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미토콘드리아의 기본적인 특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합성하는 ‘착한’ 미토콘드리아의 이면에는 인간의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ROS)를 만들어내는 모습 또한 공존한다. 생존과 노화 등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세계는 모순적이다.
미토콘드리아, 삶과 죽음의 성배
미토콘드리아는 실 모양을 뜻하는 ‘mitos’와 작은 알갱이를 의미하는 ‘chondrin’의 합성어다. 세포 내에 존재하는 ‘실 모양의 작은 알갱이’를 의미하는 말인 셈이다. 한자로는 사립체(絲粒體)로 번역돼 쓰이기도 한다.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근육세포에서는 이 미토콘드리아가 기다란 실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주변 상황에 따라 짧은 형태로 모양이 바뀌기도 한다. 세포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융합과 분절이 가역적으로 조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미토콘드리아의 ‘역동성(dynamics)’이라고 표현한다.
세포가 에너지를 합성하는 방법은 해당(glycolysis) 과정과 산화적 인산화(oxidative phosphorylation) 과정으로 나뉜다. 전자는 세포질에서, 후자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난다. 1개의 포도당을 분해해 2개의 ATP를 합성하는 해당 과정과 비교하면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하는 산화적 인산화는 32~38개의 ATP를 합성하므로 훨씬 효율적인 에너지 합성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세포는 효율적인 산화적 인산화를 선호해 내막 주름이 많이 있고 융합된 형태의 미토콘드리아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 증식이 빠르게 일어나는 줄기세포나 암세포는 에너지 공급을 주로 해당 과정에 의존한다. 그만큼 이러한 세포들은 미토콘드리아의 크기가 작고 내막의 크리스테 또한 적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산화적 인산화를 선호하는 세포들이 있는가 하면, 산소가 있더라도 빠른 증식을 위해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해당 과정을 더 선호하는 세포도 있다. 암세포는 해당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에 주변 세포보다 포도당 흡수율이 높다. 일부 연구자들은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손상돼 암 유발 대사물질(oncometabolite)이 축적되면서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는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실제 뇌종양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는 크리스테가 거의 없고 대사 기능이 망가져 있는 상태로 확인된다.
암세포라서 미토콘드리아를 안 쓰는 것인지, 아니면 미토콘드리아가 망가져서 암세포로 변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혈액암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표적화해 암세포를 죽이려는 대사항암제 연구개발이 증가하고 있는 배경이다.
줄기세포도 암세포처럼 빠르게 증식한다. 미토콘드리아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산소 조건에 잘 적응한다. 면역 세포의 경우엔 T세포 내에서도 역할이 다르면 미토콘드리아의 수와 형태가 달라진다. 효과 T세포는 해당 과정을 선호하는 반면 기억 T세포는 산화적 인산화를 선호한다.
산화적 인산화 과정으로 에너지(ATP)가 합성될 때 부산물로 활성산소도 생성된다. ATP 합성과정에서 전자전달계의 마지막 전자받개로 산소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산소에 전자 하나가 들어오면 과산화라디칼이 생성된다. 다행히 이 과산화라디칼은 효소의 일종인 슈퍼옥사이드 디스무타아제(SOD)에 의해 반응성이 조금 덜한 과산화수소(H₂O₂)로 바뀐다. 과산화수소는 분해 효소인 카탈라아제(catalase)나 글루타티온 과산화효소(glutathione peroxidase)에 의해 물로 변환돼 활성산소에 의한 세포 손상을 줄 일 수 있다.
그러나 과산화수소는 철 분자와 만나게 되면 반응성이 가장 큰 수산화라디칼로 변환된다. 수산화라디칼은 활성산소 중에 가장 반응성이 높고 순식간에 반응이 일어나 주변에 있는 유전자, 단백질, 세포막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분자를 망가뜨린다. 이 과정이 세포의 노화와 기능 고장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다.
미토콘드리아의 융합과 분열에 대한 설명 핵과 미토콘드리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
미토콘드리아는 DNA를 갖고 있다. 적혈구를 제외한 체내 모든 세포에는 핵과 미토콘드리아 각자가 DNA를 갖고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하나의 세포에서만 수백 개에서 수천 개가 존재한다. 핵 유전자와는 달리 원형의 DNA로 95%가량의 염기서열이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원형으로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활성산소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띠고 있다. 핵 유전자처럼 히스톤 단백질이 없어 보호도 받지 못한다.
다행인 점은 하나의 미토콘드리아에 복제해 둔 여러 개의 DNA가 존재하고 세포 1개 안에서 수많은 미토콘드리아가 같은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 유전자는 달랑 한 쌍 있는 데 반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수천 개의 복제품이 존재한다. 세포 하나가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양이 많다 보니 법의학에서 친자검사나 범인을 찾는 용도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활용하기도 한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전자전달계에 사용되는 핵심 단백질을 코딩하고 있다. 핵 DNA에는 2만4000~4만 개의 유전 정보가 있다. 반면 미토콘드리아는 단 37개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을 뿐이다. 단백질 합성을 돕는 전달 리보핵산(tRNA) 22개와 리보솜리보핵산(rRNA) 2개, 그리고 전자전달계와 ATP 합성에 관여하는 핵심 단백질 13개에 대한 유전자 등이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핵으로 수평 이동됐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사용되는 1000여 개 단백질이 핵에서 생성돼 미토콘드리아로 이동한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 생산에 과부하가 걸리면 호흡과 관련된 단백질 공급을 촉구하는 신호를 핵으로 보내야 한다.
이때 활성산소는 핵으로 이동해 미토콘드리아에서 쓰일 단백질이 더 많이 발현되도록 촉진하는 신호물질로도 작용한다. 핵과 미토콘드리아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의 축적이 문제
미토콘드리아의 항상성은 자가포식(autophagy) 작용을 통해 유지된다. 미토콘드리아의 자가포식 과정을 ‘마이토파지(mitophagy)’라고 부른다. 산소나 영양분이 적은 환경에선 미토콘드리아가 제거돼 그 수가 줄어들게 된다.
활성산소에 의해 기능이 망가진 미토콘드리아에선 활성산소가 더 많이 생성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미토콘드리아의 분절을 유도하는 ‘Drp1’ 단백질은 손상 부위를 절단하고 이어서 자가포식 과정을 통해 이 부위를 제거한다. 세포가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어떤 이유로 든 마이토파지가 원활하지 안으면 세포는 망 가진 미토콘드리아가 넘쳐나게 돼 활성산소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가사멸(apoptosis)의 기로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손상된 미토콘드리아가 쌓이면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한 세포 안에서 호흡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토콘드리아의 수가 60~70%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에너지는 곧 고갈된다. 활성산소에 의한 미토콘드리아 기능 손상은 더 많은 활성산소를 배출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런 세포들이 많아지면 결국 질병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미토콘드리아가 질병 치료를 위한 표적이 돼 왔던 이유다. 미토콘드리아 표적치료제는 이러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손상을 예방하고 복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심각한 수준으로 이미 손상된 경우엔 항산화물질을 사용해도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 증상만 지연될 뿐이다. 최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교정기술이 개발되면서 미토콘드리아 원인성 유전질환 동물모델 제작에 적용할 수 있는 정도까지 기술 수준이 도달했다.
하지만 유전자 교정방법을 이용한 미토콘드리아 치료제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인간의 생존은 산화 과정의 연속
미토콘드리아의 호흡은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으로 에너지를 만들면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기물이 산소와 반응하는 연소 과정과 화학식(유기물 + O₂ → H₂O + CO₂)을 비교하면 두 과정이 같은 반응이다.
많이 먹을수록 체내 호흡은 더 많아진다. 해로운 활성산소도 더 많이 생성된다. 모닥불에 장작을 더 넣어주는 것과 같다. 인간은 한순간도 산소 없이 살 수 없지만, 이 산소 때문에 평생 서서히 타고 있는 건 아닐까.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세포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미토콘드리아는 엔진에 해당한다. 자동차 엔진은 일정 거리를 달리면 정기적으로 오일을 갈아준다. 엔진 속 중요 부품이 망가졌다면 오일과 부품을 통째로 갈아야 할 것이다.
세포에서도 항산화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방식으로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할 수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망가진 미토콘드리아를 세포에서 통째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미토콘드리아가 합성하는 에너지로 삶을 영유하는 인간은 미토콘드리아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 때문에 늙고, 병들어간다. 삶의 시작과 죽음의 끝도 미토콘드리아와 함께하는 것이다.
외부 감염 또는 손상에 의한 질병을 치료하고 진단하는 방법은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의료기술이다. 그런데 정작 지금 이 순간 세포 내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한편으론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를 다스리는 기술이 아직 없다는 건 안타깝다.
<저자 소개>
최용수
인하대에서 생물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9년 차의과학대 바이오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중 2014년 줄기세포가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손상된 다른 세포에 전달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읽고 미토콘드리아 연구를 시작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