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는 세포의 분화, 증식 및 생존과 관련된 신호전달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GTP 효소 단백질이다. 여러 암종에서 자주 발생하는 종양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복잡한 경로이기는 하지만 세포를 증식시키는 가장 확실한 경로였기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제약업계에서 가장 주목했던 항암제 타깃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과학자들이 RAS 단백질을 겨냥해 신약 개발에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큰 진척이 없었다.

RAS가 약물이 되기까지
RAS 단백질에 관한 연구는 1964년 제니퍼 하르베이 박사가 백혈병 쥐(leukemic rat)로부터 레트로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에 RAS 종양유전자를 가진 세 개의 레트로 바이러스가 추가로 발견됐다.

1982년 채닝 더 박사는 “인간 RAS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암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고, 그후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옴에 따라 “인간은 매우 비슷한 RAS 단백질을 3개(KRAS·NRAS·HRAS)를 만들며, 이 단백질들은 세포 증식이 필요한 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RAS 단백질의 구체적인 경로가 밝혀지게 된 것은 1988년 RAS 단백질의 엑스레이 크리스털 구조가 처음으로 발표되면서부터다. RAS 단백질 변이에 의해 암세포가 분화되고 증식하려면 파르네실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기반해 많은 제약사들은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FTIs·Farnesyl Transferase Inhibitors) 개발에 몰두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많은 경우 RAS와 같은 키나제(인산화효소)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고에너지 분자인 ATP다. ATP는 키나제와 결합할 때 마이크로몰 친화력(micromolar affinity)을 가지기 때문에 마이크로 수준의 약물을 이용한 ATP-경쟁적 저해제 개발이 가능했다. 하지만 RAS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GTP는 RAS와 피코몰 친화력(picomolar affinity)을 가진다. 그만큼 결합력이 강하다. 이 때문에 GTP-경쟁적 저해제 개발은 녹록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던 중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케빈 쇼캇 교수는 KRAS G12C의 스위치(switch) II 근처에 있는 G12C의 시스테인 잔기와 공유결합 억제제가 결합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주머니를 발견했다. 약물이 안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낸 것이다. 이후 KRAS를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약물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노력의 결실로 KRAS G12C 억제제의 선두주자였던 암젠의 ‘소토라십(제품명 루마크리스)’은 지난 5월 2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았다.

로슈·MSD·사노피·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빅파마도 RAS 전쟁에 참전
RAS를 직접 표적화 방법 또는 간접 표적화 방법으로, 단독 또는 병용 요법 전략으로 저해할 다양한 약물이 개발되고 있으며, 최근 소토라십의 승인으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주요 딜을 보자면 작년 12월 글로벌 빅파마 로슈의 자회사인 제넨텍이 미국 바이오 벤처인 릴레이테라퓨틱스로부터 SHP2 억제제 ‘RLY-1971’을 계약금 7500만 달러, 단기적 성과금 2500만 달러에 도입했다. RLY-1971은 로슈가 보유한 KRAS G12C 억제제인 ‘GDC-6036’과 병용 투여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MSD는 일본 오츠카제약의 자회사 아스텍스파마슈티컬스, 다이호약품공업으로부터 KRAS를 표적하는 항암 후보물질의 독점 라이선스를 계약금 5000만 달러를 포함해 최대 25억 달러 규모로 기술도입했다.

기술이전 외에도 빅파마 간의 공동개발 소식도 들리고 있다. 미국 바이오텍 미라티테라퓨틱스의 KRAS G12C 억제제 ‘아다그라십’과 노바티스의 SHP2 억제제인 ‘TNO155’는 병용 임상 1·2상을 시작했다. 사노피와 레볼루션메디슨은 SHP2 억제제인 ‘RMC-4630’의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아락세스파마와 KRAS G12C 억제제 ‘ARS-3248’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NRAS·HRAS에 대한 연구·임상도 늘고 있어
RAS 타깃 파이프라인이나 빅파마들의 빅딜 현황만 봐도 대다수의 약물이 KRAS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AS 단백질 변이로 발생한 종양의 85%는 KRAS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RAS 단백질의 이소체인 NRAS와 HRAS 역시 항암 분야의 중요한 타깃이다. 이들이 원인인 암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췌장 선암(86%), 대장 선암(41%) 및 폐 선암(32%)의 많은 비율은 주로 KRAS 코돈 12의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나는 반면, 흑색종의 29% 및 급성 골수종 백혈병의 12%는 NRAS의 돌연변이에 의해 유발된다.

KRAS와 달리 NRAS는 주로 코돈 61에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HRAS 돌연변이는 KRAS나 NRAS의 돌연변이보다 발생 빈도가 낮지만, 일부 두경부 편평상피세포암(5%) 및 방광암(6%)이 HRAS 코돈 12 또는 61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NRAS는 KRAS와 구조적으로 많은 부분이 유사해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표적치료제 개발이 어렵다. 다수의 연구자들은 RAS를 직접 저해하지 않고 우회하는 전략으로, 단독 또는 병용 요법으로 전임상 실험 및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MEK 저해제인 비니메티닙(binimetinib)이 NRAS 유전자 변이 흑색종 환자들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고, MEK 저해제와 PI3K/mTOR 저해제 또는 CDK 4,6 저해제의 병용요법, 그리고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의 병용요법 등도 기대되고 있다.

HRAS는 번역 후 변형(post-translation modification) 과정에서 KRAS와 차이를 보였다.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는 초기에 KRAS를 타깃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바이오텍인 큐라온콜로지의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인 티피파닙(tipifarnib)은 HRAS 돌연변이 원종양 형성유전자(proto-oncogene)를 수반한 특정 두경부암 환자에 대해 미국 FDA의 혁신치료제(BTD·Breakthrough Designation) 지정을 받았다. 현재 각종 고형암 및 주변 T세포 림프종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NRAS와 HRAS는 KRAS에 비해 원인이 되는 암의 발생 빈도는 높지 않지만, 특정 암종에서 상당한 발생 빈도를 보이고 있다. 또 아직까지 허가받은 약물이 없어 의학적 미충족 욕구를 가진 타깃이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과 연구 개발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벨바라페닙, RAF 이합체 억제제로 NRAS·KRAS 변이 환자까지 효과 보여
한미약품은 RAS, RAF 타깃의 벨바라페닙을 개발해 2016년 제넨텍에 기술이전했다. 현재 제넨텍과 함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벨바라페닙을 단독으로 투여한 고형암 환자 1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1상 결과와 벨바라페닙의 내성 기전을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벨바라페닙은 RAS 간접 표적화 방법 중 하나인 MARK 경로를 차단하는 약물이다.

MARK 경로의 하위 시그널인 RAF 단백질을 억제해 신호전달을 막는다. RAF 단백질에는 세 종류(ARAF·BRAF·CRAF)가 있는데, 기존에 흑색종·대장암 환자에게 허가돼 사용되고 있는 베무라페닙, 다브라페닙, 엔코라페닙 등은 모두 BRAF(V600E/K) 억제제다. 세 RAF 단백질 중 BRAF에 의한 경로만을 차단한다. 이 때문에 두 개의 변이 BRAF가 결합하는 BRAF 이합체 변이(BRAF dimerization)나 비정형 변이(non-canonical)를 가진 환자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 KRAS, NRAS, HRAS 돌연변이의 경우에도 BRAF의 경로만을 억제하는 기존 약물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벨바라페닙이 이들과 다른 점은 BRAF와 CRAF 이합체 억제제라는 점이다. 즉 BRAF와 CRAF 등 두 가지 단백질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1세대 BRAF 억제제에 반응이 없던 환자들에게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임상 1상 결과 BRAF(V600E) 변이는 물론 기존에 치료 옵션이 없었던 KRAS, NRAS 변이 고형암 환자에게서도 우수한 항암 효과를 보였다. 안전성도 기존 약제와 유사했다.

벨바라페닙 투여 시 내성에 기여한다고 밝혀진 ARAF 유전자 돌연변이 역시 MARK 경로의 또 다른 하위 시그널인 MEK를 저해하는 약물과 병용투여 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벨바라페닙과 MEK 저해제인 ‘코비메티닙’을 병용투여한 임상 1b상 결과를 구연 발표했다. 그 결과 NRAS 변이 흑색종 환자 13명 중 5명은 부분반응(PR), 최대 전반적 종양반응률(BORR)은 38.5%를 기록하는 등 좋은 효과를 보였다.

KRAS G12C 억제제 ‘소토라십’이 FDA의 승인을 받아 40년간의 숙원인 KRAS의 약물 가능 개발성을 보여줬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KRAS 돌연변이 중 G12C가 차지하는 비율은 14% 정도이고, 비소세포폐암에서는 좋은 효과를 보였지만, 대장암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의학적 미충족 욕구를 가지고 있는 NRAS와 HRAS 돌연변이 암에서도 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 기존에는 표적화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RAS의 표적화 방법들이 현재 새롭게 논의되고 개발되고 있으며, RAS를 직·간접적으로 표적화하는 단독요법 또는 병용요법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KRAS G12C 돌연변이로 인한 암을 넘어 모든 RAS 기반 암을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선택적으로 약물 치료하는 RAS 표적 요법의 성장성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Issue - part.2] RAS 르네상스,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
로슈 자회사인 제넨텍은 미국 바이오 벤처인 릴레이 테라퓨틱스로부터 SHP2 억제제 ‘RLY-1971’을 도입했다.
[Issue - part.2] RAS 르네상스,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
MSD 아스텍스파마슈티컬스, 다이호약품공업으로부터 KRAS를 표적하는 항암 후보물질의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Issue - part.2] RAS 르네상스,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
사노피 레볼루션메디슨과 함께 SHP2 억제제인 ‘RMC-4630’의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Issue - part.2] RAS 르네상스,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
존슨앤드존슨 아락세스파마와 KRAS G12C 억제제 ‘ARS-3248’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Issue - part.2] RAS 르네상스,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
한미약품 RAS, RAF 타깃의 벨바라페닙을 제넨텍에 기술이전해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저자 소개>

노영수 한미약품 신약임상팀장
경희대 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미약품 신약임상팀에서 벨바라페닙 등 표적항암제 임상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제넨텍 등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수출 및 공동 임상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2020년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임상시험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