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반응의 시동을 거는 건 항원제공세포다. 항원제공세포는 어떻게 정확히 self와 non-self를 구분할 수 있을까. 학계에서는 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병원체는 숙주의 호흡기 등의 점막에 잘 정착하게 표면이 끈적이도록 진화했다. 숙주의 혈액 내 단백질들은 죽은 병원체에서 나오는 분자 쓰레기 또한 끈적한 표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숙주 방어 시스템으로 모두 청소해버린다.
병원체는 숙주의 호흡기 등의 점막에 잘 정착하게 표면이 끈적이도록 진화했다. 숙주의 혈액 내 단백질들은 죽은 병원체에서 나오는 분자 쓰레기 또한 끈적한 표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숙주 방어 시스템으로 모두 청소해버린다.
제인웨이 박사의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 이론에 의하면 우리 몸이 처음으로 만난 물질에 대해 면역반응을 시동할지를 결정하는 최상위 의사결정권자는 항원제공세포이다.

그런데 항원제공세포가 non-self인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를 인식하는 데 사용하는 수용체가 self도 인식한다는 논문이 수백 편이 보고된다.

그렇다면 제인웨이 박사가 이야기한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의 핵심인 non-self 와 self의 감별에 의한 면역반응의 시동 이론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면역반응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다양한 이론 존재

1994년에 매칭거 박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위험 신호’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건강한 세포가 병원체 감염이나 물리적 충격에 의해 죽으면 세포 안에 감추어져 있던 물질이 세포 밖으로 흘러나오고, 이 물질들이 ‘위험 신호’로 작용해 항원제공세포를 시동한다.

즉 항원제공세포를 시동하는 것은 건강한 상태에서는 감추어져 있던 세포 자신의 물질이라는 설명이다. 병원체 감염이 없이도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무균성 염증 기전을 설명하는 획기적인 대안이다.

이 이론이 발표된 이후로 우리 몸의 구성 성분 중에서 세포가 죽었을 때 세포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질들의 실 체와 그들이 항원제공세포를 시동하는 기전에 대한 수백 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그런데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병원체에만 고유한 물질(non-self)을 선택적으로 인식해 self와 non-self를 감별할 수 있다던 항원제 공세포가 우리 몸의 물질도 인식해 시동된다니. 처음으로 노출된 물질에 면역반응을 일으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인 항원제 공세포가 병원체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구성 성분에 의해서도 시동되는데 왜 자가면역 질환이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처음으로 면역계에 노출된 물질에 대한 면역 반응의 시동 여부는 도대체 어떻게 결정된다는 소리인지, 수십 개뿐인 수용체만으로 항원 제공세포는 어떻게 환경과 체내의 방대한 분자 정보를 처리한다는 말인지, 곤충, 식물 및 동물 등에서 유래된 알레르기 원인물질은 병원체도 아니고 우리 몸 안의 세포 구성 성분도 아닌데 이들은 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건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아밀 로이드베타 분자들은 어떻게 뇌에서 면역반 응을 시동해 염증을 유발하고 신경세포를 죽인다는 이야기인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이에 필자는 생명체의 ‘손상된 쓰레기 분자’ 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분자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면역계는 ‘손상된 분자 쓰레기 패턴’을 인식해 시동이 켜진다는 이론을 2004년 <네이처 리뷰이뮤놀로지>에 제시했다.

제인웨이 박사의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은 우리 몸의 구성 성분이 아니니 내 몸의 구성 성분이 항원제공세포를 시동하는 기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매칭거 박사의 ‘위험 신호’는 건강한 세포 안에 감춰져 있다가 손상된 세포로부터 유리되는 내 몸을 구성하는 분자들이다.
그러나 ‘위험 신호’ 이론은 병원체에서 유래한 내독소와 같은 물질이 직접 항원제공 세포의 시동을 켜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손상된 쓰레기 분자 패턴’이론에서는 병원체, 곤충, 식물, 동물, 내 몸 또는 세포 밖과 세포 안을 가릴 것 없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분자들이 노화되어 변성되거나, 병원체의 효소 등에 의해 파괴되거나 또는 산소, 온도 충격이나 기타 여러 스트레 스에 의해 분자의 3차 구조가 변성된다. 이렇게 쓰레기가 되면 정상적인 구조에서는 볼 수 없는 불규칙적인 형태로 변해 면역계의 시동을 켠다는 이론이다.

병원체 감염에 의한 염증, 알레르기 원인물질에 의한 알레르기와 아토피, 아밀로이드베타 에 의한 뇌신경 염증, 허혈 손상에 의한 신염 등 제인웨이 박사의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 이론이나 매칭거 박사의 ‘위험 신호’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면역 시동 영역들이 해결 되었다.

그러나 또 문제가 발생한다. 고유한 기능을 잘 수행하는 건강한 분자와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변성된 분자 쓰레기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르기에 항원제공세포는 ‘변성된 분자 쓰레기’들만을 선택적으로 인식하여 시동되는가.

‘변성된 분자 쓰레기’ 서로 모여 응집체 생성

‘변성된 분자 쓰레기’들은 내인성 물질, 외인성 물질 가리지 않고 변성작용에 의해 안정된 3차 구조가 소실되어 무작위적으로 응집체가 만들어진다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계란 내용물을 뜨거운 불판에 올리면 흰자와 노른자가 하얗게 변성되어 굳는다. 대표적인 단백질의 열변성이다. 콩을 갈아서 간수를 넣으면 콩단백질이 응집되어 두부가 된다. 대표적인 산, 염도에 의한 단백질 변성이다.

이는 모두 단백질 변성의 극단적인 예이다. 생체 내에서 이런 막대한 단백질 변성이 벌어진다면 아마도 개체는 일찍 사망에 이를 것이다.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상 환자에게서 병원체 감염 없이도 몸 안에서 막대한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이유다.

숙주 세포가 죽거나 또는 장기를 이루는 세포와 세포 사이에 가득찬 간질이 분해되거나 변성되면 분자 쓰레기가 조직에서 대량 생산된다. 건강한 상태에서 일부 분자들은 혼자서 혈액이나 조직을 떠돌지만, 대부분의 생체 분자들은 다른 분자들과 결합한 복합구조를 이루다 보니 쉽게 변성이 된다. 병원체나 숙주세포막에 있는 분자들은 세포가 죽으면 혼자서 막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대부분 많은 세포막 지질들과 함께 응집체를 만들면서 쓰레기가 된다.

눈에 안 보이는 미세조직 내 환경에서 변성된 분자에 의한 응집체 형성이 아주 적은 규모이긴 하지만 항상 일어난다. 혈액 내 분자들이나 세포 내 분자들은 모두 유효기간이 있다.

만일 이렇게 일상에서 항상 만들어지고 있는 분자 쓰레기 응집체를 조직 내나 혹은 세포 내에 방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콩단백 질이 응집되어 두부가 되는 것처럼 눈덩이처럼 응집체의 크기가 커진다. 이 응집체들은 혈관을 막아서 조직의 허혈손상을 일으키거나 세포막에 막대한 위해를 준다.

변성된 분자들은 왜 응집되는 것일까. 숙주 세포가 죽거나 또는 병원체가 죽어서 만들어지는 분자 쓰레기들은 공통적으로 3차원 구조가 변성돼 분자 간 상호 결합력이 증가한다. 이온결합, 수소결합, 소수성 결합 등 분자 간 상호 결합은 많은 종류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건강한 분자는 태생 단계부터 에너지와 효소를 사용해 소수 부위(물에 잘 안 녹는 아미노산)가 분자의 표면에 노출되지 않고, 개별 분자 속 깊숙이 들어가도록 안정한, 물에 잘 녹는 구조를 만든다. 이들이 염증을 일으키는 분자 쓰레기로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인식되는지 다음 호에서 보기로 한다.
<저자 소개>

[성승용의 면역학 강의] 염증의 시작
성승용

몸속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 논문으로 주목받고 있는 면역학 전문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3년간 교환교수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재임 중이며, 아토피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인 샤페론의 대표이사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