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의 바이오 뷰] 주장(主張)과 인정(認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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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사고(思考)에 바탕한 언행 중 가장 적극적인 것이 주장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 결정을 상대방, 혹은 대중에게 알리고 내세우는 방법이며 그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것을 인정이라고 정의한다.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주장이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지만, 타인의 주장을 인정하는 데에는 철저하고 박한 인심의 잣대를 들이민다.
주장하는 내용과 형식은 분야에 따라 다양하므로 바이오 분야에 국한하여 기술해보자. 주장하는 목적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기존 학설에 반하는 주장, 중요한 만큼 책임 따라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도출한 데이터에 기반한 이론이나 가설에 새로운 데이터와 해석을 더해 완성도와 실용화 가능성이 더 높은 긍정적인 결론을 발표하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생성한 데이터로 다른 학파의 가설이나 이론을 부정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의 긍정적인 주장은 반대파로부터의 학문적인 공격이나 반격이 있을 수는 있으나 대체로 파장은 크지 않다. 기존의 학설을 보강하는 주장인 만큼 요구되는 데이터나 검증 과정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는 주장은 학계에 일으키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일단 그들의 결과를 부정하고 이론을 위협하는 새로운 가설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위상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새로운 주장은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혹독한 사회적(정서적)·과학적 검증 과정을 거친다. 간혹 부(副)과학적인 분야까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주장의 생존을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객관적이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부정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확고한 데이터다. 데이터나 근거 자료 없이 남의 것은 틀렸고 내 것이 맞다고 하는 것은 그저 부정을 위한 부정일 뿐이다.
반면 새로운 이론이나 결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자료가 있다면 새로운 주장은 기존의 가설을 ‘개선’, ‘수정’하는 긍정적인 행위로 인정된다. 기존 이론으로는 넘지 못하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학문적 개가로 받아들여져 새로운 이론을 추종하고 따르는 학파가 만들어지고, 후속 연구를 유도해 지속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적절성과 유효성, 과학적인 데이터가 갖춰야 할 조건
과학적인 데이터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적절성이다. 데이터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된 가설이나 모델이 적절해야 한다. 적절성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예로, 뇌암 치료법 개발을 위해 피부 밑에 암세포를 이식해 실험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뇌에는 암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뇌의 미세환경에만 존재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고 전신적으로 투여된 치료 물질이 도달하고 배출되는 경로가 다른 장기와는 완전이 다른 기관이다. 암이 자라고 진행되고 치료에 반응하는 기전이 피하(皮下)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적절하지 않은 모델을 이용해 도출된 결과에 기반한 주장이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을 과학적으로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두 번째는 유효성이다. 암의 전이 기전을 밝히고 전이 예방법을 개발해 암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풍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고 환자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전이는 진단 시에 이미 원발병터를 빠져나가 장기에 전이되어 있는 암세포들이다. 물론 전이에 관한 연구와 억제법의 개발은 전이를 이해하고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의의는 있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환자들의 생존에 관한 유의한 변수가 되기에는 유효성이 부족하다.
다음으로 주장을 인정하는 것에 관한 고찰이다.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 데이터나 자료에 근거한 자신의 과학적 신념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의도한 대로, 인정받고 싶은 만큼, 뜻이 관철될 때까지 노력하고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남의 주장을 인정할지 말지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타인의 주장을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한 필수 조건은
우선 내가 추구하고 따르는 방향과 같다면, 즉 도출된 데이터와 자료의 해석만으로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해 받아들일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 사람이 우리 편이기 때문’이라는 맹목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나에게 상대방의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데이터나 자료가 없더라도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고 믿는다’라는 입장 만으로 인정을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설과 기전을 제시하는 주장에 반대하려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주장을 부정할 수 있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확고한 데이터와 자료가 없다면 단지 우리 편의 주장이 아니라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음성(negative) 결과는 양성(positive) 결과만큼의 의미와 유의성이 있다. 즉 과학적으로 유의한 실패는 그저 사장(死藏)되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과학적 발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 겪는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또 다른 접근 방법과 시각을 제시해주는 길라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닌 정당하고 발전적인 결정이다.
반대로 새로운 주장을 인정해주는, 즉 나의 가설이 부정되고 학계의 연구 방향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마치 패자로 전락하는 허탈감과 함께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방에게 적개심과 복수심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계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존 법칙이나 이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것이 과학 발전의 기전이고 원동력이었다. 나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고 내가 정립한 이론이 맞지 않다고 밝혀지는 것에 자존심 상하거나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초기에 정립된 법칙이나 이론이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언젠가 에너지 보존 법칙이 깨져 고갈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무한 에너지를 만들거나 질량 불변의 법칙이 틀렸다는 결과가 발표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신이 세운 기존 이론이 새로운 주장에 의해 과학계에서 퇴출되거나, 자신의 새로운 주장이 인정되지 않는 패배는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승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짜릿하고 달콤한 경험이다. 과학이 발전하는 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승자나 패자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과학계에 존재하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 소개>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주장하는 내용과 형식은 분야에 따라 다양하므로 바이오 분야에 국한하여 기술해보자. 주장하는 목적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기존 학설에 반하는 주장, 중요한 만큼 책임 따라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도출한 데이터에 기반한 이론이나 가설에 새로운 데이터와 해석을 더해 완성도와 실용화 가능성이 더 높은 긍정적인 결론을 발표하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생성한 데이터로 다른 학파의 가설이나 이론을 부정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의 긍정적인 주장은 반대파로부터의 학문적인 공격이나 반격이 있을 수는 있으나 대체로 파장은 크지 않다. 기존의 학설을 보강하는 주장인 만큼 요구되는 데이터나 검증 과정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는 주장은 학계에 일으키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일단 그들의 결과를 부정하고 이론을 위협하는 새로운 가설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위상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새로운 주장은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혹독한 사회적(정서적)·과학적 검증 과정을 거친다. 간혹 부(副)과학적인 분야까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주장의 생존을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객관적이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부정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확고한 데이터다. 데이터나 근거 자료 없이 남의 것은 틀렸고 내 것이 맞다고 하는 것은 그저 부정을 위한 부정일 뿐이다.
반면 새로운 이론이나 결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자료가 있다면 새로운 주장은 기존의 가설을 ‘개선’, ‘수정’하는 긍정적인 행위로 인정된다. 기존 이론으로는 넘지 못하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학문적 개가로 받아들여져 새로운 이론을 추종하고 따르는 학파가 만들어지고, 후속 연구를 유도해 지속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적절성과 유효성, 과학적인 데이터가 갖춰야 할 조건
과학적인 데이터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적절성이다. 데이터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된 가설이나 모델이 적절해야 한다. 적절성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예로, 뇌암 치료법 개발을 위해 피부 밑에 암세포를 이식해 실험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뇌에는 암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뇌의 미세환경에만 존재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고 전신적으로 투여된 치료 물질이 도달하고 배출되는 경로가 다른 장기와는 완전이 다른 기관이다. 암이 자라고 진행되고 치료에 반응하는 기전이 피하(皮下)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적절하지 않은 모델을 이용해 도출된 결과에 기반한 주장이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을 과학적으로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두 번째는 유효성이다. 암의 전이 기전을 밝히고 전이 예방법을 개발해 암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풍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고 환자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전이는 진단 시에 이미 원발병터를 빠져나가 장기에 전이되어 있는 암세포들이다. 물론 전이에 관한 연구와 억제법의 개발은 전이를 이해하고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의의는 있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환자들의 생존에 관한 유의한 변수가 되기에는 유효성이 부족하다.
다음으로 주장을 인정하는 것에 관한 고찰이다.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 데이터나 자료에 근거한 자신의 과학적 신념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의도한 대로, 인정받고 싶은 만큼, 뜻이 관철될 때까지 노력하고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남의 주장을 인정할지 말지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타인의 주장을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한 필수 조건은
우선 내가 추구하고 따르는 방향과 같다면, 즉 도출된 데이터와 자료의 해석만으로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해 받아들일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 사람이 우리 편이기 때문’이라는 맹목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나에게 상대방의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데이터나 자료가 없더라도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고 믿는다’라는 입장 만으로 인정을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설과 기전을 제시하는 주장에 반대하려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주장을 부정할 수 있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확고한 데이터와 자료가 없다면 단지 우리 편의 주장이 아니라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음성(negative) 결과는 양성(positive) 결과만큼의 의미와 유의성이 있다. 즉 과학적으로 유의한 실패는 그저 사장(死藏)되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과학적 발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 겪는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또 다른 접근 방법과 시각을 제시해주는 길라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닌 정당하고 발전적인 결정이다.
반대로 새로운 주장을 인정해주는, 즉 나의 가설이 부정되고 학계의 연구 방향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마치 패자로 전락하는 허탈감과 함께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방에게 적개심과 복수심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계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존 법칙이나 이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것이 과학 발전의 기전이고 원동력이었다. 나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고 내가 정립한 이론이 맞지 않다고 밝혀지는 것에 자존심 상하거나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초기에 정립된 법칙이나 이론이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언젠가 에너지 보존 법칙이 깨져 고갈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무한 에너지를 만들거나 질량 불변의 법칙이 틀렸다는 결과가 발표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신이 세운 기존 이론이 새로운 주장에 의해 과학계에서 퇴출되거나, 자신의 새로운 주장이 인정되지 않는 패배는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승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짜릿하고 달콤한 경험이다. 과학이 발전하는 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승자나 패자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과학계에 존재하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 소개>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