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平等)’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뜻하는 단어다. 사람은 사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지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차이점을 가지면서도 형평성의 원칙이 무너졌을 땐 너나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기회가 누군가에게 침해받았다거나 그 일로 인하여 차별을 당하는 것, 그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호소, 그런 갈등의 문제는 자주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끊임없이 부각되고 있는 기회와 평등의 문제는 앞으로도 풀어나가야 할 전 지구적인 숙제다.

더구나 코로나 시대를 겪게 되면서 벌어지는 인종 간의 혐오와 갈등,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무분별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더욱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계층이 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많아 더욱더 안타깝다. 바로 중증장애인들이 그렇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인 장애는 그들을 기회와 평등의 문제에 있어서 사각지대로 내몰아 방치되어 있게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장애인들의 기회와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인 노력에 대한 소재를 찾아보았다.
먼 거리에서 원격조종을 할 수 있는 ‘아바타 로봇’인 ‘오리히메(OriHime)’는 중증 장애인이 일할 권리를 실현하는 데 기술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Ory laborafory
먼 거리에서 원격조종을 할 수 있는 ‘아바타 로봇’인 ‘오리히메(OriHime)’는 중증 장애인이 일할 권리를 실현하는 데 기술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Ory laborafory
중증 장애인이 직접 조종하는 로봇이 서빙하는
로봇 카페 오픈

이번 칼럼의 소재는 그런 중증장애인들에게 기술을 접목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내용이다.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로봇 개발 분야에 있어서 선두권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소니의 질주하는 큐리오, 도요타의 뮤지컬 파트너 로봇, 그리고 혼다의 아시모 등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로봇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일본에서 이색적인 카페가 오픈을 예정하고 있어 화제를 모았다. 중증장애인들이 직접 조종하는 로봇이 서빙하는 로봇 카페가 오픈 소식을 알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오리(Ori)연구소가 개발한 ‘오리히메(OriHime)’는 중증 지체 장애, 난치병 환자, 해외 거주 등으로 인해 외출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제작된 로봇이다. 먼 거리에서 원격조종을 할 수 있는 ‘분신 로봇’, 즉 ‘아바타 로봇(Avatar Robot)’이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수년 전부터 몇 번의 팝업 카페 형태로 기술의 가능성을 검증하며 현재까지 이어져왔고, 오는 6월 도쿄에 ‘Avatar Cafe DAWN ver.β’로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도는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장애인들의 고용률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2020년 시행된 원격 근무 인력 서비스 ‘아바타 길드(AVATAR GUILD)’에서 시작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중증장애인이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훈련이 포함되어 있으며, 로봇을 활용한 재택근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가 지원되고 있다. 그렇게 아바타 로봇의 조종을 마스터한 사람들은 정식 오리히메 로봇 파일럿으로 원격 근무에 투입되는 프로세스로 이루어져 있다.
'아바타 로봇 카페'에서는 중증 장애인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로봇이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 Ory laboratory
'아바타 로봇 카페'에서는 중증 장애인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로봇이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 Ory laboratory
장애인들이 직업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다

이 혁신적인 카페는 장벽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일본 로봇 회사인 오리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인 요시후지 겐타로가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던 자신의 고군분투에서 로봇 아바타를 디자인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장애인들의 일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한 로봇 기술 개발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개발된 오리히메, 즉 아바타 로봇은 불리는 대로 120㎝의 키에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를 갖추고 있어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말하기’와 주문을 받을 수 있다. 아바타 로봇과 네트워크로 연결만 되어 있다면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침대에서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 접목되었다. 이런 기술 덕분에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들조차도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서 평등하게 받아들여지고 일할 수 있는 기본권을 갖게 하는 돌파구가 되는 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바타 로봇 카페의 운영은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환자 등 중증장애인이 원격으로 조종하는 아바타 로봇이 상주 운영하며 기술의 가능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바타 로봇이 주문을 받고, 고객의 음식과 음료를 가져오고, 질문이나 요청에도 응답하는 등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바타 로봇 카페는 중증장애인이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을 제공하고,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오리 연구소는 카페가 성공적으로 운영될 시에는 더 많은 지역으로 확장하여 카페를 운영할 계획이 있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아바타 로봇의 현실성을 보여주는 추가적인 사례로 이미 개발된 오리히메 아바타 로봇 중 하나는 몇 년 전에 ALS 진단을 받은 55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나가오카 다카노부에 의해 사용되며 관심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카노부는 병세가 악화되어 여행을 할 수 없었지만 오리히메 로봇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학생들을 축하할 수 있었다.

아바타 로봇 카페의 성공,
기술이 장애인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

미래지향적인 로봇 카페가 대외적으로 가시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대행사 ‘ADK CREATIVE ONE Tokyo’와 함께하면서 가능해졌다. 장애인을 사회와 연결하기 위해 ADK와 오리연구소가 합심하여 아바타 로봇 카페를 실체화시킨 것이다. 기술이 장애인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인 아바타 로봇 카페는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단점과 사회의 능동적인 구성원으로서의 격차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2021년 스파이크 아시아’ 이노베이션 부문 그랑프리뿐만 아니라 연이은 국제 광고제에서 상위권 수상으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오리연구소의 기술개발 과정과 시범 운영된 아바타 로봇 카페의 성공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따라가며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 속 시범 운영된 카페는 5대의 아바타 로봇 오리히메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고, 단일 프로젝트 하나로 500개 이상의 국내외 기사로 다뤄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3주 동안 참여한 5명 이상의 장애인 파일럿들이 시범 운영 후 다양한 기업들에 성공적으로 고용되는 고무적인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영상에는 바로 오리히메의 파일럿인 중증장애인이 직접 등장하여 인터뷰에 응해 진정성을 전달하고 오리히메가 가지는 특수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어 사회적인 공감대를 끌어내는 데 성공을 한 것이다.

국제 광고제 D&AD에서 심사를 맡았던 글로벌 대행사 터너 덕웍스의 CCO 사라 모펫은 이번 캠페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아바타 로봇 카페는 중증장애인에게 문자 그대로 유체이탈 경험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을 활용하고 이동성이 제한된 사람들을 위한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 그것은 나를 불편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선입견에 도전하게 했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공상과학 소설이 진정한 사실이 되고 인간의 몸을 초월한 성취감을 주는 삶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디지털 대행사 어니스트 디지털의 데 타파키 이사는 “이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라며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에 더욱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구글의 ‘알파고’ 프로젝트가 광고라는 영역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으로 수많은 국제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며 놀라움을 선사했듯이, 이제는 캠페인의 영향력으로 사회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모두의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현실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아바타 로봇인 오리히메의 특수성과 가능성이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면서 중증 장애인이 겪는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Ory laboratory
아바타 로봇인 오리히메의 특수성과 가능성이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면서 중증 장애인이 겪는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Ory laboratory
기술이 만드는 ‘함께 사는 가치’
한편 이런 기술개발의 이면에는 일본이라는 특수하고도 사회적인 전형성이 농후하게 비치는 CEO 요시후지의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더욱 이해된다. 그는 항상 고독감에 휩싸여 살았던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보다 뒤처진다는 열등감, 초조함, 무력감에 시달렸다. 뜻밖에도 로봇 개발이라는 재능을 확인한 요시후지는 몸이 불편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 따돌림 또는 병으로 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 가족의 병간호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이 기회를 얻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로 탄생한 것이 오리히메다. 그들이 자신의 분신으로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고독을 해소하고 밖으로 나올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요시후지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로봇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가치”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싶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필요한 사람이 있는 한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오리히메’ 개발을 통해 많은 사람과 만나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고독을 해소하는 답이다. 아바타 로봇은 그동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몸’인 셈이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어도 사람과 만나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고, 죽는 순간까지 인생을 구가할 수 있는, 그런 미래로 이어나가길 바란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성이라는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미디어 채널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요시후지는 “이 기술은 인력을 재분배하여 적임자가 더욱 원활한 방식으로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사회문제이기도 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로 인해 오리히메와 같은 노동자들에 대한 요구를 더 많은 사람이 충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바타 로봇 카페의 실험이 성공하고 아바타 로봇의 활용이 다른 카페나 다른 시장까지 확대된다면 장애인을 사회에 재통합하는 것은 물론 노동 인력 자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와 문화는 장애, 인종, 성별, 종교로 인해 능력 있는 근로자들조차 소외시키는 불평등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 로봇 카페는 기회와 평등에 있어서 작게나마 희망적인 신호를 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이 혁신적인 기술이 우리 일상에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삶을 영위하면서 누구도 차별 없는 기회를 가지게 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구성원으로 장애라는 선입견에 막혀서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실질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기술일 것이다. 기술의 진일보만큼 진정성 있는 기술이 더욱 많이 개발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리히메와 같은 로봇을 만드는 기술은 고립되기 쉬운 중증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동시에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오리히메와 같은 로봇을 만드는 기술은 고립되기 쉬운 중증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동시에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저자 소개>

권영국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일기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며 2001년 아트디렉터로 광고계에 입문한 20년 차 광고인이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코웨이, 정관장, 쎌바이오텍을 비롯해 국내외 유수 기업의 영상, 인쇄, 디지털 등 다양한 광고 마케팅을 수행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