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하여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기 위한 단백질 생산량을 높이면 세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세포들은 이에 대응해 단백질분해 기전을 시동하고, 세포 내 쌓인 분자 쓰레기를 잡아먹는 자가포식 기전을 최대로 가동한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하여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기 위한 단백질 생산량을 높이면 세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세포들은 이에 대응해 단백질분해 기전을 시동하고, 세포 내 쌓인 분자 쓰레기를 잡아먹는 자가포식 기전을 최대로 가동한다.
지난 호에서 면역반응을 최초로 시동하는 물질은 분자 쓰레기이며, 이들은 공통적인 패턴을 만든다고 했다.

분자 쓰레기 처리 시스템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안정적인 분자의 3차원적 구조가 소실되면, 분자 구조의 안 속 깊숙이 가려져 있던 소수성 부분이 분자의 겉으로 노출된다. 하나의 단백질 분자 안에서 소수성 아미노산끼리 서로 잡아당겨 안정한 3차 구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표면에 노출된 소수성 분자는 주변 미세환경에 있는 소수성 분자를 잡아당겨 결합한다. 이 반응이 여러 분자 간에 반복되어 일어나면 커다란 응집체가 된다.

단백질뿐만 아니라 지질 고분자나 탄수화물 고분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숙주의 생체 분자 쓰레기나 세균이 죽어서 만드는 분자 쓰레기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변성된 분자들을 방치하면 응집체가 눈덩이처럼 커져 조직의 항상성을 저해하니 생명체의 진화 단계에서 이 응집체들을 조기에 빨리 인지하고 제거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초기 생명체들은 외부 환경에서 나를 공격하는 non-self보다는 자신의 분자쓰레기 응집체가 더욱 문제였기에, 생명 단위체 안의 생활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시스템을 잘 만든 개체만이 지속적인 자기 복제와 진화가 가능했다. 이들이 보다 더 고도로 진화되면서 외부 원인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전쟁 쓰레기를 처리하는 추가적인 시스템을 진화시켰다.

이러한 태초의 흔적은 면역 시스템이라는 고도로 진화된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된다. 거듭 되는 진화를 통하여 전쟁 쓰레기를 만드는 원인이 환경에서 유래된 non-self이면 이 non-self를 기억하고 있다가, 추후 이 non-self가 생체에 다시 침입하자마자 이들을 제거한다. 이렇게 조직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해로운 non-self를 기억하는 후천면역계가 쓰레기를 탐지하고 청소하는 선천면역계의 어깨 위에 자리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병원체가 살아남는 법
고등 생명체에 병원성 세균이 침입하면 영양분을 갈취하거나 또는 독소를 분비하여 숙주의 세포가 죽는다. 당연히 죽은 세포에서는 전쟁 쓰레기와 위험 신호가 대량 방출되어 면역반응을 시동한다. 매칭거 박사의 위험 신호 이론에 잘 부합된다.

병원성 세균들은 숙주의 호흡기, 요도 및 장관 등의 점막에 잘 정착하기 위하여 표면이 끈적이도록 진화했다. 숙주의 점막세포 표면에 잘 붙지 못하면 재채기, 콧물, 눈물, 배변, 배뇨 등에 의하여 쉽게 씻겨 나가기 때문에 세균의 생존에 불리하다. 따라서 많은 세균은 표면이 상대적으로 끈적이게 진화했다. 이 끈적한 표면은 위에서 언급한 분자 쓰레기의 공통 패턴이다.

그렇다 보니 영리한 병원체는 끈적임을 가리고자 표면에 협막을 만들어 더욱 고약한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제인웨이 박사의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 이론에 부합한다. 이러한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을 인식하는 숙주의 혈액 내 단백들은 병원체를 직접 살해한다.

죽은 병원체에서 나오는 분자 쓰레기나 죽은 숙주 세포에서 유리되는 분자 쓰레기도 모두 끈적한 표면을 갖고 있어서 동일한 숙주 시스템이 같은 기전으로 청소한다. 한정된 생명체의 자원으로 온갖 종류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수십억 년 진화 단계에서 선택한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체내 면역 시스템은 어떻게 발동할까
바이러스는 어떨까. 수많은 연구 결과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하여 세포 안에서 갑자기 늘어난 생활 쓰레기가 가장 초등단계의 세포질 내 선천면역 기전을 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강한 생명체의 세포는 항상 일정한 양의 분자를 생산하고 일정한 양의 생활 쓰레기를 조용히 청소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감염되면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자들의 생산요구가 갑자기 증가한다. 세포의 불량률이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생기는 불량 분자들은 곧 생활 쓰레기의 상시 처리 용량을 넘게 되고, 세포 스스로가 처리할 수 없으면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세포들은 자살(아폽토시스)을 일으킨다.

그러나 생활 쓰레기양이 증가한다고 바로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우선 생존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무엇보다도 단백질 분해 기전(UPS·Ubiquitn-Proteasomal System)을 시동하여 생활 쓰레기를 잘게 부수는 업무를 증가시키고, 세포 내 쌓인 분자 쓰레기를 잡아먹는 자가포식(오토파지) 기전을 최대로 가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가 공장을 점령하여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기 위한 단백질 생산량을 높이면 세포 안의 생활 쓰레기양은 점점 늘어 세포는 스트레스(ER stress)를 받게 된다. 한계에 달하면 세포는 단백질 공장의 주요 전력들을 차단해 모든 단백질 생산을 중단시킨다(EIF2α 억제).

또한 세포들은 자살하기 전에 이러한 스트레스와 곧 이어질 자살을 예고하면서 IFN과 같은 분자를 분비하여 자기주변의 조직내 경찰관들(면역세포)에게 스스로가 위험에 처했음을 알린다.

IFN을 분비하는 세포 주변으로 경찰력이 동원됨과 동시에 자살한 세포 밖으로 뛰쳐나온 바이러스가 인접한 세포를 2차 감염시키면서 점차 국소 전장은 확대된다. 위에서 언급한 아폽토시스, 오토파지, UPS, ER stress, EIF2α 억제 등은 바이러스감염증 없이 알츠하이머병의 타우 단백질에 의해서도 시동되며, 인위적으로 약제를 사용하여 단백질의 생산량을 늘려도 관찰되는 현상들이다.

더군다나 이중가닥 RNA(dsRNA)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된다. dsRNA는 유전자 복제에 필수적인 중간 대사체일 뿐이지 바이러스에만 존재하는 non-self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세포 안에는 일부 생리적 상황이나 병적인 상황에서 많은 종류의 RNA-단백 응집체(RNP)가 관찰된다. 이들 RNP 중에는 특히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세포 안에 축적되어 바이러스 감염 시와 동일하게 선천면역계를 시동한다.

mRNA가 약으로 쓰이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바꾸어놓은 인류 문명사 중에서 특히 mRNA 약을 위한 영하 80의 콜드 체인은 신약 개발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RNA를 바로 약으로 쓰기에 이들은 선천면역계를 활성화하여 염증을 일으킨다. DAMPs 모델에 의한 RNA의 면역활성화 기전 연구와 염증을 유발하지 않는 RNA 제형 연구는 많은 mRNA 신약의 개발시간을 단축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소개>

[성승용의 면역학 강의] 염증의 시작, 그 두 번째 이야기
성승용

몸속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 논문으로 주목받고 있는 면역학 전문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3년간 교환교수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재임 중이며, 아토피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인 샤페론의 대표이사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