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에서 일상처럼 사용되는 의료 영상에는 치열한 수학적 고민이 담겨 있다. 영상의 노이즈를 제거하고 의료진이 좀 더 정확한 영상을 볼 수 있게 돕는 수학 원리를 짚었다.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평균수명 또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상진단 장비의 발전이 한몫을 했다. 1895년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이후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과 같은 최첨단의 영상진단 장비가 개발되었으며 이들은 질병의 조기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치료 성공률을 높였다. 그렇다면 수학은 진단기술의 발전에 어떠한 공헌을 했을까.

영상 복원과 수학
컴퓨터단층촬영은 인체 내부의 단면을 영상화하는 진단 장비다. 이는 인체를 회전하며 여러 각도에서 X선을 투과시켜 X선의 강도 변화를 측정한다. 가령 뼈와 같이 밀도 높은 물질을 투과하면 강도의 변화가 크며, 연성 조직을 투과할 경우 강도 변화가 작다. 이렇게 측정한 데이터로부터 인체 내부의 해부학적 정보(감쇠계수 분포)를 영상화한다.

단층 촬영 영상의 원리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1917년 오스트리아의 수학자 요한 라돈이었다. 라돈이 제시한 이론을 바탕으로 최초의 임상 컴퓨터단층촬영 장비가 1970년대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코맥과 영국의 공학자 고드프리 하운스필드에 의해 개발됐다.

또 다른 영상진단 방법인 자기공명영상에도 수학적 원리가 사용된다. 자기공명영상은 컴퓨터단층촬영과 달리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한다. 강한 자기장 위에 놓인 인체에 고주파를 가해 인체 내 수소 원자핵이 공명하면서 방출하는 주파수 신호를 측정한다. 이러한 주파수 신호로부터 수학적 연산 작업인 푸리에 변환을 이용하면 우리가 보고자 하는 인체 내 조직의 자기적 특성을 영상화할 수 있다. 푸리에 변환은 1800년대 초 프랑스 수학자 조셉 푸리에에 의해 처음 사용됐으며 자기공명영상뿐만 아니라 영상 처리, 컴퓨터 비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촬영 화질 개선을 위해 해결해야 할 수학적 이슈들
필자가 속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의료영상연구팀에서는 2013년부터 컴퓨터단층촬영을 포함한 의료 영상의 화질 개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컴퓨터단층촬영은 의료 기술 및 계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최초의 컴퓨터단층촬영은 단일 단면 영상을 촬영하는 데만 수십 분이 필요했으나 현재의 컴퓨터단층촬영은 인체 상반신을 촬영하는 데 수초면 충분하며 수분 내 픽셀 간격 0.2~0.4mm의 고해상도 3차원 단층 영상을 복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단층촬영이 임상에서 더욱 유용하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이슈들이 있다.

첫째는 금속물에 의한 영상 왜곡(distortion)이다. 인구가 노령화됨에 따라 인체 내 인공 고관절, 수술용 클립, 임플란트 등 다양한 금속물을 삽입한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금속물은 컴퓨터단층촬영 영상에서 원치 않는 인공물을 만들어 영상을 왜곡하고 진단을 방해한다. 그 이유는 금속물이 있을 경우 앞서 라돈이 제안한 복원 알고리즘의 가정(측정된 데이터가 라돈 변환의 상공간에 포함되어야 함)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금속 인공물을 보정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수학적인 분석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미소지역 분석(Microlocal analysis) 이론 중 웨이브프런트 집합(Wavefront set)을 이용해 금속 왜곡이 발생하는 현상을 최초로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분석하였으며, 금속 인공물을 수식으로 유도 후 공식화해 영상 내 왜곡을 제거하는 방식을 개발하였다.
둘째는 저선량(low-dose)에 의한 영상 왜곡이다. 컴퓨터단층촬영은 자기공명영상과 달리 방사선을 인체에 투과시켜 진단한다. 최근 과도한 방사선 피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면서 의료 방사선량을 점차 줄여 나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낮은 선량은 영상을 왜곡시켜 진단을 방해한다. 선량을 줄이는 방식은 크게 관전압 및 관전류를 줄이는 방식과 촬영 장수를 줄이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방식은 수학적으로 ‘변수의 개수가 방정식의 개수보다 많은 연립방정식’을 푸는 문제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식을 만족하는 해는 무수히 많다. 그렇다면 해는 어떻게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을까. 2004년경 미국의 수학자 테렌스 타오는 그의 동료 엠마누엘 칸데스, 데이비드 도노호와 함께 최적화를 통해 구하고자 하는 해의 희소성(sparsity) 조건을 이용하면 유일한 해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희소성 이론은 자기공명영상에서도 적용되어 촬영 시간을 줄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최근 의료영상 분야에서 영상 왜곡을 보정하기 위해 딥러닝을 접목하려는 연구들이 늘고 있다. 딥러닝 기술 중 하나인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은 왜곡이 없는 데이터의 확률분포를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학습된 신경망은 왜곡이 보정된 영상을 생성한다.

가령, 정상 선량으로 획득한 컴퓨터단층촬영 영상을 학습에 이용하면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 영상의 왜곡을 보정할 수 있다. 확률분포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확률분포 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거리 개념이 필요하다. 2017년 마틴 아조브스키는 수학적으로 잘 정의된 ‘와서스타인(Wasserstein) 거리’를 생성적 적대 신경망에 도입하여 학습 성능을 향상시켰다. 그 외에도 신경망의 성능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론적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의 수학의 역할
수학은 의료영상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미국 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의료 분야를 포함한 다수 분야에서 수학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속한 연구소에서도 병원, 의료 기업과의 융합 연구에 대한 수요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의학 및 공학과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수학이론과 실제 의료 현장 간 간극을 줄이고 엄밀한 검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수학의 활용성이 한층 더 확장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저자 소개>

박형석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의료영상연구팀장
연세대학교 계산과학공학과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같은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의료영상연구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컴퓨터단층촬영 영상 화질 개선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하고 있으며, 에쓰오일 우수학위논문상, 기술이전, 최상위 SCI저널 논문 게재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