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섬유화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은 개발되지 못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섬유화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은 개발되지 못한 상황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Non Alcoholic Steato Hepatitis)은 알코올 섭취와 관계없이 고지방 위주의 식사와 운동 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에 의해 간에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비만이나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동맥경화 등 대사증후군 발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도한 지방이 간에 쌓이게 되면 간세포 활성산소가 많이 생성돼 간 조직에 서서히 염증이 발생한다.

바이러스성 간염이 감소하는 현재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간경화와 간암의 가장 중요한 원인질환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지방간과는 달리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간 내 염증 및 섬유화를 특징으로 한다.

한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비알코올성 지방간 인구는 2030년까지 1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미국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인구는 56% 증가해 총 2700만 명 정도가 예상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에서 2002년부터 간 이식 대기를 하고 있는 간암 환자 중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발생률이 2002년 2%였다가 2017년에는 18%로 15년간 아주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환자 5명 중 1명은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화(섬유화)를 앓고 간부전과 간암에 의해 사망한다. 단순 지방간에 비해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5.7배 높고, 간경화를 동반하면 사망 위험이 10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Cover Story - ANALYSIS]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의 미래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원인은?
지금까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발병기전에 대해 가장 많이 거론돼 온 가설은 ‘투 히트 가설’로 영국 뉴캐슬대의 올리버 제임스 교수와 크리스토퍼 데이 교수가 1998년에 주창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의 지방산 산화 감소와 지방 합성의 증가 등 다양한 원인 기전에 의해 간세포 내에 중성지방이 축적되는 것이 첫 번째 타격(first hit)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방 축적의 증가는 여러 가지 외부 자극(second hit)에 의한 간세포 손상의 위험을 높인다. 다만 왜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의 일부에서만 두 번째 타격인 외부 자극이 작용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으로 진행되는지는 현재 연구 중에 있다.

오랫동안 많은 제약회사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간 조직 내 지방 축적을 감소시키거나 염증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은 몇 가지 개발됐다.
하지만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진행을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제, 그중에서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환자의 장기적 예후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섬유화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은 개발되지 못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을 받은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제는 없다. 당뇨병 치료제와 비만 치료제, 고지혈증 치료제 가 의사 재량에 의해 오프라벨 형태로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기존 고혈압 또는 당뇨병 약제로 사용되던 약물의 재창출(drug repositioning)에 관한 연구들뿐 아니라 세포 내 신호전달체계의 조절 및 지질 대사의 변화를 통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을 치료하고자 하는 신약 개발의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를 위해 최근 개발 중인 약물요법은 작용기전에 따라 현재까지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Cover Story - ANALYSIS]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의 미래

첫 번째는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하고 새로운 지방 생성에 관련된 다양한 효소를 억제하거나 지방산의 미토콘드리아 이용을 개선하는 대사적 표적이다. 두 번째는 세포의 염증 및 세포 손상 표적이다. 염증을 일으키는 세포의 동원을 억제하거나 염증 신호를 차단하는 식이다. 산화 또는 소포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거나 간세포 사멸을 억제하는 방법도 쓰일 수 있다.

세 번째는 담즙산 장간 순환 및 신호전달을 조절하거나 장내미생물총(마이크로바이옴)을 변경하는 표적이다. 네 번째는 간 성상세포를 직접 표적으로 하거나 간에서 콜라겐 침착 감소 또는 섬유 분해를 향상시키는 항섬유증 표적이다.

하지만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약제의 개발은 더딘 상황이다. 이유는 지방간염의 병리기전이 복잡할 뿐 아니라 현재 임상연구를 하려면 환자들의 간조직을 직접 추출해서 병리소견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조직 검사는 임상연구 환자와 임상연구 시행 의사 모두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방법이다. 직접 간 내 병리 소견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지방 간염의 정도를 판단할 때 주관적 판단에 의한 영향을 피할 수가 없다는 문제점이 몇몇 임상연구에서 지적됐다. 따라서 임상연구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비침습적 영상의학 검사와 바이오마커에 대한 연구도 같이 진행 중이다.

현재 임상 2상과 3상을 진행 중인 약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 개가 있으며 수년 내에는 첫 신약 발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까지 특이적 치료제가 없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과 관련해 간 섬유화의 진행을 억제하고 결론적으로 간암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환자들 개개인에게 희망과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 소개>

[Cover Story - ANALYSIS]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의 미래
고은희

2014년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부교수를 거쳐 지난해 동 병원 교수로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대사질환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에 대한 논문을 여러 차례 유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