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충북 청주시 오창에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약 1조 원에 달하는 큰 자본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정부는 많은 수의 빔라인을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며,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은 이에 대비해 여러 연구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 조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6월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부지를 충북 청주시 오창으로 선정했다.  / 사진=한경DB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 조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6월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부지를 충북 청주시 오창으로 선정했다. / 사진=한경DB
우리는 지금 팬데믹 시대, 코로나라고 불리는 낯선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맞는 코로나 백신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우리에게 위험하지 않은 바이러스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섞어 사용하는 바이러스벡터 백신(아스트라제네카, 얀센, 캔시노, 스푸트니크 V), 메신저 RNA를 활용하는 mRNA 백신(화이자, 모더나), 바이러스를 열이나 화학물질 등으로 망가뜨려 비활성화시킨 사백신(시노팜, 시노백 등) 그리고 바이러스의 단백질 조각들을 그 자체로 활용하는 재조합 백신(노바백스 등),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낯선 DNA 백신(이노비오 등) 등이 있다.

우리 몸에 백신으로 무엇을 주사하든 항원으로 작용하는 단백질이 존재해야 하고, 항원에 맞서는 항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바이러스 역시 단백질이 주된 구성성분이고, 항원도 단백질이며, 이를 막는 우리의 ‘무기’ 역시 단백질이다.

구조 기반 신약 개발은 왜 필요한가

이렇게 단백질을 강조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약을 개발할 때 목표는 대부분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목표가 되는 단백질이 고장나서 기능을 못하거나 또는 너무 멈춰야 하는 기능이 조절되지 못하고 그로 인한 결과로 질병을 가져온다. 이런 이유로 약, 치료제는 바로 이 목표 단백질에 달라붙어서 기능을 못하는 단백질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약이라는 물질이 아무것에나 달라붙지 말아야 하고 꼭 그 특정된 목표 단백질에 정확히 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해 생기는 일들을 바로 약물의 부작용이라 부른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일반적으로 약을 처음 찾는 과정을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배우게 된다. 목표 단백질을 자물쇠로 비유하고, 그 자물쇠를 열거나 잠그는 역할을 하는 열쇠를 약이라고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약을 찾는 방법은 첫 번째, 수없이 많은 열쇠를 가져와서 목표 단백질, 즉 자물쇠에 집어넣어서 열리는 열쇠를 골라내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스크리닝, 선별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이 일반적으로 약물 후보를 찾아내는 데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다. 단지 이 방법은 열쇠를 찾아내는 것이 일종의 로또와 같아서 찾을 수도 못 찾을 수도 있으며 찾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방법은 바로 수없이 많은 열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이 확보된 열쇠를 최대한 빨리 자물쇠에 넣어서 열리는지를 확인하는, 즉 ‘스피드 게임’이 된다.

두 번째로, 자물쇠를 해체시켜 보거나 혹은 해체가 어렵다면 열쇠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어둡고 잘 안 보일 테니 빛도 비춰봐야 하고, 열쇠 구멍에 이것저것 막대기를 넣어서 안의 생김새를 유추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또는 그 자물쇠를 조심조심 분해해서 그 안에 부품들이 어떻게 위치하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열쇠 구멍의 생김새, 즉 자물쇠의 구조를 보고 열쇠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방법이 구조 기반 신약 개발이며 이 자물쇠를 들여다보는 가장 크고 강하며 비싼 장치, 즉 거대한 현미경이 바로 방사광가속기다.

이미 블록버스터 약물 내놓은 방사광가속기

방사광가속기란 전자를 가속하여 일반 빛보다 훨씬 강하고 밝은 수준의 빛, 즉 방사광(적외선, 자외선, X선 등 다양한 파장의 빛들이 섞여 있는)을 만들어내는 장비로 실험 및 연구에 필요한 파장의 빛을 선택할 수 있어서 기초물리학뿐만 아니라 나노과학, 생명과학 의약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한 거대 연구시설이다. 그래서 방사광가속기를 빛 공장(light factory), 빛 발생장치(light source)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강한 빛이 나오는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음전하를 띠는 전자를 전자석을 활용해 가속하면 강한 에너지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날아가는 전자를 만들 수 있다. 이 가속된 전자를 역시 전자석을 이용해 살짝 휘게 만들면 접선 방향으로 빛이 발생하게 되고 이 빛을 연구에 활용하는 것이 방사광가속기다.

어릴 때 우리는 비에 젖은 우산을 손잡이를 중심으로 막 돌려 물방울이 친구들에게 튀기게 하는 장난을 했던 기억이 한두 번쯤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산 끝의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전자라 생각하고 튀어나가는 물방울이 방사광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산을 빨리 돌리면 돌릴수록 물방울은 멀리 날아간다. 마찬가지로 전자를 보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할수록 빛은 강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강한 빛을 내뿜는 방사광가속기는 신약 개발의 기초가 되는, 생명을 이루는 다양한 물질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한 기초정보를 제공해준다. 또 약을 직접 개발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분자 수준의 아주 작고 정교한 3차 구조 정보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방사광 가속기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현재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일종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미국 스탠퍼드 방사광가속기(SSRL·Stanford Synchrotron Radiation Lightsource)의 실험 결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이자를 지금의 거대 다국적 제약사로 키워주는 데 크게 공헌한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백질-비아그라 복합체 3차 구조 결과를 도출한 가속기가 바로 우리나라의 포항 방사광가속기다.

우리나라가 방사광가속기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019년 7월 1일에 있었던 일본의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발표였다. 우리나라의 먹거리 산업 중 하나가 반도체산업인데, 이 3개 품목이 반도체 생산에 중요한 재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것들을 모두 수입에 의존했었다. 일본의 이런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대한 자립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소부장 개발에 큰 힘이 되어준 장비가 바로 방사광가속기였다.

새롭게 지어질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오아시스(OASIS)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대규모 국책사업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은 거대과학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그 목적은 ‘산업 R&D 및 기초원천연구지원을 위한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빔에너지 4GeV급 원형 방사광가속기(저장링 둘레 800m) 및 빔라인 10기 건설’을 성공리에 진행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총 사업비 998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원이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총 6년간 투입된다.

여러 지역이 경합을 벌였지만 지난해 충북 오창이 가속기 설립 지역으로 선정됐다. 새롭게 지어질 방사광가속기의 이름은 우리나라 과학 생태계에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오아시스(OASIS·Ochang Advanced Synchrotron for Industry and Science)’로 명명됐다.

국내에는 이러한 시설인 1기의 포항 방사광가속기가 운용되고 있는데 이 방사광가속기는 약 3GeV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가속기이며 ‘3세대 방사광가속기’로 부른다.

그리고 이번에 구축될 새로운 가속기인 오아시스는 이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갖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포항의 XFEL과는 다르다). 특히 에너지뿐만 아니라 더더욱 중요한 것은 방사광의 질이 아주 훌륭하다는 것이다. 아주 얇고 퍼지지 않는 빔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보다 많은 훌륭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아시스는 총 40개가량의 빔라인을 연결할 수 있으며 현재 2027년까지는 우선 10개의 빔라인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주로 소각산란(SAXS) 빔라인과 생체 고분자 결정학(MX) 빔라인이 활용될 예정이다. 우선 구축되는 10개의 빔라인 중 신약 개발에 직접 활용이 가능한 빔라인은 1번 바이오 소각산란, 6번 결맞음 소각 산란, 8번 생체 고분자 결정학 빔라인이 예정돼 있다. 현재 방사광가속기의 구축을 위한 지반 다지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저장링 및 10개의 빔라인을 구축하고 2028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기업 활용 늘릴 수 있도록 전용 빔라인 구축해야

오아시스는 필자가 속해 있는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 위치한 곳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앞서 신약개발지원센터에서는 2020년부터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한 신약 개발을 돕는 팀인 인공지능·구조설계팀을 구성하고 단백질의 3차 구조를 중심으로 새로운 약, 좋은 약을 만드는 일들을 지원하고 있다. 항원·항체의 결합 구조, 합성신약 후보물질과 단백질과의 결합구조, 단백질 3차 구조 등의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제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정보를 모아 빅데이터화하고, 이를 활용한 AI 플랫폼을 개발해 보다 좋은 단백질 치료제 개발에 활용하는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 활용을 돕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2028년까지 구축 예정인 오아시스의 10개 빔라인이 조금 아쉽다. 신약 개발에 가장 많이 쓰일 빔라인(MX 빔라인) 1개만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이라는 특수성, 즉 원하는 시간에 빠른 결과를 도출해야 된다는 즉시성과 해당 정보가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는 보안성을 고려할 때, 신약 개발을 위한 전용 빔라인이 존재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실제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보면 기능과 용도에 따라 지역 전용, 대학 전용, 연구소 전용 빔라인이 존재하며 운용되고 있다. 일본의 아스텔라스파마는 일본 포턴팩토리(Photon factory)의 AR-NE3A 빔라인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Advanced Photon Source Argonne National Lab’에서는 ‘IMCA-CAT’을 운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애브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얀센, MSD, 노바티스, 화이자 등 우리가 잘 아는 거대 제약사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유럽의 ESRF 역시 유럽연합(EU)의 성격에 맞게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등 각 국가 전용 빔라인이 운용되고 있다. 이곳은 기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이 구성되어 있어 빔의 배정, 실험 등을 대행하고 있다.

국내는 어떨까. 충청북도가 제공한 수요기업 정보를 분석한 결과, 방사광가속기 활용을 조금이나마 희망하는 기업들의 약 97%가 중소기업, 중견기업에 속한다. 이런 기업들이 과연 각자 전문인력과 고가의 장비들을 구축하고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신약 개발을 편히 진행할 수 있을까.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방사광가속기의 활용을 위해 빔타임을 예약하고, 시간을 배정받고, 기다리고, 그렇게 생산된 데이터가 혹시 다른 곳으로 유출될까 걱정하면서 분석하는 이런 과정이 과연 중소기업, 중견기업에 좋은 환경일까. 최소한 신약 개발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MX 빔라인 1개를 신약 개발 전용으로 구축해야 한다.

초창기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었던 2020년, 몇몇 사람은 “방사광가속기는 필요 없는 시설이다”, “그 돈으로 전자현미경(Cryo-EM)을 더 구축하자”와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지금은 오창에 건설하기로 결정 난 이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빔라인을 몇 개나 짓고, 또는 어떤 종류를 짓고, 어떻게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지, 그리고 이 거대 연구시설인 방사광가속기의 운영 주체가 누가 되는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분명한 것은 제1, 제2의 코로나, 즉 팬데믹이 앞으로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갖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 중 하나가 방사광가속기가 될 것이다. 오아시스는 우리가 팬데믹으로부터, 또 다른 질병으로부터 우리의 친구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슈 하이라이트 ❷] ‘비아그라’ ‘타미플루’ 개발한 방사광가속기, 국내에서 블록버스터 신약 이끌려면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