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수의 희귀질환 이야기] 희귀질환, 혁신적 치료제의 테스트베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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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의학부 이사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제니퍼 다우 드나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지난 8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NEJM)>에 세계 최초로 생체(in vivo)에서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 유전자 편집 치료제의 임상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희귀질환인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ATTR·transthyretin amyloidosis)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 중간 분석 결과와 전임상 연구 결과였다. 이들이 개발 중인 크리스퍼 치료제 ‘NTLA-2001’를 고용량 투여한 환자들의 28일 차 혈액 내 트랜스티레틴의 수준이 평균 87%에서 최대 96%까지 감소했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이전에 승인된 RNAi 표준 치료가 임상 3상에서 약 80%의 ATTR 감소를 보인 것을 본다면 수치적으로는 더욱 고무적인 결과다. 물론, 시판 허가까지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지만, 체내에 직접 크리 스퍼를 지질나노입자로 전달하는 방식을 적용해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한 최초의 인비보(in vivo) 유전자 편집 치료제 결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ATTR는 TTR 단백질의 유전자 변이로 인해 간에서 비정상적인 TTR 단백질이 발현되는 희귀질환으로, 비정상 TTR 단백질이 전신의 조직에 침착되면서 신경계, 심장 등 여러 기관에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희귀질환 ATTR의 특징과 발표된 크리스퍼 치료제 NTLA-2001의 결과로 생각해볼 수 있는 희귀질환 분야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무엇이 있을까.
‘Actionable Gene.’ 조치 가능한 유전자 변이? 치료 가능한 유전자!
이번에 발표된 크리스퍼 치료제는 인류가 처음으로 사람에서 수행한 생체 내 유전자 교정 치료제다. 또한 TTR 유전자를 생체 내에서 직접 교정하며, 단 한 번만 치료받으면 되는 1회 투여 치료제이기도 하다. 이는 TTR 단백질 변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소인이 매우 크기 때문에 가능한 ATTR의 치료 접근법이기도 하다.
즉 TTR 유전자의 변이 정보를 알고 있고 이를 진단해내기만 한다면 해당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만으로도 근치적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희귀질환에서 유전적 소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치료제 개발과정에서 치료의 표적이 비교적 명확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당연히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매우 큰 장점이 된다. 보고에 따르면 약 80%의 희귀질환이 유전성 희귀질환으로, 이들 중 상당수가 단일유전자 질환(monogenic), 즉 특정 유전자의 변이 하나에 의해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이렇게 유전적 소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 해당 유전자나 유전자의 변이들을 ‘Actionable gene, Actionable genetic variant’, 즉 치료 가능한 유전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현인데, 그만큼 유전성 희귀질환들의 원인과 치료를 이야기할 때, 유전자의 변이 정보를 이해함으로써 환자에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유전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TTR과 같은 ‘Actionable gene’의 존재와 크리스퍼 치료제의 극적인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단일유전자 특징들은 유전성 희귀 질환의 신약 개발 시장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회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단일유전자 질환, 단백질의 기능적 사본만 있다면 치료 가능
단일유전자 질환에서 가장 초기에 시도됐던 치료 접근 방법은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변이 단백질의 기능적 사본을 외부에서 새로 투입하는 것이었다. 단일유전자 질환에서는 변이 유전자가 만드는 변이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는 효소를 투여하기만 해도 질환의 예후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활 발한 임상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질환분야는 1983년 미국의 희귀질환법(The Orphan Drug Act, 1983)하에서 큰 진전을 이룬 리소좀 축적질환(LSD·Lysosomal Storage Disease)을 들 수 있다.
유전성 희귀질환의 약 1% 미만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다양한 치료적 접근방법의 성공적 사례들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새로운 치료제들도 시도되고 있어서 향후 다양한 유전성 희귀질환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리소좀 축적질환(LSD)은 유전자 변이에 의한 리소좀 내 특정 효소의 결핍으로 분해되지 않은 기질이 축적되어 발생하는 유전적 대사 질환이다.
변이 유전자에 따라 영향을 받는 효소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파브리병, 고셰병, 폼페병, 뮤코 다당증 등 다양한 종류의 질환으로 다시 분류가 되며, 특정 효소의 기질 종류와 축적 장기에 따라 비특이적이고 광범위한 임상 증상을 야기한다.
임상 증상만으로는 질환을 의심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질환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행히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질환 연구들이 비교적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는 조혈 모세포 이식, 효소대체요법(재조합 단백질로 생산한 효소를 직접 투여), 기질감소요법(축적되는 기질의 전구체를 억제), 약리학적 샤페론(변이 단백질의 접힘구조를 정상화) 등과 같은 다양한 치료제들이 이미 승인을 받아 환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리소좀 축적질환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치료제들이 연구되고 있다. 단일유전자 질환군으로서, 효소(단백질) 수준에서 치료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유전자 수준에서 치료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편집 접근의 기술 플랫폼화, 단일유전자 희귀질환 시장에서 큰 장점
대부분의 단일유전자 희귀 질환에 있어서 치료의 1차적 목표는 장기적으로 정상 유전자를 발현시키고, 활성 효소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적 소인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많은 희귀질환들이 유전자 편집 요법의 좋은 대상 질환군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제 변이 단백질의 수준에서 치료하는 것을 넘어, 해당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나 유전자의 발현 메커니즘을 직접 교정하는 접근법들이 모색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렌티바이러스,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deno-associated virus)와 같이 유전자 편집을 위한 전달체(vector)를 최적화하 거나 비바이러스성 유전자 전달법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식한 유전자의 장기적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들이 유전성 희귀질환 분야를 테스트베드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또 유전자 치료는 단백질을 기능적으로 회복, 보존하는 기존의 성공적인 치료법들과 비슷한 전제를 가지는 동시에 투약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최소화하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희귀질환 분야에서 연구할 때, 개발회사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전략 적 장점을 하나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이 역시 희귀질환 시장의 특징에 기인하는데, 5000~8000종의 많은 희귀질환이 있고, 희귀질환법을 통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허가경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사실 개별 질환들의 시장 규모는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희귀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럴 때 유전자 편집 치료제들이 가지는 기술적 특징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치료의 경우, 결핍 효소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발현 카세트(cassette)를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 렌티바이러스 또는 비바이러스성 기반 시스템 같은 전달체에 구조화해 세포로 전달하게 된다. 이 카세트 구조에 담긴 교정 유전자의 종류는 비교적 손쉽게 바꿔줄 수 있기 때문에, 희귀질환 분야는 다양한 단일유전자 질환 치료를 위해 표적 유전자만 바꿔 적용해주는 플랫폼화가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는 시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개별 희귀질환 시장 안에서, 다양한 유전성 희귀질환의 다양한 표적 유전자들을 적용해볼 수 있는 기술 플랫폼화로부터 일정한 수준의 성장과 확장성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다.
희귀질환, 미래 생물학적 제제들의 보고
희귀질환의 기저에 깔린 생물학적 양상들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단순히 임상적 증상이나 표면적 진단만으로는 질환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임상 영역에 비약적으로 기여하는 시대가 되면서, 희귀질환 분야는 그 특징적인 세포, 유전자 수준의 복잡성으로 인해 혁신적인 치료제들의 생물학적 접근 방식들을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실제 2017년 희귀질환 지정을 받아 FDA 승인이 내려진 77개의 치료제가 모두 생물학적제제였다는 보고가 있다. 기존 약물치료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다양한 치료 접근 방식들이 이미 시판되거나 개발과정 중에 있으며, 앞서 살펴보았던 직접 재조합 효소를 투여하는 효소 대체요법, RNAi 치료제,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 유전자 치료뿐만 아니라, 줄기세포 치료제, 뇌혈관장벽(Blood Brain Barrier) 투과성 생물학적 제제 등 다양한 기전의 생물의약품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앞으로도 유전성 희귀질환 분야는 유전자 변이에 의한 단백질 이상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다양한 유형의 생물의약품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꿔 말하면, 희귀질환 분야를 보면 미래의 치료적 접근 기술들이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기회
유전자로 질병의 발병 예측을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 특정 유전자(변이)가 있다면 반드시 특정 질환이 발병하게 될까. 많은 환자 에게 유전자 검사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결과가 곧 질병의 ‘진단’ 그 자체는 아니다.
유전자의 변이 정보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의 영역, 최종적인 진단과 치료는 의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의 과학은 유전형과 표현형이 정확히 1대 1로 매칭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로 정의할 수 없는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서는 크리스퍼와 같은 치료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서도 혁신은 일어나겠지만, 희귀질환 분야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과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질환이 유전자에 의해 예측되는 질병의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정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예컨대 어떤 유전자를 통해 특정 질병의 미래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2배, 3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대상 환자가 반드시 해당 질병에 걸린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유전성 희귀질환에 있어서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즉 알려진 희귀질환 유전자 변이가 있다면, 임상 증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발병해야 할 질환이 발병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이렇게 희귀질환의 80%는 유전성 희귀질환이고, 이들 대부분은 특정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서 결국 발병하고 만다. 하나의 단일유전자가 정확히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해당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기회요소다.
실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치료제와 리소좀 축적 질환의 성공사례에서 본 것처럼, 인류의 여러 질환 중 단일유전자에 의한 질환들에 대해서는 이미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희귀질환 분야에서 세포와 유전자, 분자 수준에서의 이해와 기술 발전이 더욱 빨라지고 깊어진 것에 주목한다면, 앞으로 많은 희귀질환의 유전적 요인과 병태생리 기전이 발견되고 병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것이다.
좋은 임상 결과들의 예처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을 테스트하고 치료전략을 시도하면서 더 많은 신약이 임상에서 활약하기를 기대해본다.
<저자 소개>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맡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시아 국가의 혁신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O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희귀질환인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ATTR·transthyretin amyloidosis)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 중간 분석 결과와 전임상 연구 결과였다. 이들이 개발 중인 크리스퍼 치료제 ‘NTLA-2001’를 고용량 투여한 환자들의 28일 차 혈액 내 트랜스티레틴의 수준이 평균 87%에서 최대 96%까지 감소했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이전에 승인된 RNAi 표준 치료가 임상 3상에서 약 80%의 ATTR 감소를 보인 것을 본다면 수치적으로는 더욱 고무적인 결과다. 물론, 시판 허가까지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지만, 체내에 직접 크리 스퍼를 지질나노입자로 전달하는 방식을 적용해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한 최초의 인비보(in vivo) 유전자 편집 치료제 결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ATTR는 TTR 단백질의 유전자 변이로 인해 간에서 비정상적인 TTR 단백질이 발현되는 희귀질환으로, 비정상 TTR 단백질이 전신의 조직에 침착되면서 신경계, 심장 등 여러 기관에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희귀질환 ATTR의 특징과 발표된 크리스퍼 치료제 NTLA-2001의 결과로 생각해볼 수 있는 희귀질환 분야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무엇이 있을까.
‘Actionable Gene.’ 조치 가능한 유전자 변이? 치료 가능한 유전자!
이번에 발표된 크리스퍼 치료제는 인류가 처음으로 사람에서 수행한 생체 내 유전자 교정 치료제다. 또한 TTR 유전자를 생체 내에서 직접 교정하며, 단 한 번만 치료받으면 되는 1회 투여 치료제이기도 하다. 이는 TTR 단백질 변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소인이 매우 크기 때문에 가능한 ATTR의 치료 접근법이기도 하다.
즉 TTR 유전자의 변이 정보를 알고 있고 이를 진단해내기만 한다면 해당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만으로도 근치적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희귀질환에서 유전적 소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치료제 개발과정에서 치료의 표적이 비교적 명확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당연히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매우 큰 장점이 된다. 보고에 따르면 약 80%의 희귀질환이 유전성 희귀질환으로, 이들 중 상당수가 단일유전자 질환(monogenic), 즉 특정 유전자의 변이 하나에 의해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이렇게 유전적 소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 해당 유전자나 유전자의 변이들을 ‘Actionable gene, Actionable genetic variant’, 즉 치료 가능한 유전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현인데, 그만큼 유전성 희귀질환들의 원인과 치료를 이야기할 때, 유전자의 변이 정보를 이해함으로써 환자에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유전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TTR과 같은 ‘Actionable gene’의 존재와 크리스퍼 치료제의 극적인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단일유전자 특징들은 유전성 희귀 질환의 신약 개발 시장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회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단일유전자 질환, 단백질의 기능적 사본만 있다면 치료 가능
단일유전자 질환에서 가장 초기에 시도됐던 치료 접근 방법은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변이 단백질의 기능적 사본을 외부에서 새로 투입하는 것이었다. 단일유전자 질환에서는 변이 유전자가 만드는 변이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는 효소를 투여하기만 해도 질환의 예후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활 발한 임상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질환분야는 1983년 미국의 희귀질환법(The Orphan Drug Act, 1983)하에서 큰 진전을 이룬 리소좀 축적질환(LSD·Lysosomal Storage Disease)을 들 수 있다.
유전성 희귀질환의 약 1% 미만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다양한 치료적 접근방법의 성공적 사례들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새로운 치료제들도 시도되고 있어서 향후 다양한 유전성 희귀질환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리소좀 축적질환(LSD)은 유전자 변이에 의한 리소좀 내 특정 효소의 결핍으로 분해되지 않은 기질이 축적되어 발생하는 유전적 대사 질환이다.
변이 유전자에 따라 영향을 받는 효소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파브리병, 고셰병, 폼페병, 뮤코 다당증 등 다양한 종류의 질환으로 다시 분류가 되며, 특정 효소의 기질 종류와 축적 장기에 따라 비특이적이고 광범위한 임상 증상을 야기한다.
임상 증상만으로는 질환을 의심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질환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행히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질환 연구들이 비교적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는 조혈 모세포 이식, 효소대체요법(재조합 단백질로 생산한 효소를 직접 투여), 기질감소요법(축적되는 기질의 전구체를 억제), 약리학적 샤페론(변이 단백질의 접힘구조를 정상화) 등과 같은 다양한 치료제들이 이미 승인을 받아 환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리소좀 축적질환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치료제들이 연구되고 있다. 단일유전자 질환군으로서, 효소(단백질) 수준에서 치료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유전자 수준에서 치료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편집 접근의 기술 플랫폼화, 단일유전자 희귀질환 시장에서 큰 장점
대부분의 단일유전자 희귀 질환에 있어서 치료의 1차적 목표는 장기적으로 정상 유전자를 발현시키고, 활성 효소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적 소인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많은 희귀질환들이 유전자 편집 요법의 좋은 대상 질환군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제 변이 단백질의 수준에서 치료하는 것을 넘어, 해당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나 유전자의 발현 메커니즘을 직접 교정하는 접근법들이 모색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렌티바이러스,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deno-associated virus)와 같이 유전자 편집을 위한 전달체(vector)를 최적화하 거나 비바이러스성 유전자 전달법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식한 유전자의 장기적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들이 유전성 희귀질환 분야를 테스트베드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또 유전자 치료는 단백질을 기능적으로 회복, 보존하는 기존의 성공적인 치료법들과 비슷한 전제를 가지는 동시에 투약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최소화하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희귀질환 분야에서 연구할 때, 개발회사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전략 적 장점을 하나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이 역시 희귀질환 시장의 특징에 기인하는데, 5000~8000종의 많은 희귀질환이 있고, 희귀질환법을 통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허가경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사실 개별 질환들의 시장 규모는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희귀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럴 때 유전자 편집 치료제들이 가지는 기술적 특징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치료의 경우, 결핍 효소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발현 카세트(cassette)를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 렌티바이러스 또는 비바이러스성 기반 시스템 같은 전달체에 구조화해 세포로 전달하게 된다. 이 카세트 구조에 담긴 교정 유전자의 종류는 비교적 손쉽게 바꿔줄 수 있기 때문에, 희귀질환 분야는 다양한 단일유전자 질환 치료를 위해 표적 유전자만 바꿔 적용해주는 플랫폼화가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는 시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개별 희귀질환 시장 안에서, 다양한 유전성 희귀질환의 다양한 표적 유전자들을 적용해볼 수 있는 기술 플랫폼화로부터 일정한 수준의 성장과 확장성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다.
희귀질환, 미래 생물학적 제제들의 보고
희귀질환의 기저에 깔린 생물학적 양상들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단순히 임상적 증상이나 표면적 진단만으로는 질환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임상 영역에 비약적으로 기여하는 시대가 되면서, 희귀질환 분야는 그 특징적인 세포, 유전자 수준의 복잡성으로 인해 혁신적인 치료제들의 생물학적 접근 방식들을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실제 2017년 희귀질환 지정을 받아 FDA 승인이 내려진 77개의 치료제가 모두 생물학적제제였다는 보고가 있다. 기존 약물치료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다양한 치료 접근 방식들이 이미 시판되거나 개발과정 중에 있으며, 앞서 살펴보았던 직접 재조합 효소를 투여하는 효소 대체요법, RNAi 치료제,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 유전자 치료뿐만 아니라, 줄기세포 치료제, 뇌혈관장벽(Blood Brain Barrier) 투과성 생물학적 제제 등 다양한 기전의 생물의약품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앞으로도 유전성 희귀질환 분야는 유전자 변이에 의한 단백질 이상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다양한 유형의 생물의약품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꿔 말하면, 희귀질환 분야를 보면 미래의 치료적 접근 기술들이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기회
유전자로 질병의 발병 예측을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 특정 유전자(변이)가 있다면 반드시 특정 질환이 발병하게 될까. 많은 환자 에게 유전자 검사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결과가 곧 질병의 ‘진단’ 그 자체는 아니다.
유전자의 변이 정보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의 영역, 최종적인 진단과 치료는 의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의 과학은 유전형과 표현형이 정확히 1대 1로 매칭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로 정의할 수 없는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서는 크리스퍼와 같은 치료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서도 혁신은 일어나겠지만, 희귀질환 분야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과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질환이 유전자에 의해 예측되는 질병의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정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예컨대 어떤 유전자를 통해 특정 질병의 미래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2배, 3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대상 환자가 반드시 해당 질병에 걸린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유전성 희귀질환에 있어서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즉 알려진 희귀질환 유전자 변이가 있다면, 임상 증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발병해야 할 질환이 발병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이렇게 희귀질환의 80%는 유전성 희귀질환이고, 이들 대부분은 특정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서 결국 발병하고 만다. 하나의 단일유전자가 정확히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해당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기회요소다.
실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치료제와 리소좀 축적 질환의 성공사례에서 본 것처럼, 인류의 여러 질환 중 단일유전자에 의한 질환들에 대해서는 이미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희귀질환 분야에서 세포와 유전자, 분자 수준에서의 이해와 기술 발전이 더욱 빨라지고 깊어진 것에 주목한다면, 앞으로 많은 희귀질환의 유전적 요인과 병태생리 기전이 발견되고 병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것이다.
좋은 임상 결과들의 예처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을 테스트하고 치료전략을 시도하면서 더 많은 신약이 임상에서 활약하기를 기대해본다.
<저자 소개>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맡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시아 국가의 혁신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O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