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연제약 임직원의 눈과 귀는 충북 충주에 쏠려 있다. 모두 2900억 원을 들인 충주공장 1단계(바이오 부문) 공사가 6월에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유전자치료제와 세포치료제의 원료부터 완제까지 ‘원스톱’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내년 3월에는 2단계(케미컬 부문) 공사도 끝난다. 이연제약은 충주공장을 생산뿐 아니라 연구개발(R&D) 거점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유용환 이연제약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유용환 이연제약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기업경영에서 생산·제조 부문이 ‘찬밥신세’가 된 건 다국적 기업들이 글로벌 생산 시스템 재편에 나선 1990년대부터였다. 미국·유럽·일본의 주요 제조업체들은 제품설계, 디자인, 브랜드 관리 등의 기능만 본사에 남기고, 생산은 인건비가 싼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동유럽으로 밀어냈다. 패션, 전자, 화학, 자동차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제조실력이나 생산기술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데 대다수 기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을 회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만든 이연제약
오랜 기간 변방으로 내몰렸던 생산·제조가 최근 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되찾고 있다. 다른 기업의 주문을 받아 생산·제조를 대행해주는 전문업체들이 주인공이다. 반도체 분야의 TSMC가 대표적이다. TSMC는 애플, AMD, 엔비디아 등 여러 업체로부터 일감을 따내야 생존할 수 있는 ‘을’이지만, 압도적인 제조 경쟁력 덕분에 사실상 ‘갑’처럼 일한다.

이연제약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TSMC’를 꿈꾸는 제약사다. 회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공장’을 꼽을 정도다. 이연제약은 지난해 회사 매출(1300억 원)의 두 배가 넘는 2900억 원을 투입해 충주에 최신식 공장을 짓고 있다. 유전자치료제와 세포치료제를 만드는 바이오공장은 6월 중 준공되고, 케미컬공장은 내년 3월 준공된다.

이연제약은 충주공장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을 넘어 연구개발(R&D) 거점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신약 개발에 나선 바이오 벤처의 임상 시료를 생산하는 대가로 해당 물질에 대한 지분 또는 특허권을 공동 소유하거나 향후 상업생산 권리를 갖는 식이다.

충주 바이오공장 준공을 앞둔 지난 5월 말 서울 삼성동 이연제약 본사에서 유용환 대표(47)를 만났다. 유 대표는 부친 고(故) 유성락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 바통’을 이어받은 오너 2세다. 2016년부터 어머니 정순옥 회장과 함께 이연제약을 이끌고 있다. 유 대표는 “충주공장을 국내 유전자·세포 치료제의 ‘생산 허브’로 키우겠다”며 “국내 바이오 벤처들이 찾는 ‘플랫폼 기업’이 되는 게 이연제약의 목표”라고 말했다.

원료부터 완제까지 ‘원스톱’ 생산체제 갖춰

Q.올해 경영 목표는.
공격적으로 잡았다. 목표는 두 자릿수 성장이다.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300억 원과 41억 원이었다.) 하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다. 원료가격도 상승했고 인건비도 올랐다. 건강보험 약가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조영제의 경우 코로나19 여파로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다. 올 들어 나아지고 있지만, 두고 봐야 한다. 지금 이연제약의 상황은 ‘동 트기 직전의 깜깜한 상태’와 같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충주공장이 가동되면 이연제약에 ‘환한 빛’이 들 걸로 기대하고 있다.

Q.충주공장 1단계(바이오공장)가 이달 준공된다.
충주공장 건립 계획을 처음 공시한 시점이 2017년 8월이다. 2400억 원을 들여 바이오공장과 케미컬공장을 짓는다는 내용이었다. 부지 구입비를 뺀 공장건립 및 설비투자비만 따진 금액이다. 이후 개발계획이 변경돼 500억 원이 추가됐다. 투자비가 워낙 크다 보니 주변에서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연제약 임직원은 오히려 담담했다. 바이오업계 트렌드를 오랜 기간 지켜봤고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이다. (충주공장 건립비용은 2016년 당시 이연제약 매출 1218억 원의 두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연제약이 예상했던 대로 유전자치료제와 세포치료제 시장이 커지고 있다. 2단계인 케미컬공장은 내년 3월 준공된다.

Q.충주 바이오공장에선 어떤 치료제를 만드나.
유전자치료제와 세포치료제의 원료부터 완제까지 ‘원스톱’ 생산이 가능하다. 미생물 발효를 기반으로 하는 유전자치료제인 플라스미드DNA(pDNA), mRNA 등 유전자치료제와 다양한 세포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들어선다. 바이오의약품 원료를 유리병 4800만 개에 넣을 수 있는 완제 설비도 갖췄다. 처음에는 CMO 위주로 생산할 계획이지만, 시간이 흘러 바이오 벤처와 공동 보유한 유전자치료제들이 허가가 나면 이곳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Q.이연제약의 핵심사업은 바이오가 아닌 케미컬이었는데.
이연제약의 ‘바이오 경력’은 거의 20년에 육박한다. 헬릭스미스(옛 바이로메드)와 처음 R&D를 시작한 게 2002년이다. 이때부터 바이오 시장을 들여다봤다. R&D 트렌드와 생산을 꼼꼼히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 벤처들이 임상시료 생산을 맡길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시료 생산비는 전체 임상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연제약이 이걸 생산해주는 대가로 바이오 벤처가 보유한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지분 또는 특허권을 공동 소유하거나 향후 상업생산 권리를 갖게 되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바이오 벤처와 손잡고 신약 개발에 박차

Q.이런 모델이 해외에도 있나.
해외에도 생산 기반 R&D가 있는지 모르겠다. 해외 모델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생산 기반 R&D는 이연제약의 수십 년 경험을 토대로 만든 모델이다. 바이오 벤처는 큰돈 들이지 않고 신약후보물질의 임상시험을 할 수 있고 이연제약은 신약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할 수 있다. 신약 개발비용을 분담하고 이익도 나누는 방식이다. 현재 인트론바이오, 아이진, 엠디뮨, 뉴라클제네틱스 등 유망 바이오 벤처들과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충주공장이 문을 열면 더 많은 기업과 협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바이오치료제 시장 중 유전자·세포치료제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이연제약은 1980년대부터 미생물 발효기술과 생산설비를 갖고 있었다.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는 미생물 발효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mRNA와 pDNA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은 항체의약품이 바이오의 주류지만, 워낙 많은 국내외 바이오 업체가 뛰어든 탓에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정답은 명확했다. 유전자치료제는 항체의약품처럼 대규모 생산시설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희귀질환 치료제가 많아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상대적으로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Q.황반변성 치료제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나.
뉴라클제네틱스와 난치성 질환인 습성 노인성 황반변성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유전자치료제 전달물질인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기반 유전자치료제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뉴라클제네틱스에 지분 투자(100억 원)도 했다. 성공하면 이연제약이 이 치료제의 원료와 완제 생산권을 독점적으로 갖게 된다. 이 치료제는 내년 상반기 중 임상 1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Q.알츠하이머병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는데.
뉴라클사이언스와 알츠하이머 및 퇴행성 뇌질환을 타깃으로 항체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에 대해서도 지분투자(100억 원)를 했다. 공동개발 계약을 맺고 국내 판권도 확보했다. 이 후보물질에 대해선 올 하반기 임상시험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 밖에 네오진팜과 pDNA 유전자치료제로 간 섬유화 및 간경변증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유효성 평가 시료 생산 및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치료제는 내년 상반기에 임상시험 허가 신청을 추진할 계획이다.

Q.또 어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나.
인트론바이오와 ‘파지러스’란 이름의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박테리오파지가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 착안한 백신이다. 코로나19가 ‘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기에 개발하면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인트론바이오와 파지러스 개발 관련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이 밖에 아이진과는 mRNA 백신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엠디뮨과도 mRNA 백신과 치료제를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도 생산할 수 있다”

Q.화이자, 모더나 등 해외 mRNA 백신을 위탁생산할 계획도 있나.
다 열려 있다. 해외 백신이든, 국내 제약사가 개발하는 백신이든 조건만 맞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충주공장은 원료생산부터 완제까지 전공정을 다룰 수 있다. 완제 생산능력은 4800만 바이알에 달한다. 현재 mRNA 백신 위탁생산과 관련해 구체적인 얘기가 오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충주공장에 관심을 보이는 업체는 많다. mRNA 백신을 실질적으로 생산할 수 있고, 설비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Q.바이오 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지분투자나 인수합병(M&A)도 검토하나.
현재 M&A를 검토하는 곳은 없다. 바이오 기업은 지분 투자를 위해 항상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 자회사도 만들었다. 이연제약이 직접 바이오 기업 주식을 보유했다가 매도하면 시장에 ‘투자한 회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투자 전문 자회사가 매수·매도하면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시장 일각에선 이연제약이 과거 헬릭스미스 주식을 팔아 1100억 원을 거머쥔 걸 두고 ‘투자의 귀재’로 평가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연제약이 헬릭스미스와 공동 R&D를 하면서 500억 원 넘게 연구비로 썼고, 그 기간도 상당히 길었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 돈으로 그때 부동산을 샀으면 투자수익률은 훨씬 높았을 거다.

Q.CAR-T와 CAR-NK 관련 사업도 준비하나.
CAR-T와 CAR-NK 치료제는 사실상 치료 현장인 병원에서 ‘시술’하는 것에 가깝다. 제약사가 끼어들 공간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연제약은 원료에 주목했다. CAR-T와 CAR-NK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원료인 ‘바이러스벡터’를 생산할 계획이다. 바이러스벡터의 원료가 pDNA인데, 충주공장에서 pDNA를 생산한다. 쉽게 말하면 CAR-T의 기본이 되는 원료인 pDNA와 바이러스벡터를 이연제약이 만들겠다는 얘기다. pDNA는 직접 만들고, 바이러스벡터는 다른 기업들과 공동개발·생산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다.

건기식 진출…“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

Q.건강기능식품 분야에도 진출한다고 했다.
글로벌 천연물 원료 개발·공급업체인 독일 핀젤버그와 손잡고 2023년께 다양한 건기식을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3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천연물 소재를 이용해 피부손상 개선, 체지방 개선, 아토피 개선 효과가 있는 건기식을 만들고 있다. 핀젤버그로부터 해당 원료를 독점 공급받아 충주공장에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완제품을 만든 뒤 국내외 건기식 업체에 납품할 계획이다. 핀젤버그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다. 실제 제품개발과 동시에 미국과 유럽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순차적으로 제품군을 넓혀 건기식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Q.건기식 시장 경쟁이 치열한데 어떤 차별화 포인트를 갖고 있나.
핀젤버그 원료를 쓴다는 것 자체가 차별화 포인트다. 1875년 설립된 핀젤버그는 1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천연물 원료업체다. 100종이 넘는 식물을 다양한 형태로 가공·생산하고, 800종의 추출물 등을 50여 개국에 공급하고 있다. 핀젤버그의 원료는 전 세계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 원료를 건기식 분야에선 이연제약이 독점 공급받는 것이다. 건기식처럼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이런 차별화 포인트가 먹힐 것이다.

Q.이연제약 브랜드로 건기식 사업을 할 계획도 있나.
당장은 없다. 이연제약은 그동안 B2B사업만 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경험이 거의 없다. 이연의 목표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B2C를 잘하는 국내외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다. 일부 제품은 이연 브랜드로 낼 수도 있겠지만, 메인 비즈니스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4조 원 수준인 국내 건기식 시장이 5년 뒤에는 8조 원 정도로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Q.케미컬 분야는 어떻게 키울 계획인가.
현재 주력 사업분야인 원료의약품, 전문의약품, 조영제 분야를 강화할 계획이다. 원료의약품의 경우 유기합성과 발효기술을 기반으로 파이프라인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3월 충주 케미컬공장이 준공되면 cGMP(우수의약품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에 맞는 주사제와 내용고형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주사제를 생산할 때 가장 까다롭다는 동결건조 제형 생산기술도 확보한 상태다. 수요에 따라 각종 생산설비를 손쉽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설계한 것도 충주 케미컬공장의 특징이다. 이를 기반으로 일단 주사제 및 내용고형제에 대해 국내 CMO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중기적으로는 미국·유럽 제약사 제품을 대신 생산하는 글로벌 CMO사업에 나설 방침이다.
[기업대해부] 유용환 이연제약 대표 “지금은 ‘동 트기 전의 어둠’, 충주공장 가동되면 ‘환한 빛’ 들어올 것”
오상헌/이선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