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석 뉴지랩 대표 / 사진=김범준 기자
임재석 뉴지랩 대표 / 사진=김범준 기자
뉴지랩은 대사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대사항암제란 암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을 없애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항암제입니다. 암 치료 시장의 대세인 면역항암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치료제입니다.

대사항암제 연구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관련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고영희 박사가 연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뉴지랩의 미국 자회사 뉴지랩파마 미국법인 대표입니다. 뉴지랩은 한국에서 글로벌 임상 등의 과정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임재석 뉴지랩 사장은 “기존 항암제의 단점을 보완한 차세대 치료제인 대사항암제의 임상 1·2상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상반기 중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세대 항암제로 미국 임상 도전
뉴지랩의 주력 파이프라인은 대사항암제 ‘KAT’입니다. KAT를 알아보기 전에 항암제의 발전 단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항암제 개발은 사람을 죽이는 화학 무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만들었던 겨자 가스가 시초입니다. 겨자 냄새가 나는 가스에 노출돼 죽은 사람들의 백혈구가 감소했다는 점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죠. 이를 혈액암 치료에 사용했습니다. 이후 항암제는 1세대 화학항암제, 2세대 표적항암제, 3 세대 면역항암제를 거치며 발전해왔습니다.

1세대인 화학항암제는 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독성 물질을 넣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세포 안으로 들어가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멀쩡한 세포까지 공격해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세포 성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혈구세포들과 위장관, 골수, 신장 조직 등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기력을 잃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위장관, 신장 장애 등을 호소하는 원인입니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개발된 항암제가 2세대 표적 항암제입니다. 말 그대로 암세포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해 현재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상세포까지 공격했던 화학 항암제 부작용을 최소화한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몸속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된 경우엔 효과가 떨어집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겨 약 효과가 잘 듣지 않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내성과 부작용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게 3세대인 면역항암제입니다. 사람 몸속의 면역력을 키워 암을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의약품 중 하나인 MSD의 키트루다를 통해 보겠습니다. 키트루다는 면역세포인 T세포 표면에 있는 PD-1의 활동을 막습니다.

PD-1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암세포 표면에 있는 면역관문 PD-L1, PD-L2와 만나면 무서워집니다. PD-1은 이들과 만나 암세포를 막아야 할 T세포가 암세포를 그냥 지나치도록 만듭니다.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위장을 하는 겁니다.

키트루다는 PD-1의 활동을 억제, PD-L1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면역팀의 활동을 돕습니다. 위장을 시작하기 전에 막는 겁니다. 그러나 면역항암제가 모든 암에 효과가 있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장암 치료를 할 때 키트루다에 반응하는 바이오마커군은 ‘현미부수체 불안정형 환자군’입니다. 전체 대장암 환자의 14%에 불과하죠. 또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진 않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게 대사항암제입니다. 부작용, 내성, 낮은 반응률 등 기존 항암제의 단점을 보완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대사항암제는 거의 모든 암종에서 효과를 보입니다.
임 사장은 “KAT는 약 95%의 암 종류에 적용할 수 있다”며 “현재는 중국과 한국 등에서 환자가 많은 간암과 흑색종을 적응증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공급원 차단해 암세포 사멸
뉴지랩의 KAT는 세포 안으로 들어가 암세포의 영양 공급원을 차단합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산소가 없어도 에너지를 만들고 증식을 할 수 있습니다.

무산소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상세포와는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다른 반응’을 포착한다면 암세포를 없앨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우선 무산소로 에너지를 얻는 암세포의 대사작용은 독일 과학자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가 발견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바르부르크 효과’라고 부릅니다.

암세포가 무산소로 만드는 에너지는 전체의 60% 수준입니다. 반면 정상세포의 경우 95%가 산소를 흡수해 아데노신 3인산(ATP)을 만듭니다. ATP는 살아 있는 세포에서 에너지 저장소 역할을 하는 분자입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무산소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젖산을 많이 분비합니다. 이를 세포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통로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MCT입니다.

KAT는 젖산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가진 물질인 3-브로모피루베이트(3BP)로 구성돼 있습니다. 3BP가 젖산으로 위장해 MCT를 통해 암세포 안으로 들어갑니다. 3BP는 암세포 안 효소(핵소키나제 HK2)와 결합해 ATP의 생성을 차단합니다.

임 사장은 “젖산과 비슷한 분자구조로 구성된 KAT(물질명 3BP)가 젖산으로 위장해 MCT를 통해 암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암세포 안 미토콘드리아에 들어가 ATP 생성을 막는 등 대사 기능을 망가뜨리는 게 전임상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

KAT의 장점은 MCT가 있는 암에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전체 암 중 95% 정도가 해당합니다.

존스홉킨스 출신 고영희 박사가 주도
뉴지랩의 연구는 3BP를 직접 개발한 고 박사가 맡고 있습니다. 고 박사의 스승인 피터 피더슨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바르부르크 효과의 작용 기전을 입증한 이 분야 권위자입니다. 고 박사 역시 피더슨 교수와 연구를 하며 3BP를 개발했습니다. 고 박사가 미국의 한 연구실에서 개발하고 있던 KAT를 뉴지랩이 투자해 연구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겁니다.

(고 박사가 존스홉킨스대를 나올 당시 이 물질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있었지만 현재는 끝났습니다. 뉴지랩이 이 물질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확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 속도가 늦어지긴 했습니다.)

현재 전임상 중입니다. 임상 1상 전에 일부 환자에게 투약해 효과를 봤습니다. 별다른 치료 대안이 없는 환자에 대해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받아 임상을 해본 것이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간암 말기였던 미국의 16세 환자가 24개월간 생존했습니다. 흑색종에 걸린 78세 환자는 완치됐죠. 방광암과 폐암에 걸린 101세 환자 역시 2014년 투약해 현재까지 생존해 있습니다. 뉴지랩은 고 박사와 KAT에 투자하기 전 이들을 미국에서 직접 만나 약물의 효능을 확인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연락을 하며 이들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뉴지랩은 상반기 중에 FDA에 임상 1·2상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대사항암제는 미국 아지오스가 2017년 출시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아이드하이파밖에 없습니다. 또 글로벌 임상 1상 또는 2상에 돌입한 대사항암제는 12개입니다. 뉴지랩은 간암과 흑색종을 적응증으로 선택할 예정인데, 이를 개발하고는 회사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퍼스트 인 클래스(세 계 최초)’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선 하임바이오, 삼양바이오팜, 바이오케스트 등 여러 기업이 대사항암제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다만 임상 돌입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뉴지랩은 올 상반기 미국 임상에 들어간 뒤 초기 임상 환자의 결과를 받으면 중국 등에 기술수출할 예정입니다. 임 사장은 “간암 환자가 많은 중국에서 여러 업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뉴지랩은 FDA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임상 2상이 끝나면 곧바로 조건부 승인 신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먹는 코로나 치료제19 내년 출시
뉴지랩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은 코로나19 치료제입니다. 급성췌장염 치료제 및 혈액항응고제로 쓰이는 나파모스타트 성분을 용도 변경해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 중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승인이 불발된 종근당의 나파벨탄과 같은 성분입니다.

나파모스타트의 작용 기전에 대해서 간단히 보겠습니다. 코로나19는 바이러스 외막에 못처럼 생긴 돌기, 스파이크 단백질이 사람의 세포 수용체와 결합해 세포 속으로 침투하는 질병입니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단일 가닥의 리보핵산(RNA)과 단백질을 복제한 뒤 밖으로 나와 또 다른 세포를 공격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폐 손상 등이 발생한다.

치료제마다 작용 기전은 조금씩 다릅니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와 나파모스타트는 모두 바이러스가 세포와 결합하는 것을 돕는 단백질을 공격합니다.

렉키로나는 S1이 사람의 세포수용체(ACE2)와 만나지 못하거나 세포 내에서 막을 형성해 복제를 막는 형식입니다. 나파모스타트는 인체 세포에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TMPRSS2’를 억제합니다. ACE2가 코로나19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결합하는 단백질이라면 TMPRSS2는 코로나19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둘로 쪼개 침투를 용이하게 하는 단백질입니다.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로 스파이크 단백질이 바뀐 것인데 그럼에도 인체에 감염될 때는 공 통적으로 TMPRSS2 효소를 이용합니다. 다시 말해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단 얘깁니다.

다시 종근당의 나파벨탄으로 돌아가볼까요. 종근당은 임상 2상에서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을 했습니다. 환자군은 해열제·산소공급 등 코로나19 표준치료를 받는 환자(대조군·51명), 표준치료를 받으면서 나파벨탄을 10일간 투여한 환자(시험군, 53명)로 구분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증상이 개선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조군·시험군 모두 11일 정도 지나 임상적으로 증상이 호전됐죠. 또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양성에서 음성으로 전환되는 시간(바이러스 음전 소요시간)도 시험군·대조군 모두 약 4일이어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파벨탄을 투여한 환자든, 투여하지 않은 환자든 증상이나 바이러스가 개선되는 시간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식약처 검증자문단이 “1차 유효성 평가지표에서 시험군과 대조군이 차이를 나타내지 않아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뉴지랩은 중증 환자가 아닌 경증 환자 대상으로, 경구용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감기약처럼 확진자 모두가 먹는 형태라면 승산이 있다는 겁니다.

원래 먹는 약은 위산에 의해 분해될 수 있고 약물 전달력도 주사제보다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발 단계에서 주사제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나파벨탄은 반감기(약물 성분 분해속도)가 빨라서 24시간 수액을 맞는 형태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증 환자가 맞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뉴지랩은 안정성을 확인할 필요가 없어 임상 2상부터 시작한 종근당과 달리 임상 1상부터 진행 중입니다. 제형이 바뀌면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작년 12월 첫 환자 투약을 시작한 뉴지랩은 오늘 5월께 임상 1상 보고서를 받아듭니다. 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 1상에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임상 2상은 2분기 중에 돌입합니다.

임 사장은 “이 결과를 받아 곧바로 글로벌 임상에 돌입할 것”이라며 “내년 1~2월 정도면 임상 2상이 모두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타미플루(신종플루 경구치료제)처럼 먹는 약이 나와야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며 “효능 등을 고려할 때 먹는 약 연구는 우리가 가장 앞서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 습니다.

임상 2상을 위해 임상시험 대행기관(CRO) 프리미어리 서치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2018년과 지난해 미국 생명과학 분야 전문지인 <라이프 사이언스 리더>에서 수여하는 ‘CRO 리더십어워드’를 수상한 회사입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