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생각하고 작게 시작하며 빨리 움직여라(Think Big, Start Small, Move Fast)’는 미국의 최고 병원 중 한 곳인 CFI의 모토이다.
산업마다 고유한 속도 있어…
헬스케어 분야 신중한 전략 필수
혁신의 방법론은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식스시그마, 서비스 디자인 등 다양하고 지금도 새로운 방법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방법론별로 차별점이 있지만, 현황분석-계획-실행-점검을 통해 혁신을 이뤄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유사하다. 메이요클리닉 CFI의 핵심은 속도보다 혁신적 대안을 테스트하고 보완 후 확산해 나간다는 데 있다.
고객의 니즈, 경쟁 환경 등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다 보니 경영자들은 전략을 고민하다 사업화의 시점이 늦을까 걱정한다. 전략 수립에서 실행으로 이어지는 톱다운 방식보다 직관에 따른 아이디어로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가족 같은 분위기로 성장해 온 초기 단계 기업의 경우, 경영자의 판단에 대해 구성원들이 ‘노(No)’라고 말하기가 더 껄끄럽다. 신중한 전략 수립 후 진입하는 방식과 신속한 실행 후 보완하는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 전에 헬스케어 산업의 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모든 산업은 고유한 속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 중 하나로 신제품 발매 주기가 6개월 정도이다. 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업계에서 버티기 어렵다. 반면 헬스케어 산업은 신약 개발에 걸리는 기간, 병원의 의료서비스 소요시간 등 속도에 있어 눈에 띄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정보기술(IT) 기술의 발전과 제도적 지원 등으로 과거에 비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설사 고객들이 특정 헬스케어 제품과 서비스를 원한다고 해도 임상시험, 규제기관의 승인, 수가 반영 등 진료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기본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OTT(Over the Top) 기업처럼 기존 시장을 대체한 사례가 있지만, 헬스케어 기업들은 예방-진단-치료-사후관리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그 가치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신중한 전략의 수립이 더욱 중요하다.
전략 수립 시 반드시 체크해야 할 리스트는?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즈니스 모델의 방향성 정립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많은 선택지 중에 어떤 전략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되어야 한다.
첫째, 무엇을 버릴지 정해야 한다. 버린다는 표현이 다소 과격하고 실제로는 후순위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초기에는 과감히 제외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해외 기업 사례들을 보면서 회사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을 하루에도 몇 개씩 떠올린다. 다 해보고 싶고, 어느 것도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적인 자금이 들지 않더라도,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지난해 컨설팅을 해준 기업에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내려놓지 못하고 있던 전략을 명확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는 것이었다. 선택의 의사결정은 직관이 아니라 시장 데이터, 규제 현황, 전문가 인터뷰 등을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돌이킬 수 있는 전략인지 판단해야 한다. 인허가 절차와 같이 초기에 잘못 선택했을 때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회사 평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지분이 연계돼 향후 변경하기 어려운 파트너의 선정 등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수정 가능한 전략에 대해서도 차선책에 대한 준비는 항상 필요하다.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예상 자원을 타이트하게 잡는 경향이 있다. 실제 실행단계에서 기간이 길어지고, 추가적인 자원도 들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셋째, 전략의 확장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만 확장 가능성이 낮은 전략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술 기반 헬스케어 기업의 경우에는 선행 전략 실행 이후의 적용 분야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확장 가능성으로 해당 전략이 회사의 방향성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수 있고, 회사의 일관성 있는 전략의 선택은 내부 구성원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Think Big, Start Small, Move Fast’라는 CFI의 모토처럼 큰 방향에 부합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신속하게 실행하고, 꾸준히 보완해나가는 구조를 체화한 조직이야말로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목표하는 만큼의 성장을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박경수
고려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삼정KPMG전략컨설팅그룹 헬스케어부문 상무로 재직 중이다. 혜원의료재단 감사, 한국병원경영학회 이사,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병원, 전문병원 대상의 전략 수립, 프로세스 혁신, 해외진출 타당성 분석, 마스터플랜 수립을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