의 실적을 올린 브랜드는 국산 신약 19호인 제미글로가 유일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제미글로의 뒤를 이어선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인 카나브가 같은 기간 매출액 943억 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이 제미글로 제품 개발에 착수했던 건 2003년이다. 출시 첫해인 2012년 56억 원 매출을 올린 뒤 2016년 연매출액 500억 원을 넘겼다. 2019년엔 1008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국산 신약 최초로 연매출 1000억 원의 벽을 돌파했다. 이 제품은 지난 8여 년간 7억 정 이상 판매됐다. 누적 매출액은 5000억 원 수준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그동안 판매된 제미글로 제품들을 가로로 줄 세우면 약 1만㎞ 길이로 인천서 미국 뉴욕까지의 비행거리인 1만1000㎞에 맞먹는다”고 말했다.

제미글로는 DPP-4 저해 기전 당뇨병 치료제로는 국내 다섯 번째로 출시된 제품이다. DDP-4 저해제는 인크레틴을 분해하는 DPP-4 효소의 활동을 억제해 혈당을 낮추는 방식의 당뇨 치료제다. 인크레틴은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항인슐린 작용을 하는 글루카곤을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량을 늘림으로써 인슐린 작용을 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

1300억 원 투자해 ‘계열 내 최고(Best-in-Class)’ 입증

LG화학은 해외 제약사가 앞서 내놓은 제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1300여억 원을 투자했다. 이 중 약 500억 원이 제미글로 개발에, 나머지 800여억 원이 경쟁 제품과의 비교 시험과 복합제 개발 등에 쓰였다.

DPP-4 저해 기전 방식의 당뇨병 치료제는 저혈당이나 체중 증가 부작용이 적고 췌장 보호 효과가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제약사들이 DPP-4 저해 기전 방식의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도 DPP-4 저해 기전으로 9개의 제품이 출시돼 있다. 이들 9개 제품 가운데 다섯 번째로 시장에 나온 제미글로는 처방을 확대하기 위해 앞서 출시된 제품보다 우수한 성능을 입증해야 했다.

제미글로는 비임상 당뇨 모델 마우스에서 경쟁 제품인 MSD의 자누비아(성분명 시타글립틴) 대비 10분의 1의 용량으로도 효능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3상 비교 임상을 통해선 자누비아보다 우수한 DPP-4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 제미글로는 약물 반감기가 약 17~21시간으로 길어 하루 1회 복용만 하면 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또 다른 경쟁 제품인 노바티스의 가브스(성분명 빌다글립틴)는 하루 2회 복용이 필요하다. 제미글로는 신기능 장애 환자와 경증·중등도의 간기능 장애 환자에게 용량 조절 없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 투약 편의성에서도 장점이 있다는 게 LG화학 측의 설명이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후속 연구를 통해 자누비아보다 더욱 안정적으로 혈당 변동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SGLT-2 저해제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포시가(성분명 디파글리플로진)와 비교해서도 혈당변동성 개선 효과가 뛰어다나는 점을 후속 연구로 확인했다. SGLT-2 저해제는 소변을 통한 당 배출량을 늘리는 데 관여해 당뇨 치료 효과를 확보한다. 지방 감소, 염증 감소, 신장 보호 효과가 있지만 소변량이 늘어나거나 생식기 감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회사 측은 중등도·중증 신장애를 동반한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선 제미글로가 베링거인겔하임의 트라젠타(성분명 리나글립틴)보다 혈당 감소효과, 단백질뇨(알부민뇨) 개선 효과가 우수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신장 보호 효과도 입증해 제미글로가 혈당 조절 외 부수적인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복합제로 제품군 넓혀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복합제 출시로 제품군을 넓히기도 했다. LG화학은 2013년 제미글로와 메트포르민 서방정의 복합제인 ‘제미메트SR 25/500㎎’ 출시를 시작으로 제미메트를 4개 용량으로 나눠 시장에 내놨다. 메트포르민은 간에서 포도당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고 장에 흡수되는 포도당의 양을 줄일 수 있는 당뇨약이다. LG화학은 제미글로의 제형을 축소해 환자의 약물 복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데도 공을 들였다. 2017년엔 제미글로와 이상지질혈증 치료 성분인 로수바스타틴의 복합제 ‘제미로우’를 출시했다.

LG화학은 제미글로를 회사의 대표 성장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당뇨 제품군을 계속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제미글로와 SGLT-2 저해제를 합친 새로운 당뇨 복합제에 대해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인슐린 민감도 조절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GPR120을 활용하는 방식의 당뇨 치료 후보물질에 대해선 전임상을 하고 있다. 해당 전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방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GPR120은 체내 부족 시 비만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제미글로는 다양한 경쟁 약물과의 비교 임상을 통해 효능을 입증하고 복합제를 다양하게 개발해 복용·투여 편의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며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