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산업, 인허가가 경쟁력
인허가 기간 단축이 경쟁력

2018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적절한 조건을 갖춘 제조사에 자격(pre-certify)을 부여해 인허가 과정을 간소화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제품이 아닌 업체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제조사와의 신뢰와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백신 개발에 대한 신뢰성과 속도 모두를 확보했다.

우선 미국은 ‘액티브(ACTIV)’라 불리는 공공-민간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ACTIV는 정부, 비영리기관, 산업계의 협력체계로,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추진되었다. 네 가지 측면은 ① 임상시험 방법 공유 및 표준화 ② 가능성 높은 신약 우선순위 지정 ③ 임상시험 역량 및 효율성 극대화 ④ 민관 협력적 체계 구축이다.

두 번째로, 미국 정부는 지원금 정책을 통해 제약사가 감내해야 했던 재정적 리스크와 부담을 감소시 켰다. 정부는 백신 개발을 위해 작년 6월까지 2조 2000억 원을 선제 투자했다. 또한 ‘워프스피드’ 작전을 통해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에 각각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총 투자액은 약 12조 원이다.

한국도 제약사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존재한다. 하지만 너무 적은 금액으로 제약사의 부담을 줄여주지 못했다. 또 금액 분배에 대한 고민과 지급 승인을 위한 절차의 복잡성으로 인해 지원금 배정이 늦어져 문제가 됐다.

마지막으로 워프스피드 작전은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된 백신에 한해, 임상시험 진행 중에 대량생산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작전을 수행했다. 정부가 리스크를 감수하며 신약 확보에 속도를 낸 것이다.

임상시험 단계에서도 적응적 및 연속적 임상시험 설계를 통해 일반적인 임상 개발 단계를 가속화시켰다. 통상 전임상의 백신이 개발되기까지는 평균 10.71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인류는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백신 개발이라는 유례없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백신이 개발되어 상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후보물질 선정, 전임상시험, 임상시험, 신약 허가 및 시판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전과정을 단축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후보물질 선정 기간을 플랫폼 기술로 단축시키는 것이다. 플랫폼 기술이란 이전 백신에 특정 항원이나 유전정보만 변경해 백신을 개발하는 기술로, 이를 활용하면 백신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 국내의 경우 백신 개발의 경험이 적고, 많은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에 비해 개발 속도가 늦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이다. 임상시험은 1상, 2상, 3상으로 나뉜다. 기존에는 임상시험 1상이 끝나고 임상시험 2상을 진행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이러한 기존 방식을 변경해 1상부터 3상까지의 단계를 중첩시켜 진행한다면, 임상시험을 빠르게 마무리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약 허가 단계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많은 국가들은 긴급승인허가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백신의 경우 품목허가 후 국가출하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통상 품목허가는 180일 이상 소요되며, 국가출하승인은 2~3개월이 소요된다.
이런 과정을 단축시키기 위해 한국은 품목별 사전검토와 허가심사를 통해 품목허가 기간을 40일 이내로 단축시키고, 국가출하승인기간은 20일 이내로 단축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더욱 단축시키고자 한다면 특례수입(긴급사용승인) 제도도 존재한다.

식약처장에게 특례수입을 승인받게 되면 품목허가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식약처는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특례수입을 허용했다.

어떤 과정을 어떻게 조정해서 이렇게 길고 긴 과정을 줄이면서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물질의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과제일 것이다.

DTC가 역수입된다

국내 소비자 직접 의뢰(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허용된 지 만 4년이 넘었다. 의료계 반발과 규제에 막혀 국내 시장은 일찍이 포기했다는 게 2년 전 필자가 들은 관련 업체 측의 이야기이다.

검사항목에 제한이 없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검사항목을 법으로 정해놓은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업계의 규제완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DTC 인증제 시범사업을 통과한 일부 기업에 한해 검사항목을 70개로 확대했다. 1차 시범사업(2019년) 당시 56개 항목에서 최근 2차 시범사업 참여 검사기관을 모집하며 70개 항목으로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의 관심이 높은 질병 진단이나 치료 등 의료적 목적의 검사는 의료기관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유전자검사의 핵심인 질병 관련 항목이 여전히 규제로 묶여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12개→56개→70개. 한국에서 찔끔찔끔 항목을 늘리는 동안 유럽에서는 DTC 스타트업이 낮은 가격 및 상품 경쟁력을 무기로 일용소비재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7년 4월 FDA가 파킨슨, 알츠하이머, 셀리악병, 1형 고셔병, 유전성 혈전증 등 10개 질환에 대한 DTC 테스트를 승인했다. 이후 2018년 3월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의 발생률을 높이는 BRCA1, BRCA2, 유전자 변이 등 세 가지에 대한 질병 위험도 유전자 검사가 승인되었다.

소비자는 유전자 검사를 원할 때 직접 인터넷으로 의뢰할 수 있다. 이후 택배로 키트가 배송되면 소비자는 침을 뱉어 기관으로 발송하면 된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유전자검사업체인 23andME에서 유전자의 차이가 코로나19의 중증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1만여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300개, 중국은 350개의 항목에 대해 검사가 가능하다.

한국의 역량은 마크로젠이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게놈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커버스토리로 발표함으로써 이미 입증됐다. 하지만 한국은 검사항목 자체에 대한 국가의 포지티브 규제로 인해 관련 기업이 매출과 수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DTC 업계가 글로벌 DTC 유전자검사 시장을 선도할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앤세스트리, 23andMe 같은 해외 DTC 업체를 통한 우회검사가 성행하고 있다. 관심이 높은 국내 소비자들이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해외 상품을 구입해 검사를 위탁하고 있다.

해외 유전체 기업들은 국내에서 사실상 항목 및 연령의 제한 없이 DTC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수 있어 국내 기업이 실질적으로 심각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한 해 3000만 명 이상이 DTC 서비스를 이용할 동안 DTC유전자검사서비스사업(복지부), 규제샌드박스(산업부) 등 의미없는 흉내만 남발할 뿐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이고 진취적인 조치는 거의 취하지 않고 있다.

실제 규제개선의 효과 나타났을까

필자는 2년 전, 국무총리실에서 규제개선 성과로 발표한 바이오 분야 규제개선 과제들을 대상으로 실제 규제개선의 효과가 나타났는지 전문가 델파이 분석을 진행했었다.

그 결과 73건의 바이오 분야 규제개선 과제 중 최종적으로 개선이 확인된 규제는 30건이고 개선되지 않은 규제는 21건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잔여배아 이용 연구범위 확대’ 규제 이슈가 있었다. 생명윤리법상 잔여배아를 이용한 연구 범위를 대상질환으로 열거 및 지정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잔여배아 연구 활성화를 저해하고, 관련 기초연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소관부처는 일정 조건하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생위)의 심의제도화 방안 검토 후 연구 가능한 질병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안건에 대한 심의는 국생위에서 수차례 보류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소관부처는 잔여배아 연구대상 질환 확대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규제개선을 유예했다. 규제의 문제점과 시스템 문제를 개선하려는 규제당국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논의가 되어야 할 점을 계속해서 미룬 사례이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책임없는 발표를 일삼으며, 연구자들에게 헛된 희망과 좌절만 안겨준 것이다.

‘원료의약품 등록 의무대상에서 주사제 의약품 원료 제외’의 경우 약사법상 신규 품목허가를 신청하는 모든 주사제는 ‘원료의약품 등록제도’에 따라 등록된 원료의약품만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등록이 저조해 신규 주사제 개발에 어려움이 있었다. 기존에 허가를 받은 주사제 등의 의약품은 원료의약품을 등록하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하므로, 업자는 별도의 비용을 들여 신규 원료의약품을 등록할 이유가 없다.

또한 원료의약품 자급도가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에서 원료의약품을 수입하므로 해외 실사 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관부처는 간담회 등을 통해 치료에 필수적인 성분 등을 고려해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하지만 ‘주사제의 원료의약품’은 여전히 등록 대상으로 남아있다.

다만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3조 제4항 제7호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한 퇴장방지의약품에 해당하는 성분 및 영양소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제제의 원료의약품은 등록 대상 원료의약품 항목에서 제외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등록대상 원료의약품 항목을 제외해 규제를 개선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영양소의 보급이 아닌 치료제 개념이 포함된 적응증의 경우에는 동일한 제조처의 동일한 제조방법으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원료의약품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면 신규 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지정한 등록대상 원료의약품 중 일부의 경우 국내 규정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구비하기 어려우므로 원료의약품 등록 시 필요한 자료에 대한 인정 기준 확대가 필요하며, 실제 사용하는 원료의 경우 등록된 원료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신제품 개발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필자가 대표적인 사례만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규제개선이라고 포장된 것들에 대해 과학기술연구계와 산업현장의 공감은 없었다. 핵심적인 알맹이는 죄다 무시하곤 규제개선 실적이라고 국민 앞에 발표한 것이다.

정부의 느린 대응과 방관적 자세는 바이오산업에는 높은 불학실성을 의미한다. 정부는 소비자와 국민의 수요와 관심을 환기하면서, 정책 및 규제당국의 관심을 모으는 선제적인 방법과 과정을 개발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산업, 인허가가 경쟁력
김태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