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진단키트가 집으로 들어온다. 미국, 유럽에선 일반인이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진단키트를 구매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국내에서도 자가진단키트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진단 기업들이 자가진단키트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자가진단키트는 사용자 개인이 스스로 검체를 채취해 코로나19 등 전염병의 감염 여부나 호르몬 균형 정도를 검사하는 제품이다.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임신진단기도 자가진단키트다. 주로 항원 진단 방식이 자가진단에 쓰인다. 분자진단 제품과 달리 별도의 검사장비 없이도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월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코로나19 대상 일반인 사용 진단시약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가진단을 불허해왔던 방침을 바꾼 것이다.

여러 번 검사해 낮은 민감도 극복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을 가리는 데 쓰는 검사법은 유전자증폭(PCR) 방식이다. PCR 방식은 의료진이 비강에서 채취한 검체를 시약 속에 넣은 뒤 바이러스 유전자를 증폭시켜 검사하는 방식이다. 별도 실험장비가 필요하지만 민감도가 99% 이상이다. 한국은 PCR 검사를 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충분하다. 검사 후 하루만 기다리면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15분이면 결과가 나오지만 민감도가 90% 내외인 항원·항체진단 방식을 쓸 만한 유인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 면역진단 방식은 코로나19 초기 감염자를 잡아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항원진단은 검체에 바이러스 수가 적은 상황에선 감염자를 가려내지 못한다. 반면 PCR 방식은 항원진단 대비 1000분의 1 미만으로 바이러스 수가 적어도 진단이 가능하다. 항체진단은 감염 이후 3~7일이 지나야 양성 판정이 가능하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응해 우리 몸에서 항체가 형성됐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어서다. 항체가 충분히 형성되기 전엔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음성이 나오는 ‘위음성’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방역당국이 항원·항체진단 방식 도입에 신중했던 이유다. 여기에 자가진단키트는 일반인이 사용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품질이 유지돼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최근엔 자가진단키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종적으로 PCR 검사를 거치더라도 보조 차원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하면 방역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선 선별진료소에 방문할 필요가 없이 감염 의심자가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키트를 구매해 검사하면 되니 확진자의 조기 선별이 쉬워진다. 민감도가 낮다는 한계는 키트를 2회 이상 반복 사용하는 것으로 보완한다. 유흥업소 등 사람이 밀집된 공간에서 사용하도록 하면 지역 감염을 막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미국은 10달러로 자가진단
미국은 이미 자가진단키트가 보급돼 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퀘스트다이애그노스틱스, 에토스래보래터리스 등 수십 개 회사가 실시간 유전자증폭(RT-PCR) 방식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잇따라 긴급사용(EUA)을 받았다. 이들 제품은 엄밀한 의미의 자가진단키트는 아니었다. 감염 의심자가 검체를 채취한 뒤 이를 우편 등으로 병원 등 검사기관에 보내면 앱으로 검사 결과를 받는 방식이어서다.

그다음 달 미국 루시라헬스는 검사도 가정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제품으로 EUA를 획득했다. 콧속에서 면봉으로 채취한 검체를 소형 분자진단 검사기기에 넣고 휘저으면 30분 뒤 양성 또는 양·음성 여부를 알 수 있다. 다만 이 제품은 구입 전에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아야 한다는 점과 50달러에 달하는 비싼 가격이 부담이었다.

12월이 되자 FDA는 항원 자가진단키트에도 EUA를 내주기 시작했다. 예컨대 호주 제약사 엘룸이 개발한 자가진단키트는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30달러면 구매 가능한 항원진단키트다. 엘룸은 스마트폰과 연동해 15분이면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검사 결과는 보건당국으로 즉각 전송되므로 확진자 현황 파악도 가능하다.

이후 미국 기업인 퀴델, 애보트에서도 항원 자가진단키트를 출시했다. 가격은 10달러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FDA는 첫 사용 후 24~36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들 제품으로 두 번째 검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검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항체에서도 자가진단 제품이 나왔다. FDA는 지난 5일 미국 심바이오티카의 항체 자가진단키트에 대해 EUA를 내줬다. 하지만 이 키트는 검체를 검사시설에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방식이다.
유럽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항원진단 제품을 위주로 자가진단을 허용하는 추세다.

타액, 손끝 혈액 쓰는 자가진단키트 개발
국내 기업들도 항원진단 위주로 자가진단키트 개발에 꾸준히 공을 들여왔다. 허가 절차가 까다로운 미국보다는 유럽 시장이 타깃이다.

피씨엘은 지난해 4분기 약국에서 구매해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항원진단키트를 유럽에 출시했다. 타액(침)을 이용해 10분이면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음성 또는 양성 여부를 임신진단기처럼 생긴 검사기기에 그어지는 선의 개수로 구분한다. 지난 1월엔 오스트리아에서 항체진단키트를 자가진단 품목으로 등록했다.

휴마시스도 지난 3월 초 체코에서 항원진단키트로 자가사용 인증을 획득했다. 셀트리온과 휴마시스가 함께 개발한 이 제품은 콧속에서 도말한 검체를 이용한다. EDGC도 지난 3월 콧물, 가래를 이용한 항원 자가진단키트를 체코에 수출했다. SD바이오센서는 비강에서 채취하는 항원 자가진단키트를 유럽에 수출 중이다. 타액으로 검사하는 제품은 개발을 마친 상태다.

미코바이오메드는 일본 현지 유통업체를 통해 자가진단용 제품을 항원·항체 방식 모두에서 판매하고 있다. 타액으로 검사하는 항원 자가진단키트는 개발 중이다.

수젠텍은 스마트폰 앱과 연동한 자가진단키트를 개발했다. 동일한 검사기기에서 스트랩만 갈아끼우면 항원·항체 검사를 모두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이미 호르몬 검사 용도로 스마트폰과 연계한 면역진단기기 플랫폼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손미진 수젠텍 대표는 “자가진단용 제품도 검사 결과를 보건당국이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모바일 연동을 요구하는 게 요즘 추세”라며 “올 하반기가 되면 자가진단 방식 제품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분자진단 방식으로 자가진단키트를 개발하는 기업도 있다. 원드롭은 30분 안에 집에서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자가진단키트를 올 상반기 중 출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요구하는 자가진단키트 임상 기준보다 더 많은 표본을 요구하고 있다”며 “확진자 수가 많지 않은 편인 국내에서 정부의 별도 지원이 없다면 임상 진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커스] 유럽 자가진단 시장 공략하던 진단 기업들, 내수길 열릴까
미국 루시라헬스가 만든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가진단키트가 긴급사용승인(EUA)을 획득했다.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점과 50달러에 달하는 비싼 가격이 단점으로 꼽힌다.
[포커스] 유럽 자가진단 시장 공략하던 진단 기업들, 내수길 열릴까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30달러면 구매 가능한 호주 엘룸의 항원진단키트.
[포커스] 유럽 자가진단 시장 공략하던 진단 기업들, 내수길 열릴까
체코에서 항원진단키트로 자가사용 인증을 획득한 휴마시스의 제품. 셀트리온과 휴마시스가 함께 개발했다.
[포커스] 유럽 자가진단 시장 공략하던 진단 기업들, 내수길 열릴까
EDGC가 체코에 수출한 항원 자가진단키트로 진단에 콧물과 가래를 이용한다.
(사진 : 각 사)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