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을 어떻게 켜는지 모르고서야 시동을 끄기는 불가능하다. 염증은 정상 면역반응이 통제할 수 없이 질주하는 것이라 했다. 지난 100년간, 면역반응의 시동이 어떻게 켜지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호까지 설명한 버넷과 메다바 박사의 획 기적인 이론과 실험적 증명에도 불구하고 도네가와의 항체 다양성 이론과 그의 실험 결과는 면역반응의 시작 기전에 대한 해답을 다시 구름 속으로 가두었다. 도네가와의 관찰 및 이론에 의하면 태아 몸 안에서 만들어진 면역세포의 다양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태어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버넷이나 메다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인식하여 공격할 개연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개체에서는 자가면역 질환이 일어나고 있지 않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위험신호이론은 알레르기, 알츠하이머 등의 사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알레르기는 외부 물질이 유입돼 면역 과잉 반응이 일어나 생긴다.
위험신호이론은 알레르기, 알츠하이머 등의 사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알레르기는 외부 물질이 유입돼 면역 과잉 반응이 일어나 생긴다.
B림프구 움직이는 이중의 시동 장치

도네가와에 의하면 B림프구가 만드는 항체의 다양성은 개체가 태어난 이후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중 일부는 내 몸의 구성 성분을 공격한다.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가장 직관적인 생각은 태어나서도 그 다양성이 자궁 내에서와 동일한 상태로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들이 B림프구의 시동을 통제한다고 가설을 세우면 될 것이다. T림프구다.

태어난 후에 항체 다양성의 근본이 되는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하여 자신을 공격하는 B림프구가 만들어진다고 할지라도, A와 반응하는 특정 B림프구의 시동은 A를 인식하는 T림프구가 결정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T림프구의 다양성은 자궁 내 다양성을 벗어나지 않고 태어난 이후에도 그대로 고정되어 있다고 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T림프구는 자궁 내에 있던 태아의 몸 안에서 이미 모두 삭제되었기 때문에, 자신 몸의 구성 성분을 공격하는 B림프구의 시동이 켜질 수는 없다. 이중 신호 이론의 핵심이다.


B림프구의 시동에는 2가지 신호가 필요하다. 제1 신호는 주어진 물질을 직접 인식하여 B 림프구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반응이고, 제2 신호는 T림프구가 B림프구에 내리는 명령을 받아서 B림프구가 일으키는 또 다른 반응이다. 제1 신호와 제2 신호가 존재해야만 B림프구의 시동이 켜진다. 이렇게 되면 결국 주어진 물질에 대응하는 면역 반응을 시동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제2 신호 명령을 내리는 T림프구의 책임이다. 그러니 면역 반응이 어떻게 시동되지? 하는 질문은 곧 T림프구는 어떻게 시동되어 제2 신호 명령을 B림프구에 전달하지? 하는 질문과 같다.

위에서 T림프구의 다양성은 출생 후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T림프구의 다양성 또한 출생 후 지속적으로 변한다.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T림프구의 다양성은 전 생애주기 동안 몸 안에 품고 살아야 하는 T림프구들 중 극히 일부에 불구하고, 오히려 태어나서 청장년기까지 더욱 다양해진다. 더군다나 T림프구는 B림프구가 만드는 항체처럼 주어진 물질을 바로 인식하지 못한다. 반드시 다른 세포의 도움이 필 요하다.

미궁에 빠진 면역반응 시동기전 연구

1970년대 초 래퍼티와 커닝엄 박사는 항원제공세포라는 또 다른 일군의 세포로 이를 설명한다. 이들에 의하면 항원제공세포는 어떤 물질을 잘게 부수어서 자신들의 세포 표면에 전시해 T림프구에 제공하고(제1 신호), 동시에 T림프구에게 제2 신호 명령을 내린다.

항원제공세포가 세포 표면에 전시하는 제1 신호는 주어진 물질의 절편들 그 자체이고, 제2 신호는 항원제공세포의 표면에 올라간 깃발이거나 혹은 항원제공세포가 봉화를 태워서 연기가 주변으로 흘러가게 하는 두 종류 형태로 만들어진다. T림프구는 항원제공 세포 표면에 전시된 물질 절편들(제1 신호)을 인식하고, 동시에 표면의 깃발 또는 연기(제2 신호)를 인식하면 시동이 걸린다.

여기까지 보면 면역반응의 시동에 대한 공이 T림프구에서 항원제공세포로 넘어간다. 그러나 항원제공세포가 주어진 물질에 대한 면역반응 시동의 키를 쥐고 있다고 가정하면, 항원제공세포는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과 외부 환경에 존재하는 수조 개의 물질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외부환경에 존재하는 병원체(non-self)에만 면역 반응이 선택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테니. 그나마 B림프구와 T림프구는 이 세포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들의 무작위 재조합과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하여 수조 개의 수용체를 만들어낼 수 있어 외부 환경의 수조 개 다양한 물질의 형태를 인식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T 또는 B림프구가 주변의 물질을 인식한 후 고스톱(go-stop) 명령을 항원제공세포로부터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항원제공세포는 수조 개의 다양한 물질을 인식할 능력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불과 수십 개의 수용체만으로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물질을 인식한다. 단지 수십 개의 수용체만으로 내 몸 안과 환경에 존재하는 수조 개의 물질들 중에서 어떻게 self와 non-self를 감별할까. 그것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야만 지난 100년간 면역학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면역반응이 self와 non-self를 감별하여 시동이 켜진다는 이론이 유지될 수가 있다.

병원체 고유 분자패턴 인식하는
항원제공세포 연구가 가져온 궁금증

당연히 여기서도 직관적 이론이 우선된다. 즉 항원제공세포는 수십 개의 수용체만으로도 self와 non-self 감별이 가능하다는 것이 1998년에 발표된 제인웨이의 이론이다.

그에 의하면 환경에 존재하는 병원체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들은 특정 패턴이 존재하며 그 패턴은 수적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항원제공세포의 수십 개 수용체만으로도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몸 안의 구성 성분에는 없고, 병원체에만 고유한 분자 패턴은 그들 병원체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십억 년간 진화단계에서 병원체가 버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 제인웨이의 생각이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그 수십 개의 핵심패턴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면역반응을 시동하도록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제인웨이의 이론을 증명하는 논문들이 그 후로 수백 편이 발표된다. 그러나 병원체에만 고유한 분자패턴을 인식하는 항원제공세포의 수용체가 병원체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구성 성분도 인식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부터 면역반응의 시동 기전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오리무중에 빠진다. 면역 반응 시동 결정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항원제공세포가 병원체도 인식하고 우리 몸의 구성 물질도 인식한다니? 우리 몸의 면역계가 self와 non-self를 감별할 수 있다는 지난 100년간의 핵심 도그마는 어쩌란 말인가. 다음 호에서 이 혼돈의 실타래를 풀어보기로 한다.
[성승용의 면역학 강의] 면역반응은 어떤 프로세스로 시동이 켜지는 걸까
성승용

몸속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 논문으로 주목받고 있는 면역학 전문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3년간 교환교수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재임 중이며, 아토피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인 샤페론의 대표이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