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질병으로 알려져 있는 우울증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2000년 전으로, 치료의 대상으로 인정되고 약물이 개발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거의 역사부터 미래의 방향성을 두루 살펴봤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영국 등의 주도로 전례 없이 빠르게 개발된 백신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면역을 이끌고 있다. 백신 개발의 과학적 성과는 놀라웠지만, 인류의 피해는 컸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신체 건강과 별개로 정신 건강의 문제가 남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불안, 우울, 고독 등 정신적 위협도 유발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우울증을 뜻하는 ‘Blue’를 합친 ‘코로나 블루(Corona Blue)’란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이들은 물론, 방역과 치료의 최전선에 있었던 의료진도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었던 만큼 그 후유증도 심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울증 개념은 약 2000년 전에 등장했다. 당시 병의 실체를 몰랐던 고대인들은 이를 악마의 저주로 여겼다. 이것이 치료 가능한 신경정신질환으로 이해되기까지는 현대의학의 발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글에서는 로널드 듀먼 미국 예일대 교수의 우울증 연구 30년 발자취를 따라가며 치료의 현주소를 짚고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주요 우울장애)은 우울감 혹은 흥미 감소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급격한 체중 변화, 수면장애, 불안, 피로감, 의욕 상실, 부적절한 죄책감, 인지기능 저하, 자살 시도 등의 증상이 추가적으로 동반된다. 우울감 혹은 흥미 감소와 더불어 추가 증상 중 4가지 이상이 2주 넘게 지속되면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사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 불릴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자살에 이를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전 세계 우울증 환자는 3억 명(누적)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우울증 치료제에는 부작용, 치료효과 지연 등 많은 한계가 있다. 우울증 환자의 약 30%는 어떤 치료제로도 호전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제의 과거와 현재
우울증 치료제의 과거로서 우선 모노아민 이론(monoamine theory) 사례를 보자.
모노아민은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이다. 방향족고리와 아미노기가 2개의 탄소사슬(-CH2-CH2-)로 연결된 구조로 이뤄졌다. 모노아민계 항우울제는 가장 보편적인 우울증 치료제다.

그중에서도 1980~90년대 개발된 세로토닌계 2·3세대 항우울제는 부작용이 적어 지금까지도 가장 흔히 처방되고 있다. 모노아민계 항우울제는 감정조절에 관여하는 모노아민(세로토닌 또는 노르아드레날린)의 세포 내 흡수를 차단해 신경세포 활성을 촉진함으로써 우울감을 억제한다. 대표적으로 시탈로프람(셀렉사), 에시탈로프람(렉사프로), 플루옥세틴(프로작·사라팜) 등이 있다.

그러나 모노아민계 약물에는 수면장애, 불안, 두통을 비롯한 부작용과 약물 저항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최소 2~3주, 평균 두 달 이상의 장기치료에 의해서만 효과가 나타나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칠 위험도 크다.

듀먼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치료효과 지연이 신경줄기세포의 신경세포 분화 소요시간(2~4주)과 유사함에 착안했다. 이에 신경세포재생성(neurogenesis)과 항우울제 작용의 관계를 분석, 신경세포재생성을 억제하면 항우울제 효과도 억제됨을 발견했다. 신경세포재생성 기전이 모노아민계 항우울제 효과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세로토닌계 항우울증의 기전을 이해하긴 했지만, 치료지연의 단점을 극복하는 약효 발현 시간을 줄인 새로운 항우울제 개발을 꾸준히 시도했다.

1990년대 중반, 케타민의 효과 발견
케타민도 우울증 치료제 역사의 일각을 차지한다. 케타민은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일종인 NMDA(N-methyl-D-aspartate) 수용체의 길항제다. 정신신경계에 다양한 효과를 유발하며, 전신마취제로 잘 알려졌다. 케타민이 우울증 연구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이때부터 케타민을 마취 농도보다 적게 사용하면 동물모델에서 항우울증 효과가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 존 크리스털 예일대 교수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 9명을 대상으로 케타민 약물 투여 3일 만에 효과가 나타났음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후속 연구를 통해 케타민의 효과가 빠르게는 40분 안에도 나타나며, 한 번 투여로 7일까지 약효가 지속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필자가 듀먼 교수 연구실에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한 것이 이 무렵이다. 당시 듀먼 교수도 크리스털 교수와 함께 케타민의 빠른 약물효과 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합류 직후 필자는 케타민의 빠른 치료효과에 대한 가설을 제안했다. 시냅스에 존재하는 mRNA들을 바로 단백질로 전사하는 mTOR 신호전달경로에 의한 지역단백질 합성(local protein synthesis) 기전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논지였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동물모델의 전두엽에서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분리, 케타민에 의해 mTOR 단백질 활성 변화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이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돼 지금까지 2205회(6월 22일 현재) 인용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케타민은 2019년 3월 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비강 스프레이 형태로 우울증 치료제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치료 저항성이 큰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우울증 치료제의 미래
케타민의 주요 기전 중 하나는 전두엽에서 억제성 신경세포의 NMDA 수용체에 대한 길항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주변 흥분성 신경세포를 억제하는 기능이 완화되어 전두엽의 흥분성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이는 글루타메이트(흥분성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하여 환자의 전두엽 기능을 회복하고 우울감을 억제하는 원리다. 이를 통해 케타민은 우울증 치료 역사의 한 단계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케타민도 향정신성 약물로서 여전히 중독 및 여러 부작용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가까운 미래에는 다른 치료제들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케타민과 유사한 기전을 통하지만 부작용이 적은 NMDA 수용체 길항제, 전두엽의 흥분성 신경세포를 직접 조절하는 NMDA 수용체의 효현제, 다른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효현제 또는 조절인자(modulator) 등이 항우울제 신약 개발의 신규 타깃이 될 것이다.

우울증 치료제 개발은 여전히 많은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필자의 은사인 듀먼 교수는 연구자로서 평생을 걸고 이 과업을 위해 분투했지만, 안타깝게도 작년에 작고하셨다. 그분이 못다 이룬 꿈은 이제 후학들이 넘겨받을 차례다. 30년 넘게 우울증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전념하시며 후학 양성 및 치료제 개발에 큰 획을 그으신 듀먼 교수를 추모하며 글을 마친다.
<저자 소개>

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위원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위원. 정신질환에서의 당질화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IBS 캠퍼스 기초과학전공 부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