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7일 자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암 치료 분야의 선구자들’이 라는 특집에서 프로탁을 다뤘다. 프로탁이라 불리는 소분자 약물은 질병 관련 표적단백질에 단백질 분해 유도효소를 가까이 붙여 특정 질병 단백질을 분해하는 새로운 약물작용 원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승인된 약의 표적 단백질은 400여 종에 이른다. 그러나 사람의 질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단백질은 3000여 종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현재 알려진 기술로는 대부분 질환의 단백질 기능을 제어하는 약을 개발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약물은 질환을 일으키는 단백질과 결합해 해당 단백질의 기능을 제어해 약효가 나타난다. 질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단백질의 기능을 제어하기 어렵다면 다음 방법으로 그 질병 단백질을 분해시켜 제거하여 버리면 어떨까. 질환을 제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방법의 이미지를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도록 같은 해 <네이처 화학생물학>에서 E3 효소와 표적단백질이 결합한 3차원 구조를 실었다. 프로탁의 ‘연결’로 E3 효소와 표적단백질 BRD4가 마치 입맞춤하는 듯한 구조로 마주하고 있어 ‘죽음의 키스’라는 멋진 표현으로 부른다.
2015년 저분자 프로탁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이후 프로탁은 단백질 키나아제 억제제와 단클론 항체에 비견되는 주류 약물군이 될 잠 재력이 있다고 주목받았다. 신기술인 프로탁을 주도하는 회사는 현재 4개로 모두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프로탁 분야에서 가장 먼저 상장에 성공한 아비나스(2018년 9월 26일 상장), 2020년 7월 24일에 상장한 누릭스 테라퓨틱스, 8월 20일 상장한 카이메라 테라퓨틱스, 10월 2일 상장한 C4 테라퓨틱스다.
◆아비나스
프로탁 분야 성공 가능성의 잣대가 된 프로탁 전문 기업 최초 나스닥 상장사
프로탁에 대한 첫 콘셉트는 미국 예일대의 크레이그 크루 교수팀이 2001년 <미국국립 과학원회보(PNAS)>에 제안했다. 그러나 초기 프로탁은 저분자 화합물이 아닌 펩타이드 구조를 갖고 있어 세포 내부에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후 2012년, 크루즈 교수 팀은 VHL이라는 E3 유비퀴틴 리가아제에 결합하는 신규 저분자 화합물(VHL 바인더) 합성에 성공하고 이를 특허출원(국제출원번 호 PCT/US2013/021136)했다.
이후 크루즈 교수팀이 창업한 아비나스는 프로탁 전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018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으며, 전이성 전립선암 (ARV-110) 및 유방암(ARV-471)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2019년 시작했다. 선두주자 파이프라인의 임상 결과는 프로탁 분야 성공 가능성의 잣대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프로탁 분야의 선두주자 아비나스가 파이프라인 2개의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12월 14일 금요일 종가 29.93달러(3만4000원)보다 지난 4월 1일 현재 65.8달러(7만4200원)로 2배 넘게 올랐다. 현재 기업가치는 약 32억 달러(3조6300억 원)다.
안드로겐 수용체 분해제인 ARV-110은 전립선암 치료제다. 기존에 다수의 다른 치료를 받았으나 반응이 없었던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1·2상을 진행했다. ARV-110은 특정 AR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5명 중 2명에서 PSA(전립선암 바이오마커) 수준이 50% 감소했다.
AR 돌연변이가 없는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있었는데, 15명 중 2명에게서 PSA 수준이 50% 감소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용량 확장 2상을 2020년 10월에 개시했다. A R T878 또는 H875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 100 명이 대상인데, 중간 결과는 2021년 하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기존 표준치료와의 병용 1b상도 진행 중이다.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 ARV-471은 유방 암 치료제다. 이전에 다수의 다른 치료를 받고도 치료 효과를 보지 못했던 어려운 환자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했다. ER 양성·HER 음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12명 중 5명에게 암 억제 효과가 있었는데(CBR 42%), 그중 1명은 암이 충분히 줄어든 반응자 (responder)로 확인됐고, 2명은 확인 중이다.
1차 치료제인 화이자의 입랜스(성분명 팔보 시클립) 병용 임상 1b상은 올해 말에, 용량 확장 2상은 내년 1분기에 개시할 예정이다. 임상 중인 ARV-110과 ARV-471 둘 다 안전성과 내약성이 좋았다.
◆누릭스 테라퓨틱스
리가아제 억제 포트폴리오 보유,
특정 단백질 양 늘리거나 분해하는 양방향 접근법이 강점
2009년 설립한 누릭스 테라퓨틱스(이하 누릭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누릭스는 109개의 물 질이 담긴 ‘DNA-Encoded Libraries’를 스크리닝해 E3 리가아제에 붙는 물질(바인더)을 찾았다. 이 플랫폼 기술이 ‘델리가아제(DELigase)’다. 누릭스는 길리어드, 사노피와 델리가아제을 이용해 단백질 분해약물을 발굴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누릭스의 특징은 ‘NX-1607’과 ‘DeTIL-0255’라는 코드를 붙인 ‘리가아제 억제 포트폴리오(Ligase Inhibition Portfolio)’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E3 리가아제 저해제로 특정 단백질 양을 늘리거나 반대로 바인더를 매개로 특정 단백질을 분해하는 양방향 접근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NX-1607의 타깃은 CBL-B(Casitas B-cell lymphoma)다. CBL-B 저해제는 종양미세 환경에서 T세포가 활성화되면 자연적으로 암을 공격해 제거한다. 면역항암제로서 NX-1607은 다른 면역관문 항암제와 달리 경구투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또 면역반응을 돕는 인터루킨-2(IL-2)의 분비가 늘어나는 재미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NX-2127’ 코드를 붙인 리드 제품인 경구용 BTK 분해제(B세포 혈액암 치료제)는 2021년 초에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할 계획이 다. NX-2127은 시판 중인 BTK 저해제와 작용 메커니즘이 다르면서 면역 활성 기전을 갖는 특성이 있다.
◆카이메라 테라퓨틱스
아비나스 이어 두 번째 임상 개시 예상
면역질환 및 암 타깃 제품 개발
2017년 미국 벤처캐피털인 아틀라스 벤처가 주도해 설립한 카이메라 테라퓨틱스(이하 카이메라)는 아비나스와 누릭스에 이어 프로탁 기반으로 상장한 세 번째 회사다.
카이메라는 지난해 7월 사노피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1억5000만 달러(1691억 원)를 포함해 최대 20억 달러(2조2546억 원) 규모다. 이번 계약으로 카이메라가 전임상 개발 중인 IRAK4 단백질 분해제(면역질환 치료제)를 양사가 공동개발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임상 1상에 진입할 예정이다.
기전을 보면 마이도좀(myddosome)은 IL-1 수용체(IL-1R)와 톨유사수용체(TLRs·Toll-like Receptors) 신호전달을 매개로 선천성 면역을 일으킨다. IRAK4는 TLRs와 IL-1R을 활성화해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IRAK4는 마이도좀 단백질 복합체를 구성하는 핵심 인자로, 선천성 면역작용을 매개하는 인산화 효소와 스캐폴드 기능이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IRAK4 단백질 분해가 카이네이즈 억제제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다. 면역을 일으키는 두 번째 제품의 타깃은 밝히지 않았다.
카이메라는 면역질환 및 암을 타깃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면역질환 타깃 IR AK4 분해제는 올해 상반기 IND를 제출할 예정이다.
암 타깃 IKR AK IMiD는 IR AK4 뿐 아니라 IRAK1, IRAK3 등 항암 타깃도 함께 분해한다. 올 하반기 IND를 제출할 예정이다. 전사 인자 STAT3 분해제도 혈액 및 고형암을 타깃으로 진행 중이다.
◆C4 테라퓨틱스
CRBN 결합 14개 바인더 특허 보유
앞으로의 행보 기대할 만해
2015년 설립된 C4 테라퓨틱스(이하 C4)는 카이메라와 같이 매사추세츠 워터타운에 있다. 지난해 10월 IPO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티커(Ticker)는 알파벳 C가 4개인 ‘CCCC’로, 굉장히 유머러스하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깃 단백질을 분해하는 TORPEDO(Target ORiented ProtEin Degrader Optimizer) 플랫폼 임상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기존 단백질 저해제와 비교해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TORPEDO 플랫폼은 이중결합 부위를 지닌 ‘바이닥(BiDAC)’과 분자 접착제 형태의 ‘모노닥(MonoDAC)’ 약물을 모두 개발한다. C4는 유일하게 임상에서 증명된 E3 리가아제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CRBN에 집중한다. C4는 CRBN에 결합하는 14개의 바인더에 대한 특허(IP)를 갖고 있어 C4의 행보가 기대된다.
가장 앞서는 프로그램은 CFT7455 코드를 가진 ‘MonoDAC’ 약물이다. 경구용 IKZF1, 3 분해제이며 혈액암 치료제(다발성 골수종, 말초 T세포림프종, 외투세포 림프종)로 개발 중이다. 지난해 1월 19일 FDA로부터 CFT 7455의 임상 1·2상을 승인받았다. CFT8634는 경구용 BRD9 분해제로서 고형암(synovial sarcoma and SMARCB1- deleted solid tumors) 치료제로 개발 중이 다. 올해 하반기에 IND를 제출하고 임상 1·2상을 개시할 예정이다.
그 외에 BRAF(V600E) 분해제는 BRAF(V600E) 돌연변이 관련 고형암 타깃이며 2022년 말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한다. RET 분해제는 RET 관련 고형암 타깃이며 2022년 말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한다.
프로탁 개발의 방향성은
프로탁은 어떤 표적이든 단백질을 제거해 버린다면 질병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 신약 개발의 폭을 넓힐 것인가?
답은 ‘그렇다’이다. 신약 개발의 폭이 넓어진 만큼 저분자 화합 물질이 약으로 갖는 다른 문제점도 넓혀졌다. 의약화학자들은 구강 복용 가능한 약물을 만들기 위해 ‘리핀스키 룰(Lipinski’s rule of five)’을 따른다. 이 규칙은 약과 관련한 데이터베이스인 WDI(World Drug Index)에서 2245개 화합물로부터 약물과 유사한 특징을 정리해 만들어졌다.
그 결과로 나타난 특징이 ①수소결합 공여자(donor)가 최대 5개여야 한다, ②수소결합 수여자(acceptor)가 10개 미만이어야 한다, ③분자량이 500달톤보다 적어야 한다, ④ CLogP, 즉 분배계수 값이 5 이하여야 한다 등이다. 리핀스키가 관찰한 2245개 화합물의 약 90%가 위의 범위에 포함되며, 용해도와 흡수도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탁으로 최초의 임상에 들어간 아비나스의 물질 ARV-110은 분자량이 1020달톤으로 리핀스키 룰을 벗어난다. 500달톤이라는 기준의 두 배에 달한다. 그래도 경구 복용이 가능한 프로탁이다. 그러기에 법칙을 깨뜨리며 약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프로탁은 촉매기능 덕분에 적은 용량으로도 높은 치료 효과를 내고 기존 치료제의 내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이 향후 프로탁 기반 신약 개발의 진전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다.
프로탁 개발에 글로벌 빅파마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임상 2상 내지 3상 등 상업화 가시권에 들어오면, CAR-T의 경우처럼 인수합병을 통한 파이프라인 인수도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미래는 ‘The End of Un-druggable’, 즉 ‘약품을 못 만들어내는 시대가 끝났다’일 것이다.
<저자 소개>
배진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8년 JW중외제약에서 연구총괄 전무를 지냈고 C&C신약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아브노바 연구소장과 한독 상임고문을 거쳐 현재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이자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신약 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Back to BASIC)>이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